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 사랑하고 살아가는 큰오색딱따구리 가족의 일상사
김성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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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선생의 『나의 생명 수업』을 읽고 나서 바로 읽은 같은 저자의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라는 또 한 권의 책. 자식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희생, 보살핌으로 점철되어야 하는 지고지순한 행위인지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의 50일에 걸친 육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인간의 관념으로는 ‘사랑’에 해당할 저들의 새끼에 대한 집념에 가까운 행위를 인간의 그것보다 열등하다고 감히 낮추어 말할 수 있을까? 갖가지 어려움과 위험이 상존하는 숲 속에서 큰오색딱따구리 부부는 본능과 자연의 섭리를 절대 거스르지 않으며 두 마리의 새끼를 독립시켰다. 비록 새끼와 함께 보낼 시간이 길지 않고 독립과 더불어 숲 속에서 마주칠 확률이 낮다 해도, 그 새끼들 또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들 인간은 어떤가? 과연 큰오색딱따구리만큼의 무조건적 애정을 주고 있는가? 혹여 자식을 학대하거나 방치하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식에게 경쟁심만을 부추기고 일류지향을 최고라 여기도록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작 필요한 도덕과 윤리, 조화롭고도 폭넓은 시각,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난 정신의 자유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인간은 욕망이 과도한 동물이다. 무한 욕망의 시대에 절제와 배려의 미덕을 자식에게 가르치는 참 지혜가 요구된다. 특히 아버지의 지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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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서점 그라피티 - 교토 오사카 고베편
이케가야 이사오 지음, 박노인 옮김 / 신한미디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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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한국에도 고서점가(街)가 존재했다. 중학시절(1979~1981) 언제쯤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형과 함께 청계천에 즐비하게 있었던 고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참고서를 찾다가 그 중 한 곳에서 민중서림판 한영사전을 시중보다 싼 가격에 샀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내게 고서점은 시중에서 정가 주고 사야 하는 책을 조금 싸게 살 수 있는, 규모는 작고 지저분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실제로도 가게 밖에 위태로울 정도로 높게 쌓여 있는 책들과 가게 주인밖에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책들이 꽂혀 있던 미로 같은 매장 내의 분위기 또한 이 같은 생각을 강화한 요인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중 2이던 1980년에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고, 그 전부터 종각에는 종로서적이,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종로 1가에 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가, 그리고 종로 2가와 3가 사이에는 양우당서적이 있었다. 특히 중2 겨울방학 때 형과 함께 처음으로 교보문고에 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 큰 매장하며 무엇보다도 어린 눈에 그 많은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는 서가에 마음을 빼앗겨 그 뒤로는 혼자서 교보문고에 자주 가곤 했다. 이런 과정에서 청계천의 고서점가는 자연스럽게 잊혀져 갔고, 대학시절에는 청계천보다 오히려 서울역 앞에 포진해 있던 고서점들을 더 자주 갔었다. 이렇게 청계천의 고서점가는 내게 완전히 잊혀졌을까? 아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치권력과 경제 논리에 밀려 청계천이 재개발되면서 다시 나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재작년이던가, 청계천을 산책하다가 발길이 자연스럽게 고서점가로 향하게 되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조금밖에 남지 않은 고서점들을 한 곳 씩 둘러보며 착잡한 심정에 사로 잡혔더랬다. 재개발로 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예전에는 비록 지저분하고 미로같았어도 한 곳 한 곳이 나름 개성적이었는데, 지금은 서점들이 모두 똑같은 이미지에 취급하는 책도 거의 비슷한 그저 그런 책 창고로 바뀌고 말았다. 비록 내가 정기적으로 청계천 고서점가를 순례하지는 못했어도 책과 얽힌 추억의 공간으로 마음속 한 쪽에 자리 잡고는 있었는데. 도시화가 가져온 쾌적함 대신에 몰개성의 극치를 달리는 단순 소비 공간으로 변해버린 청계천 고서점 어디에 책과 문화가 빚어내는 향기가 있단 말인가? 아쉽고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일본과 관련 있는 거의 모든 사항들에 대해 신뢰하지 않고 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책과 고서점에 관한 한 부러운 마음에 울컥 할 정도로 냉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한국인 몇 명이 이 책을 읽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케가야 이사오가 직접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고 써내려간 『일본고서점 그라피티-교토·오사카·고베편』을 읽고 나서 부러움은 더욱 커졌다. 모두 52곳의 개성적이고 특화된 고서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새가 위에서 보는듯한 시각으로 그린 각 서점의 조감도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정도로 정교해서 서점 내부와 서가의 위치, 특정 책들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량이 가히 고서점 가이드북으로써 최고가 아닐까 싶다. 책의 물질적 특성을 애호하고 생활 속에서 책읽기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러스트레이션만으로도 그 곳에 있는 책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일러스트레이션 여백에 씌어져 있는 책에 관한 설명들은 번역이 안 되어 있다는 것. 아마 손 글씨체를 살려두느라 그랬을 텐데,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세대가 읽기에는 무리일 것이다. 아무튼 일러스트레이션 외에도 저자가 제시하는 서적애호정도 점검 항목이나 독서론, 서적수집벽, 고서 시장 등에 대한 단상들을 읽고 나니, 한국인이 일본인을 쉽게 극복하고 그들과 대등해지기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지금 한국인의 독서력은 일본인에 비해 어느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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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 독서생활 -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미즈 이쿠타로 지음, 김석일 옮김 / 기담문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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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쓴 독서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전투를 치르듯 목숨을 걸고 독서에 전념한다는 것. 오늘 죽을 것처럼 책을 읽고 그렇게 읽은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의 삶에도 심각할 정도의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동안 읽어왔던 여러 독서론 중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나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쓰루가야 신이치의 『책을 읽고 양을 잃다』,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 그리고 이번에 읽은 『교양인의 독서생활』을 쓴 시미즈 이쿠타로에 이르기까지, 이들 5인의 일본인이 읽어낸 책의 양과 질은 평범한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읽을 양과 질을 압도적으로 앞 서 나가 좌절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큼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책을 읽는 방법론도 극히 체계적이고 정교하여 오직 책 읽기만으로 몇 개의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통찰력을 지닐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책을 읽는 것일까? 아마도 작년 겨울에 읽었던 샤를 단치의『왜 책을 읽는가』에 나오는 구절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나아갈 때 나는 죽음과 경주를 한다. 이는 다른 모든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독서의 본질적인 동기이자 유일한 이유, 그것은 바로 죽음과 당당히 결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독서는 아주 짧은 한순간이지만 죽음을 이긴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 즉 책은 그보다 좀 더 오래 죽음을 이긴다.”(샤를 단치, 『왜 책을 읽는가』, 이루, p.259~60) 나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잠시 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지속해나간다. 마치 책을 읽고 있으면 죽음도 내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려줄 것처럼. 그래서 단 하루도 책을 읽지 않고 넘어가는 적이 없고 그만큼 죽음이 두려워서 독서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아마 위의 일본인들도 거의 비슷한 생각에서 이토록 책을 읽고 그것에서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것인지도. 죽기 전에 읽어두어야 할 책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것들을 다 읽을 때까지는 죽을 수 없다는 결연함이 내게도 있다. 내 죽음과 더불어 모두 소멸할 것이지만 그래도 분투했던 흔적은 지상에 남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시미즈 이쿠타로 『교양인의 독서생활』은 제목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교양서 읽기에 특화된 독서론을 개진하고 있는데, 책의 말미에서 “교양서는 소수자, 곧 뜻을 세운 사람을 위한 것”(p.208)이라는 저자의 말로 모든 것이 요약된다. 나도 그랬지만, 사람은 일정한 시기마다 정신적 성장을 하게 되는데 각각의 단계를 스스로의 깨달음과 행동의 변화로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며, 특히 성장을 거듭함에 따라 좀 더 깊은 사고와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책이 반드시 한 권씩은 있는 법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교양이란 단순한 지식의 집적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힘쓰는 과정에서 나를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며 선하게 바로 세우는데 꼭 필요한 깊이 있는 사색과 성찰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교양서란 올바른 뜻을 더욱 견고하게 유지해나가는데 가까이 두고 꾸준히 읽어야 하는 정신의 원천이다. 따라서 진정한 교양인은  절대 겸손한 사람이다. 당신은 교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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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 수업 - 자연의 벗들에게 배우는 소박하고 진실한 삶의 진리
김성호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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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곤충들과 함께 산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일 뿐이고 인간만이 지구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니 인간의 편의에 따라 동식물을 이익과 불이익으로 분류하는 자체도 자연에 반하는 잔혹한 행위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마치 트렌드가 되어버린 듯, 자연으로의 회귀 또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따위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본래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그저 도시의 시끄러움을 피해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 살고 싶다는 욕망 아닌 욕망이 전부라면 결코 자연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힘들게 가꾼 밭을 하룻밤 만에 멧돼지가 온통 헤집어놓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멧돼지를 찾아서 몽땅 죽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멧돼지의 서식지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멧돼지의 삶을 파괴하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인간이 파고 들어간 그 자연 속에서 인간보다 먼저 새끼를 낳고 기르며 살고 있던 동식물·곤충들의 삶을 인간의 삶과 동등한 것으로 인식할 때에만 비로소 성립되는 관계인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얼마나 착취하고 인간의 이익에만 맞추어 재단하거나 인간 아닌 다른 종들을 얼마나 쉽게 멸종시키면서 마치 자연의 주인인 냥 행세해왔는가? 그 결과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간 동식물·곤충이 몇 종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사라져 가고 있는가? 안타깝고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능한 개미 한 마리, 지렁이 하나 밟지 않으려 조심하고, 아파트에 가끔 출몰하는 거미마저도 자유롭게 살도록 허락하다 보니 곳곳에 크고 작은 거미줄들이 널려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 마치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잔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는 책을 읽었다. 서남대 생명과학과 김성호 선생의 『나의 생명 수업』이 바로 그것. 식물생리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매우 시적인 문체로 제시하는 자연과의 진정한 합일. 책 전체에 걸쳐 동식물과 곤충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넘쳐흐른다. 그의 눈에는 자연 속의 모든 동식물과 곤충들이 인간보다 오히려 더욱 융숭 깊고 과도하게 욕심 부리지 않으며 제가 속한 곳에서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극히 선한 존재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피라미도 할 줄 아는 양보」라는 글이었다. 한국의 민물고기 중 피라미와 갈겨니라는 두 종이 유사한 모습과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 갈겨니는 계곡이나 하천의 상류 지역에 주로 살고 피라미는 하천의 중류 지역에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종이 어쩌다 서식지를 공유할 때가 있다고 하는데, 보통 수서곤충이나 유기물 또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모두 먹는 피라미가 갈겨니의 유일한 먹이인 수서곤충은 먹지 않고 유기물과 식물성 플랑크톤만 먹는다는 놀라운 사실! 피라미도 할 줄 아는 양보? 우리들 인간은 어떤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인간의 욕망 행태에 대해 더 이야기 해보아야 무엇 하겠는가? 우리는 서로 양보하며 살고 있는가? 내 욕망의 무한 충족만을 위해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도 오직 자신의 쾌락만이 전부인 비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김성호 선생은 말한다, ‘펴진 무릎 먼저 접고 고개마저 숙여 조금만 더 가까이서 보’라고. 우리는 서로를 진정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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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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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2.16∼1827.3.26)에 관한 나의 인상은 전적으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의 『베토벤의 생애』라는 짧은 책 한 권에 의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생 때 삼중당 문고로 읽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문예출판사 문예교양선서의 54번째로 나온 46판으로 두 번째 읽었으며, 이번에 같은 문예출판사의 신판(국판)을 구하게 되어 또 한 번 읽었다.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한 번 읽기도 힘든 책을 세 번씩이나 읽는 것을 두고 시간과 지력의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삶에 흔적을 남기는 책도 몇 권은 있게 마련 아닌가. 고등학생 때 읽었던 『베토벤의 생애』는 음악 시간에 배웠던 전기적 사실을 확인해보고자 그냥 한 번 읽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악성이라 불리는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작품을 남겼는가 정도의 관심에 그쳤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당시에 끝까지 들어 보았던 베토벤의 음악은 교향곡 9번「합창」이었고, 그 때의 영향인지 지금도 내게 베토벤의 최고 작품은 단연「합창」이다. 각설하고, 『베토벤의 생애』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때는 물론 대학생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보다 조금 머리가 굵어졌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름 고민하면서 학교 뒷산에 수시로 올라 이 책 저 책을 닥치는 대로 읽던 그 시절, 서울역 앞에 즐비하던 헌책방 중 한 곳에서 구한 문예출판사판 『베토벤의 생애』를 펼쳐 한 장씩 읽어가면서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베토벤의 영웅적 삶에 동화되어 갔다. 개인적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하루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며 온전한 삶을 살았던 한 작곡가의 생애가 진정한 거인의 모습으로 내 대학생 시절을 온통 지배했다. 당시에 샀던 대형 베토벤 흑백 초상화 브로마이드는 지금도 안방 벽에 걸려 있는데, 그 형형한 눈빛과 단호하게 꾹 다문 입술, 꿈틀거리는 머리카락은 그대로 치열했던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시절 용돈을 아껴 9곡의 교향곡과 5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LP로 한 장씩 구해 차례대로 들으면서 고뇌가 산출한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절대로 도덕적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어느새 마흔 끝자락에 선 중년이 되었다. 노안도 함께 찾아 와 더 이상 작은 글씨를 선명하게 볼 수 없게 됐을 때 내 앞에 나타난 큰 글씨의 『베토벤의 생애』. 또 읽었다. 돋보기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 중년이 되어 구입한 「베토벤 전집」CD 박스 셋 2종으로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바가텔, 현악사중주,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베토벤의 전 작품을 한 곡씩 들으며 상실의 슬픔과 고독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 특히 후기현악사중주는 대학생 시절에 몇 번 들으려 시도했다가 그 난해함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었는데, 중년이 되어 한 곡씩 천천히 들어 보니 단순한 선율 이상의 깊이와 정신적 심오함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는 경험을 했다. 후기현악사중주는 적어도 중년을 통과해야 이해할 수 있는 베토벤 음악의 정점이다. 나는 한국의 중년 사내들이 베토벤 후기현악사중주를 들으며 돈이나 권력, 성욕의 무한하고 허무한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기를 바란다. 후기현악사중주를 들으면서 나는 인간의 삶이란 것이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온통 고뇌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그 고뇌가 인간을 얼마나 성장시키고 내면의 욕망을 절제하도록 힘이 되며 외면적 겉치레를 무시하도록 하는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후기현악사중주를 이해하고 그 미학에 공감하게 되기까지 내 삶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고비와 굴곡을 거쳐 마침내 통합적 사유에 도달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처음 읽었던 『베토벤의 생애』는 어느 살아있는 스승보다도 내게 진정한 삶을 가르쳐준 한 권의 책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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