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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는 가장 완벽한 노예가 된다 ㅣ 시대철학 3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평점 :
비극은 악마 같은 파괴자의 등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길 멈춘 인간들의 나약함에서 잉태된다. 책의
첫머리가 던지는 이 날카로운 일침은 매일 아침 출근길, 바이오 벤처의 품질관리 팀장으로서 수많은 데이터를
마주하는 내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세포의 생장 곡선, 무균
시험 결과, 공정 검증 보고서의 수치들은 단 0.1%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생명과학의 최전선에서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지 어느덧 수십 년, 그리고 수의사로서
생명의 가녀린 숨결을 직접 다뤄온 50대 중반의 나이. 세상만사에
나름의 기준이 섰다고 자부하지만, 퇴근길 스마트폰 화면을 켤 때마다 밀려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무엇일까. 알고리즘이 쉼 없이 추천해 주는 유튜브 영상들과 기존 언론 매체들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것이 진실이다’, ‘이것만 믿으면 된다.’ 그 달콤한 확증 편향의 늪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는 가장 완벽한 노예가 된다>를 읽었다.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이 어떻게 눈먼 맹신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역사의 반복성을 이야기한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낡은
상식만을 신봉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잡아먹힌다고 경고하며, 세상의 기준에 맞춰 자격을 증명하려 목매는
노예짓을 멈추라고 꾸짖는다. 인간 밑바닥에 도사린 구원받고 싶은 치명적 결핍을 파고들어 부끄러움을 버린
뻔뻔함으로 지배하려는 가짜 구원자들에게 영혼을 탁송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지독한
노예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종착지로, 누구도 감히 당신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고 심판하지 못하게 하라는
강력한 주체성의 회복을 선언한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 과정에서 지배층은 타인의 시선과 외부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심판대에 올렸고, 그 틈새를 타 라스푸틴이라는 타자가 그들의 가치를 좌지우지하게
만들었다.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한 가치를 불신하고 타인의 평가 잣대에 나를 맞추는 순간, 인간은 생각하는 힘을 잃은 꼭두각시이자 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향한 날카로운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는 화면 너머로 부끄러움을 잊은 채 확신을
파는 현대판 라스푸틴들을 매일 목격한다. 나의 취향과 결핍을 분석해 내가 보고 싶은 세상만 보여주는
유튜브 알고리즘과 확증만을 배달하는 미디어들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우리가 정해 놓은 정답과 기준으로 너를 증명해’라며 달콤한 덫을
놓는다. 대전환의 시대에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춘 채, 외부의
재단과 심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사유 능력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생물학적 재해와 같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려 노력한다. 텍스트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행간을 의심하고 나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내 사유의 깊이와 순도를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이다. 거짓된 확신과 타인의 잣대로 내 가치를 심판하게 두지 않고 내면의 단단한 주체성을
세우는 일. 그것이 매일 쏟아지는 미디어의 소음 속에서 주체적인 나로 살아남기 위해 알고리즘의 친절한
인도를 거부하는 이유다.
책을 덮으며 실험실의
현미경을 떠올린다. 렌즈의 초점을 스스로 맞추지 않으면 세포는 흐릿한 덩어리에 불과하듯, 내 눈으로 보고 고뇌하여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인이 만든 허상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맹신과 확증의 시대, 타인의 심판대에서 내려와 내 생각의 진짜 주인이
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을 통해 넘쳐나는 정보의 소음 속에서 거짓된 확신에
속지 않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고, 삶의 주권을 회복하여 온전한 나 자신으로 서는 단단한
사유의 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