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싱싱한 초록이 자랍니다 : 채소편 ㅣ 시니어를 위한 컬러링북
건강 100세 연구원 지음 / 비타민북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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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로서 동물의 생명을 돌보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수십 년간 매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퇴근 후 마주하는 나의 집은 또 다른 치열한 전장이었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마주한 나의 가장 큰 숙제는 바로 내가 고스란히 물려준 유전의 흔적, ‘ADHD’를 앓고 있는 세 아들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사방으로 튀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붙잡아주고,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 부자에게는 넘치는 충동을 잠재우고 내면의 집중력을 깨울 수 있는 도구가 절실했다. 컬러링북 <내 마음에 싱싱한 초록이 자랍니다>가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 책의 가장 눈부신 핵심 문장은 ‘비록 손끝은 서툴러도, 당신이 채워 넣은 초록은 온전히 당신만의 아름다운 숲이 됩니다’라는 구절이다. 처음에는 시니어를 위한 책이라는 소개에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문장이 품고 있는 포용력은 ADHD를 가진 우리 가족에게 뜻밖의 처방전이 되어주었다. 봄의 완두콩부터 겨울의 배추까지 사계절 일상에서 접하는 24종의 친숙한 채소를 색칠하는 과정은, 매일이 혼란스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네가 채워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이 책의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ADHD 환자의 시각적 인지와 두뇌 흐름을 섬세하게 배려한 구성의 장점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인 컬러링북처럼 차가운 검은색 윤곽선이 아니라, 줄기와 잎의 고유한 색상에 맞춰 설계된 컬러 밑그림선은 어떤 색을 골라야 할지 길을 잃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지 않는다. 여기에 책 측면에 친절하게 수록된 색 견본(샘플) 구성은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지고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까 봐 시작조차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직관적이고 친절한 구성 덕분에 아이들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내려놓고 오롯이 색칠하는 행위 자체에 부드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실제로 책의 측면에 있는 견본을 보며 싱싱한 채소의 빈칸을 한 칸씩 채워 나가는 시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참으로 즐거운 몰입의 순간이었다. 동물들의 미세한 혈관을 다루며 소근육 감각의 중요성을 잘 아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 고요한 집중의 시간은 마법 같았다. 완두콩의 연두색, 배추의 짙은 초록색으로 하얀 빈칸이 메워질 때마다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는 이내 잦아들고, 사방으로 분산되던 시선은 책장 위로 모여들었다. 늘 충동적이고 산만했던 아이들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앞의 색에 온전히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사방으로 흩어지던 ADHD의 증상들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많이 개선되는 듯한 실질적인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인지적 효과를 넘어, 이 책이 준 선물은 '스스로를 긍정하는 마음의 회복'이다. 손끝으로 완성해낸 채소들은 마치 우리 마음속에 돋아나는 자존감 같았다. 50대 중반의 수의사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던 내 마음에도 "마음이 아파도 언제든 다시 싱싱한 초록을 키워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잔잔한 위로로 다가왔다.

이 책은 시니어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처럼 흐트러진 마음에 쉼표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일상의 몰입이 주는 두뇌 활성화와 평온한 정서적 안정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벽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색연필을 쥐는 것이며, 그렇게 매일 한 칸씩 초록을 채워갈 때 우리는 산만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 주의력을 통제하고 내면의 단단한 숲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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