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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평점 :
수의사로 살아온 지 어느덧 서른 해가 다 되어간다. 젊은 시절엔 그저 내 눈앞의 아픈 동물 한 마리를 살리는 것이 내 소명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경륜이 쌓일수록 동물의 질병이 결코 그 개체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동물병원의 진료실은 거대한 생태계의 모순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이다. 그런
나에게 <패치 인류세》> 큰 충격이자 깊은 공감을
주는 책이었다. 특히 ‘패치(Patchy)’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꽂혔다.
책이 던지는 첫 번째 핵심은 ‘인류세의
재난은 전 지구에 균일하게 오지 않으며, 인간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쪼개어 만든 조각보(패치) 위에서 저마다 다른 비극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최근 발생한 네팔 대홍수 참사는 이 불균형한 현실을
증명하는 참혹한 증거다. 탄소 배출량의 0.1%도 책임지지
않는 최빈국 네팔이, 선진국들이 데워 놓은 지구 온난화의 직격탄을 맞아 히말라야 빙하 붕괴와 초대형
돌발 홍수라는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현재의 생태 위기를 인간만의 역사로 보지 않고, 인간과 동물, 식물, 미생물, 그리고 환경이 촘촘하게 얽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다종(Multispecies)의 연쇄 반응'으로 진단한다. 인간이 파괴한 기후 환경은 히말라야 고산 지대의 식생을 뒤흔들고 빙하를 녹였으며, 그 홍수는 인간의 인프라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터전을 잡고 살던 야생동물과 미생물의 생태계까지 단숨에 집어삼켰다.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패치의 틈새에서, 바이러스와
해충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인간의 설계를 이탈해 자율적인 역공을 시작하는 메커니즘도 바로 이러한 사슬에서 비롯된다. 콘크리트 벽과 첨단 기술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이 얼마나 무력한 계산이었는지를 지구는 다종의
붕괴라는 재난의 형태로 경고하고 있다.
수의사인 나의 관점에서 이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보내는 격렬한
면역 반응이다. 인간이 고기를 값싸고 빠르게 얻기 위해 설계한 밀집형 공장식 축사라는 ‘패치’는 인간의 탐욕, 동물의
고통, 그리고 치명적인 미생물의 변이가 결합하여 공포스러운 전염병의 발원지가 되었고, 도시화로 자연을 지운 아파트 단지라는 ‘패치’ 속 동물들은 계절을 잃고 면역 질환에 시달린다. 자본이 이식된 조각보의
틈새마다 생태적 환부가 고름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50대 중반, 책을 읽으며 깊은 부끄러움과 사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책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인간 너머의 존재들을 동등한
행위자로 인정하며, 이 오염된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시급히 배워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현대 수의학이 지향하는 ‘원 헬스(One Health)’, 즉 인간과 동물, 환경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우리가 이익을 위해 이어 붙인 이 조각보 같은 세상이 완전히 파열되기
전에, 이제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동등한 삶의 주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성인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인간 중심주의라는
오랜 오만을 깨부수고,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 비인간 존재들과 대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적
해법과 연대의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