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리허설 - 살기 위해, 한 번 죽어 보기 ㅣ 세계척학전집 8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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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실은 매일이 삶과 죽음의 경계다. 쉰을 넘긴 수의사로 살아오며 수많은 생명의 마지막 숨을 거두어 주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강아지의 눈을 보며 마지막 주사기를 누를 때, 혹은 차갑게 식어가는 고양이의 온기를 보호자와 함께 나눌 때, 사람들은 흔히 내게 말한다. “원장님은 늘 죽음을 보시니 담담하시겠어요.” 하지만 그건 지독한 오해다. 나는 죽음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슬픔을 더 깊이 숨기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정작 나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공포도 느낀다. 도대체 매일 죽음을 목도하는 내가, 왜 여전히 죽음 앞에서 이토록 무력하고 여전히 두려운 것일까. 그 답은 <죽음 리허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완벽주의적 통제를 내려놓고, 삶의 유한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준다. 프로이트의 관객석 이론처럼 우리는 타인의 임종을 지켜보며 그것을 제3자의 시선으로 타자화하지만, 에피쿠로스의 논리나 몽테뉴의 조언대로 죽음을 내 삶의 엄연한 일부로 끌어안고 미리 연습할 때 비로소 죽음에 대한 막연한 안개는 걷히기 시작한다. 사실 냉정히 셈해보면 죽음 그 자체는 결코 두렵지 않다. 다만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더 이상 시간을 나누지 못하고,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갈 수 없다는 그 철저한 단절이 가슴 저리도록 슬플 뿐이다. 결국 이 책이 품고 있는 사유의 종착지는 상실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끝을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피어나는 역설적인 삶의 에너지와 내면의 정직함이다.

수의사로서 연명과 안락사의 기로에 선 보호자가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도록 위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나의 일상은 아툴 가완디가 말한 의료의 한계, 그리고 존엄한 퇴장의 가치와 거울처럼 닮아 있다. 생명을 내 뜻대로 완벽하게 붙들어 두는 것만이 선이 아니며, 통제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슬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음속에서 지속적인 유대를 맺어가는 과정 또한 삶의 숭고한 영역임을 깨닫는다. 죽음을 미리 연습한다는 것은 삶을 어둡게 만드는 일이 결코 아니다. 사형대 위에서 마주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5분'처럼, 내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주변을 통제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미뤄두었던 소중한 일들을 실행에 옮길 담대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게 남은 모래시계의 끝을 생각해본다. 신기하게도 두려움이 머물던 자리에 오늘이라는 시간이 유독 선명하게 느껴진다. 매일 마주하는 작은 동물들의 눈망울이, 무심히 흘려보냈던 가족들의 안부 전화가 새삼스럽게 고마워진다. 내가 설정한 엄격한 기준에 주변 사람들을 맞추려 애쓰기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더 많이 소통하고 따뜻한 기억을 새기는 일이 훨씬 소중함을 절감한다. 흔들리는 존재들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며, 남겨진 이들과 더 깊이 사랑하는 것. <죽음 리허설>은 끝을 아는 이가 가질 수 있는 다정함과 담대함으로,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온전한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인생의 길잡이다.

완벽주의와 성취의 압박 속에서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을 겪는 이 시대의 모든 중년에게 스스로 삶의 유한함을 수용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설계할 용기를 준다. 우리는 완벽한 통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끝을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얻은 에너지로 미뤄두었던 소중한 일들을 지금 당장 실행하며 온전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내 삶으로 수용하자 삶이 더 선명해지고 소중해졌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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