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언어 - 소리, 몸짓, 냄새로 소통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
롭 던 지음, 송근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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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매일 미생물의 생장과 사멸을 모니터링하고, 수의사로서 생명의 생로병사를 지켜봐 온 지도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첨단 바이오 기술의 최전선에서 ‘생명을 통제하고 규격화’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 생태계에 저지른 오만과 파괴에 대한 깊은 부채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난 진화생태학자 롭 던 교수의 <공생의 언어>는 내 안의 오랜 고민과 마주하게 한 거울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을까. 수의사로서 나는 동물의 눈빛, 몸짓, 그리고 미세한 체취 속에서 수많은 의미를 읽어내곤 했다. 그것은 인간의 정제된 문자나 말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정직한 ‘공생의 언어’였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스스로를 지구 생태계의 꼭대기에 안주시킨 채, 다른 생명체들의 신호를 해독하는 ‘수신기’를 꺼버렸다. 저자가 지적하듯 인류의 역사는 다른 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대가는 참혹하다.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개발과 기후 변화는 수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인간 자신마저 생태계로부터 철저히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매일 무균실에서 완벽하게 통제된 미생물을 검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간이 만든 이 인공적인 격리가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있는지 절감한다.

저자는 미시적인 배꼽 속 세균부터 거시적인 숲의 생태계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인간 역시 ‘다섯 개가 넘는 유전체를 지닌 괴물’이자, 수많은 공생체와 얽혀 있는 연결고리의 일부일 뿐이다. 과거 인류가 꿀벌잡이새의 소리를 알아듣고 함께 꿀을 채집했던 것처럼, 우리는 본래 자연과 긴밀한 ‘상리공생’의 관계를 맺으며 문화적 공생진화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이 오래된 소통 수신기를 차단했고, 결국 생태적 고립을 자초했다. 책을 읽는 내내 품질관리 팀장으로서의 시선과 수의사로서의 시선이 교차했다. 생명을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은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가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단순한 자연 보호나 동정심에 기댄 연대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종의 웰빙’을 동등하게 고려해야만 인류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경고와 대안을 제시한다. 종간의 새로운 협력 관계는 늘 기후가 급변하는 시기에 형성되었다. 다가오는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꺼버렸던 자연과의 소통 수신기를 다시 켜고, 다른 생명체들의 웰빙을 우리 자신의 생존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냄새로, 몸짓으로, 소리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다가올 생태적 재앙 속에서 인류가 고립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부채감을 느끼는 현대인과 바이오·생명과학계 종사자들에게 깊은 성찰을 안기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독자들은 미생물부터 거대 생태계까지 이어지는 상리공생의 진화를 배우며, 인간 중심적 오만을 버리고 자연의 신호를 다시 감각하는 고귀한 연대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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