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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디지털 세상에 남겨진 죽은 이들의 흔적에 대하여
칼 외만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10월
평점 :
동물의 마지막 숨을 거두고 보호자의 눈물을 닦아내는 일이 일상인 50대 중반의 수의사로서, ‘죽음’은
익숙한 감각이었다. 육신이 식어 온기가 대지로 흩어지는 생물학적 소멸이 내가 아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칼 외만의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을 일고나서 가상 세계에 남는 ‘디지털 유해(Digital Remains)’와 ‘포스트모털(Postmortal)’ 시대에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은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파편들이 만들어낼 낯선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다.
매일 병원 문을 나서며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책의 경고가 떠오른다. 내가 남긴 ‘좋아요’, 메신저
대화, 사진들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과거 땅에 묻었던 유골이나 유품과 다름없는 고인의 인류학적 흔적이
된다는 것. 이대로 가면 2060년이 되기 전에 페이스북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의 계정이 더 많아지게 된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죽은 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디지털 공동묘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천재 과학자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해 디지털 영생을
구현했던 영화 <트랜센던스>(2014)가 강렬하게
스쳤다. 영화 속 초월적 자아의 부활은 환상 같았지만, 칼
외만의 책은 그 풍경이 이미 현실 한복판에 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소멸한 뒤에도 데이터가 가상
세계에 영원히 남아 산 자들의 세계와 결합하는 모습은 <트랜센던스>의 본질과 닮아 있다. 영화가 자아의 부활을 그렸다면, 이 책은 평범한 우리의 데이터 파편들이 어떻게 기계 속 유령이 되는지 보여줄 뿐이다.
저자는 "디지털
사후세계의 가장 큰 위협은 기술이 아니라, 이를 독점하고 상업화하는 플랫폼 자본주의"라고 경고한다. 고인의 ‘잊힐
권리’와 ‘추모할 권리’가
오직 이윤을 추구하는 빅테크 기업에 저당 잡혀 있는 것이다. 고인의 대화와 검색 기록은 기업의 데이터
자산이 되어 상품화된다. 만약 빅테크가 고인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AI
아바타로 부활시킨다면, 그것은 진정한 추모인가 아니면 자본이 만들어낸 정교한 사체모독인가.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남은 날을 계산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언젠가 동물 병원을 폐업하고 먼 길을 떠날 때, 내 청진기는 사라지겠지만 내가 남긴 데이터들은 서버를 영원히 배회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언젠가 디지털 유해를 남길 당사자이자, 타인의 유해를 관리해야 할 '잠재적 유가족'"이다. 그렇기에 이 문명을 기업의 약관에만 맡겨둘 수는
없으며, 죽은 자의 데이터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공공의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데이터 자본주의
속 존엄한 소멸이라는 새로운 통찰을 안겨준다. 우리는 빅테크 기업에 데이터 공공화를 요구하는 한편, 개인적으로는 사후 계정 관리를 설정하며 존엄한 흔적을 남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책을 덮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디지털 유해로 연명하는 유령이
되기 전, 소멸함이 마땅한 육신을 가졌기에 오늘의 삶과 내 곁의 생명들이 이토록 눈부시다는 역설을 깊이
깨닫는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