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왕이 될 수 없다면 왕을 만드는 자가 되어라 ㅣ 한국철학전집 3
정도전 지음 / 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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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주말 밤, 24시간 동물병원의 야간 진료실은 낮보다 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다. 꺼지지 않는 푸른 모니터 불빛을 마주하고 앉아 응급 환자를 기다리는 야간 당직 수의사의 삶. 어느덧 오십대 중반에 접어든 나의 주말은 그렇게 수년째 남들이 짜놓은 촘촘한 당직 스케줄과 응급 매뉴얼이라는 견고한 판 위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나이와 환경을 핑계 삼아 ‘그저 오늘 밤도 무사히 버텨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내게, < 왕이 될 수 없다면 왕을 만드는 자가 되어라>는 경종을 울렸다.  

‘나이와 환경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꾸짖는 듯했다. 삼봉 정도전이 고려라는 썩어가는 판을 뒤엎고 조선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 역시 인생의 황혼기를 바라보며 변방을 떠돌던 유배객에 불과했다. 군사력도 배경도 없던 그가 스스로 ‘왕을 만드는 자’이자 ‘새로운 시대의 기획자’가 된 역사는, 주말 야간이라는 피로의 그늘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백성을 살리는 현실적 생존 원칙인 ‘민본주의’와, 리더 한 사람의 자질에 운명을 맡기지 않는 시스템인 ‘재상정치’에 대해 말한다. ‘좋은 리더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없어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자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픈 동물을 살려내는 민본의 현장에서, 의사 한 명의 초인적인 노동력과 희생에만 의존하는 야간 의료 환경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뛰어난 수의사 한 명의 자질이나 좋은 원장님이 나타나 내 처지를 바꿔 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의사와 환자 모두가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이타적인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책이 말하는 구조의 힘이자 기획자의 역할이다. 오십대 중반,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남이 짜놓은 판에서 겨우 버텨갈 것인가, 아니면 내 남은 생과 후배들을 위해 새로운 의료 환경의 규칙을 만들 것인가의 기로에서 나이는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다. 이제는 단순히 밤을 버텨내는 당직의를 넘어, 후배들이 밤샘 노동에 갈려 나가지 않는 건강한 진료 시스템을 깔아주는 시스템 메이커이자 설계자가 되어야 할 때다. 

우리는 ‘남이 만든 규칙에 억지로 따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규칙과 판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말고, 왕관을 씌우는 자의 권력을 쥐어라’라고 속삭이고, ‘권력은 왕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판을 짜는 자의 펜끝에서 나온다’고 말해준다. 진료실 구석에서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당직 매뉴얼을 다듬고, 의료 환경을 바꿀 기획안을 써 내려가는 나의 펜끝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다. 

특히 가슴 깊숙이 박힌 문장은 ‘낡은 시스템을 고치려 들지 마라, 완전히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라’라는 선언이었다. 땜질식 처방으로 불합리한 야간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효율과 피로로 얼룩진 기존의 진료 관행을 완전히 부수고 원점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의료 시스템을 다시 세워야 한다. 물론 이 대전환을 위해서는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세상을 얻기 위해 당신의 얄팍한 자존심과 두려움부터 베어내라’ 했고, ‘기꺼이 오명을 뒤집어쓸 용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마라’고 말한다. 전문직이라는 작은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자존심과 두려움을 베어내고, 기존의 방식을 깨트릴 때 따를지 모르는 주변의 오해까지 짊어질 용기가 있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나이와 환경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갇혀 타인이 정해둔 틀 안에서 관성적으로 버티고 있는 직장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책이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리더 개인의 역량보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며, 남은 생을 타인의 규칙에 순응하기보다 나만의 비전으로 새로운 판을 설계해 나갈 용기와 실천적 통찰을 얻었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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