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탓인지, 서로 다른 의견을 펼칠때면 극단적으로 흐른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이분법 논리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서로 자기 목소리만 내게 되는, 안웃기다 게임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수 아니면 진보, 좌빨 아니면 친일, 친북 아니면 친미친일 식이다. 내 생각엔 기득권 세력의 여론조작의 영향이 크다. 정부를 반대하거나 촛불 시위를 하면 좌빨 좀비로 몰아댄다. 북한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은 사람이 북한을 돕고자 하는 의견을 세우면? 북한으로 가라 빨갱아~ 같은 식으로 몰아댄다.
종교도 별 다를것 없다. 지구 탄생 이후에 수 많은 종교와 신들이 창조되었지만 지금껏 영향력을 미치고 오래 살아 남는 것은 불교 외에는 전부 일신교다. (불교는 종교긴 하지만 부처는 신이 아니며 석가모니 자신도 자신을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표현했다. 후대 사람들이 부처를 존경해 불상을 만들고 종교화 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 사실을 잘 모르면서 무조건 비판하곤 한다.)
왜 유독 일신교가 이렇듯 크게 되어 있을까? 그것은 신이 유일하다라는 관점에 있다고 본다.
그리스 신화의 골아픈 수많은 신들을 외울 필요 없이 하나만 믿으면 되니 접근 하기 쉽고 인간의 성격에 잘 맞다.
나 이외의 신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 속성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나와 내 소속의 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의견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고 심하면 억압하게 되는 거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있는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전도를 할때는 가히 협박 수준이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는 것이다.
즉, 신랄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 말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느니라~ 는 조인데,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인간의 공포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이며 그런 개인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배타적인 성향의 단체를 만나 짝짜꿍 하는 것이다. 교회는 신도를 많이 모아 돈벌이가 되니 좋고, 신도는 돈으로 죽어도 사후 세계가 있다는 위안을 구매한다.

우리나라 교회의 큰 목사님이라는 조용기씨는, '믿음의 증거를 보여 줘라, 누가 헌금을 많이 내는지, 누가 믿음의 증거를 많이 보여주는지 보여주라' 며 노골적으로 더 많이 돈낼것을 독촉한다. 하지만 예수는 어느 가난한 여인이 동전 한닢을 내는 것을 보고 '이 여인이 낸 돈이 나머지 전부를 합친것보다 큰 것이다' 며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누가 누가 더 내나 알아봅시다♪따위의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신자들은 각종 교회의 비리와 잘못된 점을 보면서도 모른척 한다. 그나마 대답이라도 하는 신자들은 그런 문제점들을 인정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며 일축한다. 그러나 대형 교회의 큰 목사들이 일부라면 다수가 일부며 소수가 다수가 되는 말도 안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예수를 믿지 않는 나라는 가난하다'
'예수를 믿지 않아서 쓰나미가 일어났다'
이런 발언은 모두 큰 교회의 수장들이 한 발언이다. 기득권층을 지지하는 정치적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목사들이다.
하지만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고 말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미션 임파써블]이란 얘기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목사들이 과연 이 사실을 모르는 걸까 모른체 하는 걸까?
난 이런 목사들이야 말로 진정 믿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잠깐밖에 안다녔던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을 목사들이 모를가능성은 절대 없다. 몰랐다고 해도 웃기는 일 아닌가??
알면서 이따위 소리를 해대는 것은 장사를 위해서다. 수익을 많이 내기 위해서 날조하는 거다.
그건 목사들이 진정 믿음이 없다는 소리다. 예수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것들이 무슨 믿음이 있는 건가??
들판에서 설교 하던 예수처럼 소박한 공동체가 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전파하기는 커녕 돈 거둬서 그 자본을 확장시키고 퍼트리며 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속성을 아는 종교인들도 많다. 그러나 종교인 내부에서의 비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지 않는가. 그런 것들을 가만히 보면서 나만 믿고 진실하다면 되는 것인가. 종교로 인해 사람들의 불신이 깊어지고 속아넘어가는 피해자가 늘고 있는데...더 어이없는 것은 이런 사기꾼들의 말을 좋다고 경청하는 신자들이다.
한때 아주 작은 교회에 열심히 다닌 적이 있다. 도시 빈민들이 어렵게 사는 마을 속에 자리한 교회.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고, 아픈 노인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며,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교회였다. 하지만 그런 교회는 막말로 장사도 안되고 번영도 어렵다. 이런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다. 이젠 이 교회도 나가지 않는 것은 한국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자체에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던 사람도 회계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예수의 말은 위험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하다면 모든 죄가 씻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도 목사가 될 수 있었던가? 하지만 그는 용서는 받았을지 몰라도 죄는 전혀 뉘우치진 않고 있다.
그런 모순을 영화 '밀양'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세계인의 공감과 호응을 얻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피아노 강사 신애는 아들 준이 유괴당한후 살해당하자 깊은 시름에 빠지고,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에 기댄다. 용서라는 덕목을 실천하기 위해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만나러 가는데, 범인은 이미 자신이 신에게 용서 받았다고 말한다. 신애는 자신이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가 있냐며 분노하게 된다.
이 사례는 본문 176~부터 나오는 유명한 작가 C.S. 루이스(나니아연대기의 저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기독교 옹호자인 그는 예수가 정말 신이 아니라면, 피해를 입은 사람과 의논을 할 시간적 여유도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갚아준다는 말은 허왕된 말이며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자만심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그래서 예수가 틀림없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저자는 반대로 보는 것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기는 약간 어렵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어서 좋았지만 다른 일신교들, 이슬람교 흰두교 유대교등의 이야기와 그 사건들의 이야기가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다. 어투도 정리가 되어있다기 보다 주제별로 이야기를 하는 듯히 펼쳐지기 때문에 이것이 장점으로 다가와 편안하게 읽힐 수도 있지겠만 나에겐 산만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종교 자체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인간의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 두려움이 죽음 뒤가 끝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종교가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또 종교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지구가 도는 지도 몰랐던 때의, 미지의 세계인 하늘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함의 표출이었다.
지구가 돈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탄압을 받은 것도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다. '하나님의 나라는 요지부동' 이라는 말이 지구가 돌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지금 보면 너무나도 웃기는 이야기다. 그때의 종교 지도자들은 약발이 약했고 신과 교통하지 못해서 그랬고, 지금은 그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종교인들은 스리슬쩍 말을 바꾸고 끼워맞추기에 급급하다.
역사에서 가장많은 살육과 응징을 가해온 것도 일신교이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서 이런 살육의 기록들을 알려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분란과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데, 거의 종교의 문제이다.
종교가 개인에게 위안을 준다고 하지만 그런 종교에 의해 희생되는 것 또한 개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종교의 문제점, 한국 교회의 부정과 부패 온갖 비리.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외면하려면 종교인을 집어치워 버리는게 낫지 않나?
그렇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죽어서도 잘살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의 발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