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 ㅣ 현북스 청소년소설 25
이희준 지음 / 현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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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고등학교 2학년, 우리도 드디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 선배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푸른 바다 사진을 보며,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숙소 방 배정이나 밤에 몰래 라면을 끓여 먹을 계획 같은 철없는 소리를 나누며 마냥 싱글붕글 웃었다. 캐리어에 새로 산 옷을 채워 넣고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은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제주도의 눈부신 풍경은 열일곱 남학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묘한 서늘함이 스친 것은 소설 <추모시>를 읽고 난 후였다.

이야기는 우리와 똑같은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 주인공, '박시윤'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시인이 꿈이었던 시윤이는 수학여행 당일 심한 독감에 걸려 홀로 배에 타지 못했고, 그날 밤 친구들이 탄 배가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선박 침몰 참사를 뉴스로 지켜보아야 했다. 교내 2학년 학생 250명이 사망하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시윤이가 느꼈을 절망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지독한 부채감은 가상의 서사를 넘어섰다. 그것은 바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마주했던 우리 사회의 실제 비극과 그대로 겹쳐 흘렀다. 우리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미래를 꿈꾸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형과 누나들이 잠긴 내년 봄 제주도의 바다는 더 이상 마냥 푸르고 예쁘게만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깊고 차가운 바다 밑에는 여전히 못다 한 이야기들과 청춘의 비명이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언저리가 먹먹해졌다.

참사 이후 시간이 흘러 학교로 돌아온 시윤이는 교지에 실을 '추모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잔인했다. 인터넷과 사회 곳곳에는 희생자들을 향한 차가운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너무나 쉽게 소비하고 외면했다. 이 소설은 그 거대한 냉소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하기 위해, 쓰이지 않는 시를 쓰기 위해 애쓰다 점점 시가 되어 가는 소년"의 소리 없는 고군분투를 담아낸다. 시윤이는 세상의 냉소에 굴하지 않고, 슬픔이 멈춰 선 유족들의 공간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마주하고 친구들의 흔적을 짚어가며 기어이 한 줄의 시를 완성해 나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평범한 산문 형태였던 소설의 문장들이 시윤이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짧아지고 행이 갈라지며 소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추모시'로 완성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문학적 실험은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자, 사회적 혐오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의 고통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기억을 통한 연대'의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치열한 애도의 과정을 보며, 고작 즐거운 추억을 쌓겠다고 들떠 있던 내 가벼운 마음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내년의 수학여행'이라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랐으나 결코 닿지 못한, 영원히 멈춰버린 내일이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내년에 갈 수학여행을 슬퍼하며 취소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더욱 치열하게 즐겁고, 안전하게,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그 시간을 만끽하기로 다짐한다. 살아남은 시윤이가 결국 혐오의 언어를 이겨내고 시를 통해 친구들의 존재를 증명해 냈듯,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극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떳떳하게 마주하고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공항에 내려 처음 마주할 그 섬의 바람 속에서, 나는 철없는 남학생의 해맑은 웃음 뒤로 아주 작은 애도의 마음을 담으려 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마저 끝내 붙잡아 보듬는 문학의 힘을 믿으며, 우리가 누리는 이 눈부신 봄날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내게 지나간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당부하며, 이 눈부신 봄날을 마음껏 누리되 그 이면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책은 참사의 자극적인 재현에 머무는 대신 남겨진 이들의 주체적인 애도와 성장을 밀도 높게 그려낸 수작이다. 문학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든 청소년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공감과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을 깨닫고, 거대한 슬픔을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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