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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마케팅 브레인 - 마케팅의 본질에 관한 브랜드 심리학자의 질문과 통찰
김지헌 지음 / 갈매나무 / 2026년 8월
평점 :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수년째다. 매일 아침 출근길,
내가 마주하는 세계는 0.0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한 통제와 규격의 세상이다.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데이터는 ‘불량’이자 ‘실패’였고, 정해진 매뉴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미덕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다른 열망이 꿈틀댔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에 없던 가치를 제안하는 일. 바로 ‘마케팅’이었다.
50대라는 나이, 그리고 숫자의 감옥에 갇힌 QC 경력. 마케팅으로의 이직은 내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고, 퍼포먼스 마케팅이니 타겟팅 툴이니 하는 기술적 용어들은 진입장벽을 더 높였다. ‘그들만의 리그’에 명함 한 장 내밀지 못한 채 포기했다. <AI 시대의 마케팅 브레인>을 읽고 내가 마케팅과 나
자신에 대해 가졌던 거대한 편견을 단숨에 깨뜨려 버렸다.
무척 신선했던 대목은 AI 시대에
접어들며 우리가 신봉하던 수많은 '마케팅 도구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과 자동화 기술이 전면에 나서면서, 과거
마케터들이 목숨 걸던 화려한 타겟팅 기법이나 노출 툴 같은 도구들은 무력화되거나 알고리즘의 장막 뒤로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그 사라진 도구의 자리에 남은 역설적인 본질은 바로 소비자의 ‘심리’였다. AI가 알아서 다 추천해 주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선택권을 빼앗기거나 통제력을 잃는 것에 본능적인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통제 비용(심리적
비용)'을 낮춰주고 신뢰를 주는 브랜드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그동안 나는 최신 마케팅 도구를 다룰 줄 모른다는 이유로 이직을
망설이며 스스로를 자책해 왔다. 하지만 책의 통찰을 마주하고 나니 시야가 완전히 달라졌다. 도구가 사라진 자리에 필요한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신뢰의 구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QC 팀장으로서 매일 해온 일이었다. 바이오 의약품의 엄격한 품질을 시험하고 증명해 내는 일, 그것은
우리 제품을 선택할 고객들이 맞닥뜨릴 '판단 피로'와 '통제 불가능한 불안'을 대신 통제해 주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적 본질이었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해결책의 수가 아니라 문제의 정의 방식이다’라는
말처럼, 나는 기술적 툴이 아닌 신뢰라는 본질로 고객의 심리적 비용을 낮춰주는 문제를 이미 정의하고
해결해 오고 있었다.
AI라는 강력한 기술이
마케팅 현장을 삼킬지라도, 인간 마케터 고유의 시선은 대체될 수 없다.
50대의 나이와 이종(異種) 분야의 경력은 사라져
가는 현란한 도구들을 배우지 못한 결격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을 더 성숙하고 본질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고유한 '프레임'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하얀 실험복을 입고 통제된 실험실로 출근하려 일하겠지만, 나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이제 완벽을 감시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디자인하는 마케팅 브레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문턱 높은 마케팅의 벽 앞에서 주저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나처럼
사라져 가는 기술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고 궤도 수정을 망설이는 도전자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