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의 독서생활 -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미즈 이쿠타로 지음, 김석일 옮김 / 기담문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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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쓴 독서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전투를 치르듯 목숨을 걸고 독서에 전념한다는 것. 오늘 죽을 것처럼 책을 읽고 그렇게 읽은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의 삶에도 심각할 정도의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동안 읽어왔던 여러 독서론 중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나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쓰루가야 신이치의 『책을 읽고 양을 잃다』,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 그리고 이번에 읽은 『교양인의 독서생활』을 쓴 시미즈 이쿠타로에 이르기까지, 이들 5인의 일본인이 읽어낸 책의 양과 질은 평범한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읽을 양과 질을 압도적으로 앞 서 나가 좌절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큼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책을 읽는 방법론도 극히 체계적이고 정교하여 오직 책 읽기만으로 몇 개의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통찰력을 지닐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책을 읽는 것일까? 아마도 작년 겨울에 읽었던 샤를 단치의『왜 책을 읽는가』에 나오는 구절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나아갈 때 나는 죽음과 경주를 한다. 이는 다른 모든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독서의 본질적인 동기이자 유일한 이유, 그것은 바로 죽음과 당당히 결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독서는 아주 짧은 한순간이지만 죽음을 이긴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 즉 책은 그보다 좀 더 오래 죽음을 이긴다.”(샤를 단치, 『왜 책을 읽는가』, 이루, p.259~60) 나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잠시 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지속해나간다. 마치 책을 읽고 있으면 죽음도 내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려줄 것처럼. 그래서 단 하루도 책을 읽지 않고 넘어가는 적이 없고 그만큼 죽음이 두려워서 독서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아마 위의 일본인들도 거의 비슷한 생각에서 이토록 책을 읽고 그것에서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것인지도. 죽기 전에 읽어두어야 할 책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것들을 다 읽을 때까지는 죽을 수 없다는 결연함이 내게도 있다. 내 죽음과 더불어 모두 소멸할 것이지만 그래도 분투했던 흔적은 지상에 남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시미즈 이쿠타로 『교양인의 독서생활』은 제목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교양서 읽기에 특화된 독서론을 개진하고 있는데, 책의 말미에서 “교양서는 소수자, 곧 뜻을 세운 사람을 위한 것”(p.208)이라는 저자의 말로 모든 것이 요약된다. 나도 그랬지만, 사람은 일정한 시기마다 정신적 성장을 하게 되는데 각각의 단계를 스스로의 깨달음과 행동의 변화로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며, 특히 성장을 거듭함에 따라 좀 더 깊은 사고와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책이 반드시 한 권씩은 있는 법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교양이란 단순한 지식의 집적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힘쓰는 과정에서 나를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며 선하게 바로 세우는데 꼭 필요한 깊이 있는 사색과 성찰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교양서란 올바른 뜻을 더욱 견고하게 유지해나가는데 가까이 두고 꾸준히 읽어야 하는 정신의 원천이다. 따라서 진정한 교양인은  절대 겸손한 사람이다. 당신은 교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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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 수업 - 자연의 벗들에게 배우는 소박하고 진실한 삶의 진리
김성호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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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곤충들과 함께 산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일 뿐이고 인간만이 지구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니 인간의 편의에 따라 동식물을 이익과 불이익으로 분류하는 자체도 자연에 반하는 잔혹한 행위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마치 트렌드가 되어버린 듯, 자연으로의 회귀 또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따위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본래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그저 도시의 시끄러움을 피해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아 살고 싶다는 욕망 아닌 욕망이 전부라면 결코 자연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힘들게 가꾼 밭을 하룻밤 만에 멧돼지가 온통 헤집어놓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멧돼지를 찾아서 몽땅 죽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멧돼지의 서식지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멧돼지의 삶을 파괴하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인간이 파고 들어간 그 자연 속에서 인간보다 먼저 새끼를 낳고 기르며 살고 있던 동식물·곤충들의 삶을 인간의 삶과 동등한 것으로 인식할 때에만 비로소 성립되는 관계인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얼마나 착취하고 인간의 이익에만 맞추어 재단하거나 인간 아닌 다른 종들을 얼마나 쉽게 멸종시키면서 마치 자연의 주인인 냥 행세해왔는가? 그 결과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간 동식물·곤충이 몇 종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사라져 가고 있는가? 안타깝고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능한 개미 한 마리, 지렁이 하나 밟지 않으려 조심하고, 아파트에 가끔 출몰하는 거미마저도 자유롭게 살도록 허락하다 보니 곳곳에 크고 작은 거미줄들이 널려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 마치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잔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는 책을 읽었다. 서남대 생명과학과 김성호 선생의 『나의 생명 수업』이 바로 그것. 식물생리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매우 시적인 문체로 제시하는 자연과의 진정한 합일. 책 전체에 걸쳐 동식물과 곤충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넘쳐흐른다. 그의 눈에는 자연 속의 모든 동식물과 곤충들이 인간보다 오히려 더욱 융숭 깊고 과도하게 욕심 부리지 않으며 제가 속한 곳에서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극히 선한 존재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피라미도 할 줄 아는 양보」라는 글이었다. 한국의 민물고기 중 피라미와 갈겨니라는 두 종이 유사한 모습과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 갈겨니는 계곡이나 하천의 상류 지역에 주로 살고 피라미는 하천의 중류 지역에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종이 어쩌다 서식지를 공유할 때가 있다고 하는데, 보통 수서곤충이나 유기물 또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모두 먹는 피라미가 갈겨니의 유일한 먹이인 수서곤충은 먹지 않고 유기물과 식물성 플랑크톤만 먹는다는 놀라운 사실! 피라미도 할 줄 아는 양보? 우리들 인간은 어떤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인간의 욕망 행태에 대해 더 이야기 해보아야 무엇 하겠는가? 우리는 서로 양보하며 살고 있는가? 내 욕망의 무한 충족만을 위해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도 오직 자신의 쾌락만이 전부인 비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김성호 선생은 말한다, ‘펴진 무릎 먼저 접고 고개마저 숙여 조금만 더 가까이서 보’라고. 우리는 서로를 진정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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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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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2.16∼1827.3.26)에 관한 나의 인상은 전적으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의 『베토벤의 생애』라는 짧은 책 한 권에 의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생 때 삼중당 문고로 읽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문예출판사 문예교양선서의 54번째로 나온 46판으로 두 번째 읽었으며, 이번에 같은 문예출판사의 신판(국판)을 구하게 되어 또 한 번 읽었다.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한 번 읽기도 힘든 책을 세 번씩이나 읽는 것을 두고 시간과 지력의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삶에 흔적을 남기는 책도 몇 권은 있게 마련 아닌가. 고등학생 때 읽었던 『베토벤의 생애』는 음악 시간에 배웠던 전기적 사실을 확인해보고자 그냥 한 번 읽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악성이라 불리는 그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작품을 남겼는가 정도의 관심에 그쳤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당시에 끝까지 들어 보았던 베토벤의 음악은 교향곡 9번「합창」이었고, 그 때의 영향인지 지금도 내게 베토벤의 최고 작품은 단연「합창」이다. 각설하고, 『베토벤의 생애』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때는 물론 대학생 시절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보다 조금 머리가 굵어졌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름 고민하면서 학교 뒷산에 수시로 올라 이 책 저 책을 닥치는 대로 읽던 그 시절, 서울역 앞에 즐비하던 헌책방 중 한 곳에서 구한 문예출판사판 『베토벤의 생애』를 펼쳐 한 장씩 읽어가면서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베토벤의 영웅적 삶에 동화되어 갔다. 개인적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하루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며 온전한 삶을 살았던 한 작곡가의 생애가 진정한 거인의 모습으로 내 대학생 시절을 온통 지배했다. 당시에 샀던 대형 베토벤 흑백 초상화 브로마이드는 지금도 안방 벽에 걸려 있는데, 그 형형한 눈빛과 단호하게 꾹 다문 입술, 꿈틀거리는 머리카락은 그대로 치열했던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시절 용돈을 아껴 9곡의 교향곡과 5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LP로 한 장씩 구해 차례대로 들으면서 고뇌가 산출한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절대로 도덕적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많은 일들을 겪고 나니 어느새 마흔 끝자락에 선 중년이 되었다. 노안도 함께 찾아 와 더 이상 작은 글씨를 선명하게 볼 수 없게 됐을 때 내 앞에 나타난 큰 글씨의 『베토벤의 생애』. 또 읽었다. 돋보기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 중년이 되어 구입한 「베토벤 전집」CD 박스 셋 2종으로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바가텔, 현악사중주,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베토벤의 전 작품을 한 곡씩 들으며 상실의 슬픔과 고독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 특히 후기현악사중주는 대학생 시절에 몇 번 들으려 시도했다가 그 난해함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었는데, 중년이 되어 한 곡씩 천천히 들어 보니 단순한 선율 이상의 깊이와 정신적 심오함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는 경험을 했다. 후기현악사중주는 적어도 중년을 통과해야 이해할 수 있는 베토벤 음악의 정점이다. 나는 한국의 중년 사내들이 베토벤 후기현악사중주를 들으며 돈이나 권력, 성욕의 무한하고 허무한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기를 바란다. 후기현악사중주를 들으면서 나는 인간의 삶이란 것이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온통 고뇌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그 고뇌가 인간을 얼마나 성장시키고 내면의 욕망을 절제하도록 힘이 되며 외면적 겉치레를 무시하도록 하는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후기현악사중주를 이해하고 그 미학에 공감하게 되기까지 내 삶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고비와 굴곡을 거쳐 마침내 통합적 사유에 도달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처음 읽었던 『베토벤의 생애』는 어느 살아있는 스승보다도 내게 진정한 삶을 가르쳐준 한 권의 책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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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즐거움 - 인문학자 김경집의 중년수업, 개정판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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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중년이 되고 난 후 가장 달라진 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나의 죽음을 긍정하게 된 것. 그래서 별 변화는 없지만 일상사 하나하나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고 그만큼 소중하며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궁극의 기쁨임을 깨닫게 된 것. 비록 단속(斷續)없는 계절의 순환이 곧 내 육체의 쇠락이라는 어김없는 조짐으로 나타나 양손 위에 피어난 검버섯이 아주 조금 신경 쓰이고 양 무릎에 찾아드는 통증이 계단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만큼 내 정신은 세상 모든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육체의 필연적 소멸이 종국엔 정신의 확산임을 깨닫게 되는 인생의 절정기가 중년이 아닌가 싶다. 소년기의 유치한 장난, 청년기의 무모한 열정, 장년기의 어정쩡한 욕망이 모두 사라진 그 자리에 통합적이고 너그러운 마음이 가득 들어차 내면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모든 중년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욕망은 절제하고 지혜는 늘려나가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것이다. 더 이상의 편견과 왜곡된 사유는 내 뇌 속에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대중지성은 경박해도, 나는 올바르게 판단하고 유연하게 행동하며 폭넓게 사유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인문학자 김경집 선생이 마흔여덟에 쓴 『나이듦의 즐거움』을 내 나이 마흔아홉이 된 올 해 읽게 되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경험이어서 일까, 꼭 내 마음을 들킨 듯, 한 편 한 편의 에세이가 바로 내 삶의 에피소드인 냥 그렇게 정겹고 맑을 수가 없다. 아마 이 책을 읽어 본 내 나이 또래 중년 남성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노안(老眼)이 가져다 준 심안(心眼),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암 발병과 그 고통의 공유 및 죽음에 대한 성찰, 못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 아버지라는 자리, 여행을 향한 소박한 바람, 끝없는 공부에 대한 도전,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우표 수집의 행복, 친구의 죽음으로 촉발된 내 삶의 성찰, 편지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찬양과 느림의 미학 고찰, 산과 자연이 베풀어주는 무조건의 휴식 찬양, 독서의 즐거움, 친구의 소중함, 노부모에 대한 흠모의 정과 그리움 등, 마흔의 끝자락에 선 한 사내가 담담하고 정갈한 언어로 써내려간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인생론이, 평범해서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활 속의 소박하고 별로 극적이지 않은 나날의 체험이 이토록 깊은 성찰로 거듭날 수 있음은 김경집 선생의 섬세한 촉수 덕분이리라. 글을 통해 느낀 것이지만 중년 남자의 사유와 행동이 이토록 순수할 수도 있다는 것에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잔잔하게 슬픔을 달래주고 낮은 목소리로 삶의 작은 기쁨들을 일깨워주는 그 목소리에서 나는 또 한 번의 희망을 보았다. 남자의 삶이 꼭 많은 돈과 권력, 야심과 출세만으로 점철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느니 차라리 내면으로 침잠해 고요히 맑게 살리라. 나는 중년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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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밥상 - 먹지 않을 수 없다면 정확히 알고 먹자
박지현.서득현.배관지 지음, 배나영 구성 / 이지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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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란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두루 통용되는 대중지식인가? 누가 상식을 정의하고 유포시키는가? 아니, 누가 상식을 마치 전체인 냥 포장하고 진실인 냥 과장하는가? 특히 가공식품에 관한 상식 이면에는 관련 기업들과 식품첨가물 제조업자, 그리고 소비자라는 3자 사이의 권력관계가 얽혀 있어 더욱 엄밀한 선택과 현명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이럴 때 읽은 『행복한 밥상』은 실로 명쾌하게 식품첨가물(특히 카제인나트륨과 MSG에 대한 부분이 대단히 유용하다)에 대한 기왕의 오해와 관련기업의 거짓말, 올바른 선택의 기준에 대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식품기업의 정보조작에 기만당하지 않으려면 소비자도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 바로 그것. 평소에 소비자가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친숙한 브랜드의 상품을 구입하는 허점을 노려 그럴듯한 업계 용어와 교묘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가격만 올리고 내용물은 바꾸지 않는 각종 가공식품업체의 영업 전략에 더 이상 기만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올바른 “지식”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분한 지식이 쌓이는 셈이니, 소비자의 건강에 관한 관심을 이용해서 오히려 소비자를 우롱하는 식품회사의 비도덕성을 똑똑히 알고 자신의 선택에 신중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 올바른 지식은 이 때 꼭 필요한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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