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해석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몸으로 겪어내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서늘한 실체를 목격하게 된다. 감상에 젖을 틈조차 주지 않는, 묵직하고 강렬한 작품이다. 다 읽은 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마지막 몇 구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5월이다. 밤나무에 꽃이 피었다. 엄마의 오랜 친구들 몇 명이 자리를 지킨다. 장례식이 끝났을 때 그는 벤치에 앉는다. 밤나무의 마른 꽃잎들이 길가로 떨어진다. 바스락거리며 아스팔트 길에서 흐트러지다가 바람이 멎으니 그대로 멈춘다. 그는 잠시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런 뒤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로 그는 혼자 살아간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는 괴로움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남 일 같지 않을 것 같아요. 잠들지 못하는 밤을 ‘자아를 발굴하는 시간’이라 말하는 저자의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도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담담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글쓰기가 자신을 구원했다'는 고백처럼, 이 책은 어두운 밤 홀로 깨어있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인 것 같았습니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면서도 참 따뜻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