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의 용기
유백합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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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찾아온 50대 중반의 가을은 유독 쓸쓸하다. 수의사로 살아온 지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 내 손을 거쳐 간 수많은 생명만큼이나 내 안에도 겹겹이 굳은살이 박였다고 믿었다. 진료실 안에서 나는 언제나 완벽하고 단호한 전문가여야 했다.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수술대 위에서 망설임은 곧 생명의 위협이었기에, 나는 늘 본능보다 이성을, 직관보다 수만 가지 확률을 계산하는 버릇을 들였다. 하지만 그 철저한 완벽주의는 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 기묘하게도 내 삶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모험은 고사하고 일상의 작은 변화조차 두려워졌다.

그렇게 나만의 견고한 성벽 안에서 정체되어 가던 어느 날, 크리에이터 유백합의 에세이 <3초의 용기>를 읽게되었다. 걸그룹 연습생 시절의 흔들림 속에서 저자가 길어 올린 '3초의 마법'은 내 심장을 강하게 뛰게 했다. 무언가 망설여지는 순간 복잡하게 생각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대신 1, 2, 3을 세며 딱 3초만 눈을 감고 그냥 시작해보라는 그 단순한 제안은 머릿속에 그려진 온갖 시나리오에 갇혀 있던 나를 일깨웠다. 거창하고 대단한 성공 공식이 아니어도 좋다. 미뤄둔 안부 메시지를 보내거나, 운동화 끈을 묶고 10분만 걷는 것처럼 일상에서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저자의 '서툰 첫걸음'에 대한 예찬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동가가 되었다.

특히 '두려움의 재해석'에서 크게 흔들렸다. 늘 밝아 보이는 저자 역시 새로운 일의 시작 전날엔 방 안을 서성일 만큼 걱정이 많다고 고백하며, 그 떨림은 결코 겁이 아니라 '그 일을 진심으로 아끼고 잘해내고 싶은 열망'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마주하자 단단했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며 뜨거운 감정이 울컥 솟구쳤다. 내가 새로운 도전을 망설였던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내 삶과 수의학을 진심으로 잘해내고 싶었던 열정의 반증이었음을 깨달았다. 크게 넘어진 날엔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말고 충분히 울어도 좋다는 저자의 '따뜻한 위로'는 내 안의 완벽주의를 무장해제 시켰다. 실패가 두려워 완벽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혀 있던 나에게, 이 책은 그 감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3초의 용기'라고 나직이 속삭여 주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진료실 책상 위에 놓인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만 품어왔던 유기견 보호소 소장님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3초 동안 '바쁜 일정은 어쩌지?', '예산은 어떡하지?'라는 복잡한 생각들이 고개를 들었지만, 힘차게 3초를 세며 생각의 연결고리를 끊어냈다. "소장님, 이번 주말부터 의료 봉사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내 입가에는 오랜만에 진정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책은 완벽주의와 책임감에 짓눌려 시작을 미루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을 열정으로 바꾸는 지혜를 선물하며, 거창한 계획 대신 일상의 서툰 첫걸음을 뗄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을 길러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머릿속의 복잡한 시나리오를 지우고 딱 3초만 눈을 감는 것이며, 당장 오늘부터 미뤄두었던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찬란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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