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역사는 늘 승자만을 기억한다. 패자는 곧 잊히고 좌절 속에서 세상을 등지기 마련이다. 비교적 긴 시간동안 읽은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모두 열 개의 소주제 아래 저자가 선정한 패배자들의 이름과 짧은 평전 및 비평이 이어는 형식의 책이다. 예를 들어 「영광스런 패배자들」이라는 소주제 아래에는 롬멜, 체 게바라, 고르바초프가 소개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몰린 패배자들」 아래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만, 트로츠키 등의 이름이 보인다. 패배자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겠지만, 역사는 승자에게는 관대하고 패자에게는 가혹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롬멜 등의 인물을 패배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롬멜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자살을 종용받았고, 체 게바라는 자신의 사형 집행인 앞에서 오히려 그를 위로했는데.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패배자는 사실 승리자보다 더 인간적이거나 혹은 덜 교만해서 패배자가 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오히려 승리자의 비인간적인 면을 드러내주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생인 토마스 만의 그늘에 가려 스산한 삶을 살았던 작가 하인리히 만부터 괴테의 악의적인 인신공격에 조국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비참하게 죽은 야콥 미하엘 렌츠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승리자는 더 교만하고 자기선전에 능하며 성공을 위해서는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무정하게 내칠 수 있는 사람들임을 패배자는 증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현대사회는 승리자보다 패배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모순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매년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고교생부터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구직자들에 이르기까지 크건 작건 좌절과 실망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패배자는 다시 일어설 힘조차 박탈당하지 않는가? 당장 나부터도 대학 강의가 없는 시기에는 그와 비슷한 심정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승자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지고 허여되는 데 반해 패자에게는 명예도, 돈도, 가까운 사람도 남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 한 번 훌훌 털고 일어서야지. 다산 선생만큼의 의지와 지성, 그리고 굳건한 절제력만 있다면야 못할 것이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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