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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싫모 대 호싫모 ㅣ 동화 쫌 읽는 어린이
윤정 지음, 김현영 그림 / 풀빛 / 2026년 8월
평점 :
우리 집 냉장고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금기 식품이 하나 있다. 바로 초록색의 길쭉하고 아삭한 ‘오이’다. 오이무침이나 김밥 속 오이만 봐도 질색하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바로 우리 형이다. 형은 오이에서 퐁퐁 비누 냄새가 난다며 기겁을 한다. 내가 보기엔 형의 오이 혐오증은 < 오싫모 대 호싫모>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완전 우리 형 이야기잖아!’ 싶어 킥킥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 연두는 오이를 싫어하는 마음만큼은 우리 형 못지않다. 연두는 학교 게시판에서 ‘오싫모’
모집 글을 보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한다. 드디어 자신의 취향을 알아줄 동지를 만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모임은 오이가 아니라 호박을 싫어하는 모임인 ‘호싫모’였다. 게다가
그 모임의 회장인 초록은 연두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호박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오이를 싫어하는 아이와
호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만나 동아리를 채워가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각자 확고한 취향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격렬하게 부딪치고, 서운해하고, 질투하는 모습들이
꼭 우리 학교 교실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 황당하고 귀여운 대결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나에게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취향이 다르면 정말 친구가
될 수 없는 걸까?’라는 질문이다. 사실 연두와 초록이는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평행선을 달리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며 투닥거리는 사이에 아이들은 아주 소중한 진리를 알게된다. ‘내가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상대방의 취향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책 속 아이들은 나와 다른 상대방의 취향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마음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간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책은 다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우리 형과 나의 관계가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 형제도 연두와 초록이처럼 취향이 완전히 딴판이다. 형은
오이를 싫어하지만 나는 오이소박이라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반대로 나는 가지가 싫은데 형은 호박볶음을
잘만 먹는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형은 주말마다 방에서 음악을
득고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지만,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축구를 하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날 귀찮아하는 형에게 서운해서 토라지기도 했다.
내가 식탁에서 형과 투덜대던 모습을 보시던 아빠는, 이번에 내가 이 책을 읽고 쓴 독서노트를 보시더니 웃으셨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치며 말씀하셨다. ‘우리 막내가 책 한 권을 읽더니 형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고, 정신적으로 아주 한 뼘 더 성장했구나.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걸 보니 이제 다 컸어!’라며 엄청 대견해하셨다. 아빠의
칭찬을 들으니 부끄러우면서도 가슴이 뿌듯해졌다. 아빠 말씀대로, 생각해보면
형과 나는 좋아하는 음식도 취미도 다르지만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다. 내가 수학 숙제가 안 풀려
끙끙댈 때 슬쩍 다가와 알려주는 사람도 형이고, 내가 시무룩해 있을 때 초콜릿을 놓아주고 가는 사람도
츤데레 같은 우리 형이다.
중2가 되면서 부쩍 말수가
줄어들고 자기 방 문을 꽁꽁 닫아두는 형이지만, 실은 형만의 취향과 사춘기라는 통과 의례를 지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형이 내 취향을 존중해주길 바랐던 것처럼, 나도 형의 '오이 혐오'와 '방구석 음악'을 틀린 눈빛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겠다. 오늘 저녁 식탁에 오이가 올라오면 슬쩍 형의 접시에서 오이를 건져내 내 입으로 쏙 집어넣을 생각이다. 아빠가 칭찬해주신 것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진짜 든든한 내
편이 된다는 이 책의 가르침을 나부터 실천해보고 싶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