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고개를 넘어서며 깨달은 쓸쓸한 진실 하나는, 내 삶을 갉아먹은 가장 큰 적이 ‘부족함’이 아니라 ‘완벽해지려는 강박’이
만들어낸 가짜 핑계였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 할 때마다 나는 늘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 뒤로 숨었다. 완벽한 계획이 갖춰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떼지 않겠다는 강박. 그것은
겉으로는 신중함으로 포장했을 뿐, 실상은 실패가 무서워 발걸음을 멈춘 비겁한 지연이었다. 그렇게 미루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내 인생의 뒤안길에 낙엽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운명은 의심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를 읽고 변화를
꿈꾼다.
책은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의 삶을 조명하며, 나처럼 ‘준비의 감옥’에
갇혀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도전과 확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잔다르크는 아무런 배경도 없고 글자조차 모르는
시골 소녀에 불과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군대를 이끌 자격이 전혀 없었지만, 책의 가장 깊은 공감을 주는 ‘자격은 시작하기 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간 사람에게 나중에 붙는 이름’이라는 말처럼, 그녀는 세상의 허락을 구하거나 완벽한 조건을 갖추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문을 열고 나섰다.
‘자격과 경력이라는 허상에서
완전히 탈피하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거의 경력에 짓눌리거나
눈에 보이는 자격조건부터 충족하려는 태도가 행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덫이기 때문이다. ‘권위는 위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쟁취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직함
같은 가짜 권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위기의 순간마다 빛을
발한 잔다르크의 서사 및 ‘모든 것을 잃을 각오가 모든 것을 얻게 만든다’라는 역설적인 진리로 이어진다. 내가 가진 작은 안정을 과감하게 던져버릴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움켜쥘 절대적인 전력이 생긴다는 메시지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철학과도
깊이 통한다. 목숨을 걸고 사지에 뛰어들 때 도리어 살아날 길을 얻었던 명량해전의 기적처럼, 잔다르크 역시 안락한 삶을 잃을 각오로 나아갔기에 밑바닥에서부터 스스로 권위를 쟁취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었다.
나아가 앞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던지는 ‘길을 잃었다면 기꺼이 스스로 이정표가 되어라’라는 문장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지울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키며, 화형대의 불길 앞에서도 신념을 꺾지 않았던 최후처럼 ‘나를 불태울지언정 내 안의 진실은 결코 태울 수 없다’는 굳건함은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멘탈리티의 정점을 보여준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한 회의와 망설임을 끝낼 때 비로소 개인의 운명이 개척되기 시작한다’는 그 단호한 선언을 마주한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탄식이
베어 나왔다. 오십 대 중반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주위의 평판, 그리고 경력이라는 허상에 의존하려는 방어기제 때문에 완벽주의라는 쇠사슬로 나를 묶어두고 있었다. 외부의 온갖 소음에 귀를 기울이느라 내 안의 진실된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완벽한
준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를 향한 의심을 멈추지 않는 한 준비의 과정은 끝없는 미로가 될 뿐이다.
여전히 내 준비는 헐겁고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세상의 무수한 참견과
자격이라는 가짜 성벽 뒤에 숨어 행동을 미루지 않겠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결연한 사명감을 가슴에 품고 부족한
채로 먼저 문을 열고 한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살아오느라 시작을 망설이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위로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과 삶의 불확실성을 담담히 수용하는 실천적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