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 - 별난 화가에게 바치는 별난 그림에세이
카트린 뫼리스 글.그림, 김용채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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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전부터 Eugene Delacroix(1793~1863)의 그림들을 좋아했지만, <뒤마가 사랑한 화가 들라크루아>라는 책을 읽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 1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이고 카트린 뫼리스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익살스럽게 모사한 Delacroix의 명작들 덕분에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생전에 비평가들로부터 갖은 모략과 몰이해에 시달린 Delacroix이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화풍을 버리지 않았고 오늘날엔 루벤스나 고야, 벨라스케스 계열의 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편의상 구분은 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어느 누구의 화풍과도 다르다. 천재성이란 결국 독창성과 같은 것처럼, 그의 그림은 그의 그림인 것이다. 전례가 없다는 것, 동시대의 그 어떤 흐름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시대를 앞서 간다는 것은 사상 이전에 가치의 문제이다. 이글거리는 색채와 격렬한 화면 구성, 고집스럽게 추구했던 개성이 그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그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눈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의 황홀이다.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오늘도 나는 들라크루와의 화집을 뒤적이며 시각적 에로티시즘에 빠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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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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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에 읽었던 또 한 권의 책에 관한 책은 미국 듀크 대학교의 토목공학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서재에 꽂힌 책>이다. 제목 그대로 책꽂이와 책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누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나 역시 책을 사랑하고 서재를 꾸미는데 공을 들이는 사람이라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별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읽는 도중 책의 여백에 내 생각도 적어나가면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책등에 제목과 저자명, 출판사명 등을 달고서 그 부분이 바깥을 보도록 하는 데 1200년이 걸렸고, 책꽂이가 벽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확보하는데 1000년이 걸렸다는 것. 인간은 익숙해진 것을 여간해서는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삶과 직결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물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지 않은 책이야 말해 무엇 하리! 그럼에도 안락함을 깨고 불편을 개선하면서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소수도 있게 마련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다름없다. 인간이 책을 발명하고 그 책을 담기 위한 궁리를 거듭해온 역사 자체가 정신적 발달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이 책 말미에 저자가 책 정리법을 실어 놓았는데 이 것 또한 유용하게 참고할 만하다. 수고스럽지만 그대로 옮겨 보면 1. 저자의 성 순서에 따라 2. 제목 순서에 따라 3. 주제에 따라 4. 크기 순서에 따라 5. 수평으로 눕혀서 6. 색깔에 따라 7. 하드백과 페이퍼백을 별도로 8. 출판사에 따라 9.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구분 10. 생긴 순서에 따라 11. 출판된 날짜순으로 12. 페이지 수에 따라 13. 듀이의 십진법에 따라 14. 의회 도서관 시스템에 따라 15.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에 따라 16. 가격에 따라 17. 새 책과 헌 책을 구분하여 18. 즐겨 읽는 정도에 따라 19. 감정적 가치에 따라 20. 출처에 따라 21. 훨씬 더 신비한 배열 기준에 따라 22. 찬장 서재에 대하여 23. 책가위에 대하여 24. 두 정신의 결혼에 대하여 등 모두 24가지에 이른다. 나는 주로 3번 주제에 따라 책을 구분하는 편인데(그래서 분류해 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주제가 대략 20여개 쯤 된다. 그러니까 내 서재와 거실에는 그 20여개 주제에 해당하는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좋아하는 작가나 저자의 책들을 한 곳에 모아 두기도 한다(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삼중당문고판부터 동서문화사판. 그리고 열린책들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본들이 한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어떤 방법을 선호하든 자신만의 배열법은 가지고 있으리라. 이렇게 책들을 배열하고 다시 꽂는 행동도 나에게는 책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참고로 24번은 일전에 소개한 앤 패디먼이 결혼 후에 자신의 책과 남편의 책을 섞는 과정에서 부딪쳤던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다. 관련 부분을 읽어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웃음이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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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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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사실 일본 소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雪國>을 읽어 본 것이 유일하다), 이번에 <잡문집>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에세이집을 단숨에 읽고 나서 한 번쯤 그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에세이집에서 특히 내 마음과 통했던 부분은 하루키가 재즈와 LP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재즈와 LP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데 그도 나와 같은 아날로그적 인간인 것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하루키의 일본인답지 않은 시원한 문체와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폭넓은 관심사에 삶의 불가해성 따위는 어떻게든 내면에 녹아든다. 오랜만에 느껴본 유쾌한 책읽기였다. 이 참에 <상실의 시대>도 읽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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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딜레마 - 원자력 르네상스의 미래
김명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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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자 교수의 <원자력 딜레마>는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책에 비해 좀 더 포괄적으로 원자력 논의의 핵심에 다가 갈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한국의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책에서도 논의되지 않았던 사항들까지 매우 자세히 다루고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도 서술되고 있듯, 원자력은 에너지 이전에 종말 병기로 개발된 원자폭탄에서 근원한 것이므로 그 태생부터가 모순적이다. 전 세계에 400(한국도 현재 21기를 가동 중에 있고 7기가 건설 중이며 4기가 건설 준비 중에 있는 원자력 대국이다)기가 넘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하는데, 후쿠시마에서 보듯, 한 기만 문제가 생겨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원자력 발전소 한기 한기가 잠재적 원자폭탄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럼 원자력 발전을 모두 없애면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당장 부족한 에너지 수급은 무엇으로 보충할 것이냐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우선 석유나 석탄 등의 화석연료가 서서히 고갈되어가는 시점에서 원자력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일반인들도 원자력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당장 원자력 가동 중단으로 인한 에너지 부족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함께 풀어갈 의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한 요즈음이다. 책을 읽고 나서도 해결책은커녕 가슴이 답답한 경우도 이번이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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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 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택 옮김 / 동아시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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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이 쓴 책이다. 1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책이지만, 후쿠시마 원자력 사태에 대한 뼈아픈 자기 반성이자 세계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장미 빛 미래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정부와 관련 기업, 그리고 군부가 달라붙어 각자의 이익을 챙기느라 정작 불완전한 기술인 원자력의 내재적인 결함은 감추고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그럴듯한 모토로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여 온 원자력의 본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상당수의 원자력 발전소가 한계 수명을 연장하면서 운영중에 있고, 원자력 불감증도 정도를 넘었다. 일본의 원자력만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원자력도 시한폭탄인 셈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남한의 원자력 발전은 둘 다 한반도를 죽음의 재로 뒤덮이게 할 잠재적이고 실제적인 위협인데도 일반인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공론화되지도 않고 있으며 후쿠시마에서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본질은 외면한 채 제 목숨만 보존하면 된다는 심리다. 물론 당장 원자력발전을 중지하면 에너지 확보에 비상이 걸릴텐데, 개인 개인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좀더 전력투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거리에 자동차의 물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름값이 올라도 자동차 이용은 줄지 않으니 에너지 절약은 공염불인 듯 싶기도 하다. 원자력은 아무리 조심하고 재난 상황에 대비한다 해도 고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완전한 기술이다. 우선 원자력의 본질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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