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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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2008년에 읽었는데, 요즘도 수시로 꺼내 읽곤 한다.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도 대단한 정보량을 담고 있지만 대개 러시아 관련서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이후 읽어 온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책 뒷표지에 따르면 인간은 물론, 지구, 우주, 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 국제정치와 사상, 예술과 미술, 철학과 사상, 종교, 뇌과학, 죽음, 문명, 생물권, 신화와 역사, 전쟁, 중근동, 그리스와 로마, 환경과 생태학, 생명공학, 성과 사랑, 현대정치의 역학, 금융공학과 세계경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분류한 거의 전분야를 아우른다. 여기에다 머리말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입출력비(입력 대 출력의 비율)가 100대 1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책 한 권을 쓰려면 100권을 읽어야 하는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럭저럭 100권(공저 포함) 정도의 책을 썼는데, 그런 셈법에 따르면 읽은 책이 그것의 100배인 만 권은 족히 될 것이다.(p.9)" 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글을 쓰기 위해 만 권의 책을 그저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몇 배의 사색을 했을 것이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또 그 몇 배의 지식을 창출했으리라 생각하면 그 동안의 노력과 육채적 고난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동안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책들 중에서 한국에 출판되어 있는 <임사체험>, <사색기행>, <우주로부터의 귀환>, <지식의 단련법>,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知의 정원> 등, 거의 모든 책을 읽었는데, 각각의 책 뒤에 소개되어 있는 참고 문헌의 방대함과 그 참고 문헌을 섭렵하고 때로는 실제 취재를 거쳐 써내려간 다치바나 다카시의 필력에 압도되곤 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깊은 정보는 물론 허투루 자의적 해석을 내리지 않는 철저한 과학적 고증성까지, 세계관과 지성적 사고가 일치하는 글쓰기는 전무후무할 정도다. 일본에서 '知의 거장' 또는 '일본 최고의 독서가'라 불리는 저자의 삶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써 온 그 치열함과 "더 전방위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 인간학과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적 인식까지, 이 전부를 포괄한 세계인식을 원한다."라는 위 책 뒷 표지의 말로도 압축할 수 없는 방대한 지식의 촉수에 따른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일찍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독서를 일컬어 "자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독서를 계속해 나아가게 되면 다른 사람의 사상이 우리의 머리 속으로 가차없이 흘러 들어온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결함도 없을 정도로 완전무결한 체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항상 정리된 사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색가에게는 이 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쇼펜하우어 인생론, 김재혁 옮김, 육문사 1994, p. 148)"라고 말했을 때의 독서는 읽을 책이 많지 않았고 또 쇼펜하우어 자신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갖추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던 만큼,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능한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읽어야만 생존할 수 있음을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편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최근 구매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천황과 도쿄대>를 읽고 있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현대 세계에서 내 머리로 사색할 수 있는 힘도 우선은 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정평 있는 책들을 읽는 것으로 촉발된다. 그리고,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생각이 어디 있으며 내 것, 네 것을 구분할 만큼 지식의 폭이 좁던가? 읽고 또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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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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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씨는 내가 언젠가는 실천하거나 마음먹고도 생활에 메여 무디어 가는 도중, 벌써부터 知識과의 맞대결에서 멋지게 승리를 거둔 사람이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출판풍토가 부럽고, 이렇게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을 예우하는 사회 분위기도 부럽다. 어떻든, 나도 그동안 부지런히 사 모아 온 각 분야의 책들을 틈틈이 읽어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더욱 많이 터득해야겠다. 여전히 책은, 지식과 지혜의 보고이니까. 2001. 9. 28(금) 完讀 後記”

위의 글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책 뒤에 써놓은 짧은 독후감이다. 벌써 11년 전 이니까,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1년이 더 지난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볼 때 아직까지 다치바나 다카시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을 읽고 사색하며 책을 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나도 픽션류는 되도록 읽지 않는다. 물론 다치바나 다카시도 어린 시절부터 세계문학을 거의 섭렵 했던바 문학의 힘을 부정하진 않지만, 상상세계보다 현실세계가 더욱 역동적이고 흥미롭다는 것을 문예춘추 입사 후 선배로부터 충고를 듣고 <세계 논픽션 전집> 50권 독파 후에 깨닫고는 인식전환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픽션류는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 영향일까, 나도 10년 넘게 문학류는 읽지 않았다. 그랬더니 비로소 세계가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고 사회가 보였다. 정치와 경제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과학의 흐름이 눈에 들어 왔다. 아하, 다치바나 다카시가 논픽션에 빠져 든 이유도 이것이었구나. 해서, 아마 앞으로도 나는 픽션은 읽지 않고 그저 쌓아 둘 것이다. 소설과 시는 노년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 둘 것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을 더욱 단단히 죄고, 지금까지 인간이 분류해 놓은 지식 분야에 하나씩 도전하고 싶다. 물론 독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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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아트 카페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27
이주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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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읽기였다. 미술에 관한 책을 자주 읽는 편인데, 특히 편안하고 간결한 해설과 역사를 관통하는 시각은 미술 평론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본문의 글 중에서 특히 <이야기가 있는 미인도> 부분이 재미있었다. 남성 중심 시각으로 형성되어 간 서양 미인의 변천사라 할까, 욕망과 애증이 뒤섞인 남성 화가들의 붓끝에서 되살아난 사포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아프로디테에게 매혹되지 않을 남성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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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중적으로 읽었던 세계화 관련 생각 몇 가지. 사실 세계화에 대한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다. 소위 서구 선진 강대국들이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그들이 고기를 덜 먹으면 소, 돼지가 먹는 곡물만으로도 충분히 최빈국의 굶주림이 해결될 수 있고, 그들이 자동차를 덜 타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 교토 의정서를 준수할 수 있으며, 그들이 최신 전자 제품에 대한 욕망을 줄이면 대기업이 아프리카의 내전을 틈타 그 곳의 지하자원을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는 없을 테니까. 세계화의 본질은 선진 강대국들이 그동안 누려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습관을 포기하지 못하고 개발도상국의 희생을 발판 삼아서라도 영원히 자신들만의 안락함을 누리겠다는 이기적 발상에 불과한 것이다. 과연 그들이 고기를 덜 먹고, 자동차를 덜 타며, 최신 전자제품 소유를 포기하겠는가?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굶주리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자신들의 안락함을 포기하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인종적 오만함과 기술적 우위, 정치적 안정 따위의 자기 기만적인 사고방식으로 지금까지 군림해 온 그들이 특권을 기꺼이 포기하고 진정으로 지구의 안전과 후진국의 발전을 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그들은 절대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 라도 타국을 침략하여 기름을 확보할 것이고, 최빈국에서 내전을 유발하여 무기를 팔 것이며, 값싸게 지하자원을 확보하여 그것으로 전자제품을 만들어 비싼 값에 팔아먹을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이 지향하는 바도 선진 자본주의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가? 한국도 이미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가? 한국보다 못살고 발전이 더딘 지역을 무시하고 오만하게 굴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은 얼마나 가난한 나라를 돕고 있는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세계화는 무엇인가? 미국 흉내 내기? 아니면 미국 추종하기? 선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최빈국의 자원 및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한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이고 있는데 언제까지 쾌적한 라이프 스타일만을 강조하며 진실을 가릴 것인가? 얼마 전 끝난 핵안보 정상회의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의 핵강국들이 그 많은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이 없는데 무슨 핵 테러를 걱정하는가? 과연 맨주먹뿐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핵무기를 소유하여 그것을 운영할 막대한 자본을 소유하고 있거나, 플루토늄을 확보하여 그것을 핵무기로 만들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국과 러시아가 소유한 핵무기 자체가 지구의 평화에 가장 커다란 위협이 아니냐? 왜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진실을 호도하는가? 한국의 언론은 그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 강대국들의 대변인일 뿐이다. 자주적으로 사고할 수도 없고 종속적인 상황에서는 그저 강대국들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화는 좋은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세계화가 계속되면 부유한 국가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국가는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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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어라. 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한 권 책읽기도 부족하다. 책이 도처에 있는데, 읽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직무유기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공간만은 확보하라. 기술의 속도에는 뒤쳐져도 지성의 연마는 게을리 하지 말라. 기술도, 아이디어도 결국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두뇌의 힘을 기르는데 독서만한 것은 또 없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그렇게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풀고 헤치며 삶과 죽음 너머 그 아득한 시공간에 닿기를 꿈꾼다. 해서 이번 달 내 독서 주제는 <히틀러와 나치 시대>로 정했다. 그동안 사 두고 읽지 못했던 관련서들과 최근에 알라딘에서 구매한 책들을 서재에서 꺼내 보았다. 꺼내 놓고 보니 꽤 많은 편이다. 우선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부터 <대학살의 전주곡 크리스탈 나흐트>, <나치시대의 일상사>,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파시즘>, <히틀러가 바꾼 세계>, <게슈타포>, <히틀러 국가>,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독일 제 3제국의 비극>, 그리고 히틀러가 직접 썼다고 하는 <나의 투쟁>까지 모두 15권이다. 이중 <집단 애국의 탄생, 히틀러>는  이미 읽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차례대로 읽어 나갈 것이다. 오래 전(1997년쯤?) 읽었던 홍사중 선생의 <히틀러>로 촉발된 히틀러와 나치 시대에 대한 관심이 오래도록 내 정신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는데, 이번 독서를 계기로 철저한 이론적 정립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위의 책들은 분량도 상당하여 한 달 내에 다 읽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읽어 나가자. 어떤 현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만이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똑바로 세우는 가장 견고한 방법임은 이미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실천했다. 나도 그렇게 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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