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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간의 지도
펠릭스 J. 팔마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12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철지난 무술 영화만 줄기차게 빌려 보던 시골 꼬마가 서울로 상경하여 '빽투더 퓨처'를
봤을때 그 놀라움이란.
그 때부터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것 같다.
시간여행에 관한 영화는 일단 빌려보고 왠만하면 좋은 점수를 준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19세기 최고의 SF소설
[타임머신]을 둘러싼 기발하고 놀라운 사기극! 이란 문구를 되지도 않는 속독법으로 읽었던 탓인지 이 책이 바로 최고의 SF소설인줄 알고
읽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선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이다. 허나 이 작품을
SF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설픈 속독으로 문구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뜻을 왜곡해서 읽었기에 이 책을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
읽은 줄도 모르고 저자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게 이 책을 더 재미있게한 주요 원인이었다. 나비효과란 영화를 아무 정보도
기대도 없이 무작정, 우연히 감상했을때의 희열처럼.
독자란 아마도, 책이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예측을 하는것보다 보기좋게
예측이 빗나갔을때 더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추리 소설의 범인을 맞추었거나 사건을 예측했을 때 어느 정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너무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면 무슨 재미인가?
처음 번역도 제대로 안된 어린이용 홈즈를 읽었을때의 감동과 어른이 되서
완역본을 읽었을때의 감동, 둘을 비교하자면 난 단연 비교도 안되게 전자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양장본에, 큰 판형에, 560페이지라는 무시무시한
압박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몰입도를 지닌 이 소설은 한 젊은 귀족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된다.
'뭐야 이거 타임머신을 타고
뿅뿅 시간을 이동하는 모험을
기대했더니~'
실망하긴 이르다.
지체 높은 바람둥이 청년 앤드류가 창녀에 불과한
여성을 사랑하는 이야기 자체도 그럭저럭 볼만했다. 마치 창녀와의 사랑이야기로 작품을 모두 채울것 같이
느리고 상세하게 전개되지만, 그 전환점에 도달하면 드디어 이 책에서 기대 했던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로 접어들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이 출간된 이후,
2000년으로 미래 여행을 시켜준다는 여행사가 세상에 등장한다. (소설의 배경은 19세기다) 앤드류는 시간여행을 해야할 간절한 이유가 있기에 그
여행사를 찾아가게 되지만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한다. 그러나 타임머신의 작가 웰스에게 타임머신이 있을거라고 이야기 하는
여행사 사장 길리엄의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는 앤드류와 그의 친구 찰스.
작가는 누군가에게 돈받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장통의 익살맞은 이야기꾼
같은 화자를 설정해놨는데, 소설이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맞아 떨어진다. 화자가 자신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쌩뚱맞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거슬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고 소설의 분위기와 어느정도 맞아떨어지기에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화자는 갑자기 웰스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엉뚱하다고 느낄 독자의 반응을 예상해서 이유까지 설명해가며.
화자의 그런 엉뚱함과 실존인물인 웰스는 이야기들을 서로 연결짓게 해주는 고리의
역할을 한다. 앤드류의 민원?을 웰스가 해결해 준 다음에서야 독자는 소설의 전개방식과 성격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2부가 시작되고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여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성격이 대충 파악되었다고 책을 덮어버리기엔 아직 이르다.
그런점에서 실망할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작가는 여러가지를 준비해 놓았으니까.
신선하고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비록 내 그리 많은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잘못된 사전정보에 의한 효과가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이 소설을 위해 작가는 꽤 오랜기간의 치밀한 준비와 노력을
기울였을듯 하다.
이 두꺼운 소설이 모두에게 재미를 줄런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꽤 이름이 알려진 소설공장공장장같은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안심과 익숙함과 안정을 주려는 듯이, 적당한 환상과 적당한 사랑과 적당한
스릴을 버무려 조립해낸 소설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