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책을 위하여 - 한 인문주의자의 책 만들기 함께 탐험하는 책의 유토피아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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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생 시절에 미국의 사회학자 C.W. 밀즈의 『파워 엘리트』를 읽고 나서 부터 대단히 신뢰하게 되었던 출판사인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쓴 일종의 출판 회고록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한 시대에 출판이 담당해야 할 역할 중 하나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를 거쳐 1976년에 [한길사]를 창립하여 7~80년대에 [오늘의 사상신서] 시리즈로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올바로 보고자 했고, 현재는 [한길그레이트북스]로 고전의 재해석과 인문학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인인 김언호의 사장의 깊은 속내가 가슴 깊이 다가온다. 내가 그동안 소장해 왔고 또 읽어 온 한길사의 책들 중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1』,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같은 저자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의 기억』, 리 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홍 사중 선생의 『히틀러』, 『근대시민사회사상사』, 임 철규 선생의 『그리스 비극』, 『눈의 역사, 눈의 미학』, 이 광주 선생의 『동과 서의 차 이야기』, 『교양의 탄생』,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 영국의 역사학자 E. J. 홉스봄의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자크 루엘랑의 『성전, 문명 충돌의 역사』 등, 몇 권 되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저자와 책 제목이 떠오를 정로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책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대학 초년생 시절 읽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1』은 비록 논문 모음이지만, 한 편 한 편이 우리의 역사와 민중의 저항성, 그리고 극복의지에 이르기까지, 그전까지 학교에서 배웠던 지배자의 역사를 넘어 역사의 사실성과 생동감을 전해주었던 책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앞으로도 남은 생 동안 [한길사]의 책들은 가장 애호하는 책으로 남으리라. 곧 [한길사]에서 나온 『해방전후사의 인식』2, 3, 4, 5, 6권을 구매할 예정인데, 이 책들을 다 읽고 나야 비로소 한국 현대 현대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참, [한길사]에 얽힌 개인적 기억도 있다. 대학원에 복학했던 1993년도에 결혼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 한길사에 입사지원서를 냈던 적이 있었고 며칠 동안 강남사옥으로 출근하던 즐거웠던 일.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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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의 유산 A Heritage of Audio
김영섭 지음 / 한길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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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건축가 김영섭의 『오디오의 유산』. 이 책은 책이라기보다 차라리 귀의 황홀경을 열어주는 오디오 그 자체다. 커다란 판형에 무게도 상당해서 절대 누워서는 읽을 수 없고 반듯이 책상에 펴놓고 읽어야 하는 만만찮은 인쇄 예술품이다. 이 책은 대단히 지성적이고 게다가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내 친구에게서 오래 전에 빌렸으나, 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조금씩 읽다보니 완독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내 친구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데, 그의 집에서 전통 있는 유럽제 스피커와 CD 플레이어로 여러 번 들어 보았던 고전음악들은 나의 대중적인 일본제 CD 플레이어 보다 훨씬 쭉 뻗어 나가는 소리로 나를 사로잡곤 했다. 같은 음악도 소스 기기와 앰프, 스피커에 따라 대단히 다르게 들리는 것이 오디오의 본질일 텐데, 고전음악은 유럽에서 발달한 것이므로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세팅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이 책 본문에 등장하는 오디오 기기들은 한 때 오디오에 빠졌었거나 현재 오디오에 빠져 있는 마니아라면 반드시 탐을 낼만한 오디오계의 명기들이다. 나 역시 음악 잡지나 오디오 쇼 등지에서 직접 보았거나 소문으로 들어 보았던 기기들도 있고, 전시회에서 만져본 것도 있지만, 대부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가격과 스펙으로 인해 앞으로도 소유하기가 어려울 제품들이 많다. 그래도 사진으로 나마 볼 수 있어서 눈의 황홀경을 실컷 누렸다. 특히 저자가 실제로 사용해보았던 각 기기들의 개발 역사와 전기적·기계적 설명들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 기기를 가지고 음악을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벗이여, 곧 돌려주려 연구실로 방문할 터이니 기다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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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 - 한.일 공동의 집짓기를 꿈꾸며
김진현 지음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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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끝없이 나오고 있는 일본론은 대부분 단순 인상기에 그치고 있는데 반해, 김 진현 전 서울시립대 총장의 『일본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분석과 비판적 시각이 결합된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이 책이 집필된 2006년이라는 시공간적 틀에서 일본에 관해 논할 수 있는 극한까지 밀고 가 그 근본적인 핵심을 빠짐없이 다루는 저자의 거시적 관점이 사뭇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일본이라는 국가와 그 정책적 지향점, 근본적인 모순, 해결 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결여된 과거사 문제, 야스쿠니,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했던 경험이 왜 엇박자로 나아 갈 수밖에 없는지 등, 이 책을 읽고 나면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나 심정적으로는 멀 수밖에 없는 일본에 관해 저자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책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는 한국과 한국의 가능성에 마음이 약동할 것이다. 그 예언이 일부 적중한 것일까? 올해 최초로 한국이 경상수지에서 흑자를 기록해 일본을 앞섰다고 한다. 진정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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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왜 읽는가? 아니, 왜 읽어야 하는가? 茶山선생, 星湖선생을 포함하는 수없이 많은 우리의 선인들이나 서구의 많은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에 대한 수다한 단상들과 독서기에서 논의되어 온 탁월한 독서법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이야기 했으므로, 이번에는 나의 개인 경험을 통해 책읽기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첫째, 도덕적인 인간이 되고자 함이다. 책읽기는 당장의 물질적 풍요 같은 보상으로 이어지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책읽기 자체는 운동이나 기타 활동처럼 신체의 변화를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서도 특히 책읽기는 가시적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아서 현대처럼 어떤 활동 뒤의 보상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시대에는 별로 득이 될 것이 없는, 어쩌면 공허한 행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이 있다면, 나의 경우처럼, 책읽기는 언제든 버려도 되는 덕목으로 전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실존적 몸부림이라는 것에서 찾고 싶다. 옛 조선의 선비들이 도덕과 원칙을 준수하고 올바른 삶을 살고자 했던 나날의 지침이 바로 책읽기였음을 상기해보면, 세상이 인간성의 타락으로 인한 도덕성의 해이(解弛)나 폭력 또는 이념이 득세하는 시공간으로 치달릴수록 책읽기는 나의 정신을 단련시켜 오로지 도덕적으로 살고자하는 결의를 더욱 굳게 해주는 적극적인 행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뉴스를 보기가 절망적일 만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도덕적 타락상이 극에 달한 지금, 옛 선비들의 맑고 청빈했던 정신세계를 그들이 읽었던 경전 또는 그들이 남긴 책들을 통해 추체험 하는 행동은 비록 금전적인 부유함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무한 욕망을 누르고 진정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지침은 될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내가 책을 고르고 읽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나의 도덕성을 굳건히 지키고 시류(時流)의 잘못된 흐름에서 멀리 벗어나 청명한 정신의 탑을 쌓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에 국한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둘째, 인간이 분류해 놓은 학문 분야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위해서다. 이것은 대단히 실용적인 목적의 책읽기 이지만,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방법으로 책읽기보다 용이한 행동이 또 있는가? 내 전공은 영어영문학인데, 문학만으로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부분적인 이해만이 가능할 뿐 더 깊은 인식에는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므로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내 책읽기의 범위는 먼저 문학을 포함하는 인문과학 전반과 사회과학, 생물학을 포함하는 자연과학의 일부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될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의 전공에만 몰두하고 그 밖의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동향도 모르는 채 지내기에는 인간 뇌의 대부분이 활용되지 못함이 안타깝다. 죽기 직전까지 인간의 뇌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며 그렇게 인식의 폭을 넓혀가는 것인데, 알고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두려움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는가? 고대나 중세처럼 책의 소유나 읽기가 왕족을 포함하는 소수 특권계층의 전유물이었고 따라서 지식과 정보의 독점을 무기로 소수가 권력과 대중 지배력마저 독점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책읽기가 특권도 아니고 그저 대중적인 선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책이 안 팔리고 읽히지도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과 정보가 대중화되었어도 내게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호기심마저 없다면 나는 여전히 정보와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기가 쉽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책읽기를 소홀히 하여 잘못되고 왜곡된 지식과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누구라도 거짓과 비도덕, 또는 폭력과 욕망의 희생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해볼 때 책읽기는 나의 지적 성장과 더불어 나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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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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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사는 늘 승자만을 기억한다. 패자는 곧 잊히고 좌절 속에서 세상을 등지기 마련이다. 비교적 긴 시간동안 읽은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모두 열 개의 소주제 아래 저자가 선정한 패배자들의 이름과 짧은 평전 및 비평이 이어는 형식의 책이다. 예를 들어 「영광스런 패배자들」이라는 소주제 아래에는 롬멜, 체 게바라, 고르바초프가 소개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몰린 패배자들」 아래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만, 트로츠키 등의 이름이 보인다. 패배자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지만, 역사는 승자에게는 관대하고 패자에게는 가혹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롬멜 등의 인물을 패배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롬멜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자살을 종용받았고, 체 게바라는 자신의 사형 집행인 앞에서 오히려 그를 위로했는데.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패배자는 사실 승리자보다 더 인간적이거나 혹은 덜 교만해서 패배자가 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오히려 승리자의 비인간적인 면을 드러내주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생인 토마스 만의 그늘에 가려 스산한 삶을 살았던 작가 하인리히 만부터 괴테의 악의적인 인신공격에 조국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비참하게 죽은 야콥 미하엘 렌츠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승리자는 더 교만하고 자기선전에 능하며 성공을 위해서는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무정하게 내칠 수 있는 사람들임을 패배자는 증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현대사회는 승리자보다 패배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모순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매년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고교생부터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구직자들에 이르기까지 크건 작건 좌절과 실망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패배자는 다시 일어설 힘조차 박탈당하지 않는가? 당장 나부터도 대학 강의가 없는 시기에는 그와 비슷한 심정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승자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지고 허여되는 데 반해 패자에게는 명예도, 돈도, 가까운 사람도 남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 한 번 훌훌 털고 일어서야지. 다산 선생만큼의 의지와 지성, 그리고 굳건한 절제력만 있다면야 못할 것이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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