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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바닐라, 라떼
욱시무스 지음 / 하늘세상 / 2026년 9월
평점 :
꽉 막힌 올림픽대로 위, 붉게
켜진 브레이크등을 바라보는 운전대 위로 묵직한 피로가 얹힌다. 지루한 출퇴근길 조수석에 둔 인스타툰
작가 욱시무스의 그림 에세이 <달콤 쌉싸름한 바닐라, 라떼>에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꼬물거리는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30대 초보 부모의 육아 일기. 차가
멈출 때마다 넘겨본 책 속 풍경은 유쾌하면서도 눈물겨웠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은 자꾸만 먹먹해졌다. 나는 어느새 너무 빨리 커버린 초5, 중2, 고1 삼형제를 둔 오십 줄의 아빠이자, 주말 야간 동물병원 당직실을 지키느라 정작 내 아이들의 수많은 순간을 놓쳐온 수의사 아빠이기 때문이다.
내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기억은 단연 삼형제라는 거대한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시절이었다. 아들놈 셋이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던 그때, 나와
아내의 일상은 달콤함보다는 땀 냄새와 피로에 더 가까웠다. 젊은 친구들이 즐겨 마시는 바닐라 라떼가
육아와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음료야말로 고독하고도 아름다운 육아의 여정을 완벽하게
닮았음을 깨달았다. 첫 입에 퍼지는 바닐라의 강렬한 달콤함은 아이가 처음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던 황홀한
순간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쌉싸름함은 주말마다 병원 진료실을 지켜야 했던 나의
고단한 공백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듯했다.
작가가 옷이 작아져 몇 번 입히지도 못했다며 ‘아끼면 똥 된다’고 한탄하는 대목에서는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그랬다. 아픈 동물들을 돌보느라 밤샘 당직을 서는 사이, 정작 온전히 함께 보내지 못한 아이들과의 시간들이 모조리 작아져 버린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예쁜 짓도, 품 안의 자식이라는 그 눈부신 시간도 모두 ‘기한’이 있는 행복이었다. 매일
밤 터지는 울음 속에서 그저 이 쌉싸름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내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내 품의 아이를 보듬어야 한다는 작가의 나지막한 권유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이제 우리 집 삼형제는 저마다의 방 문을 닫고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고1 큰놈은 덩치가 나만 해져서 안아 주기도 어색하고, 사춘기 한 복판에 선 중2 둘째는 툭하면 단답형이다. 품 안의 자식 같던 초5 막내마저 서서히 아빠의 손을 놓아 가고
있다. 그때는 일의 무게라 여겼던 쌉싸름한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생에 다시없을 찬란하고 달콤한 시절이었다. 특히 아빠는 세상의 중심을 잡아주는 ‘칼자루’가 되어야 한다는 비유가 묵직한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진학을 고민하는
고1에게,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중2에게, 나는 과연 바른 중심이 되어주는 믿음직한 손잡이였을까? 주말의 공백을 늘 부채감으로 채워야 했던 내게 저자의 고백은 깊은 위로가 된다.
문득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 가득 ‘아빠 힘내세요!’라고 소리 높여 합창하던 삼형제의 옛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주말 밤샘 진료의 피로에 짓눌려 퇴근하던 몸이 그 노랫소리 한 자락에 힘이 불끈 솟았던
기억. 비록 지금은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지만,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은 그 시절 아이들이 내게 주었던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가족이 선물해 준 그 달콤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조언이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오늘 퇴근길에는 익숙한 아메리카노 대신, 조금은 낯선 바닐라 라떼 한 잔을 주문해 보려 한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맛을 음미하며 아들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려 한다. 치열한 육아 복판에서 위로가 필요한 초보 부모부터, 품을 떠나가는 자녀를 바라보며 찬란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선물해 줄
것이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