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 열풍이 뜨겁다. 50대 중반,
숨 가쁘게 돌아가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 팀장인 나에게 극장 나들이는 사치라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의 소란함은 호기심을 흔들었다. 2700년 전의 고전이
왜 지금 다시 호출되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서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를 펼쳐 들었다.
첫 장을 열자 저자는 고전을 읽는 이유가 영웅 찬미가 아닌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서라 말한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폭풍우 속에서도 나침반의 방향만은 놓치지 마라’, ‘남의 잣대라는 마법에 취해 본성을
잃어버리지 마라’,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절망 앞에서는
정면으로 뚫고 가라’는 세 가지 조언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0.1도의 미세한 변화에도 사멸하는 세포를 다루며 철저한 품질 표준 작업 지침을 지켜야 하는 나에게,
스타트업 특유의 장비 오류와 무리한 스케줄은 수시로 밀려드는 거친 폭풍우와 같았다. 주변에서는
속도를 내라며 기준을 타협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기도 했고, 때로는 원인 불명의 불량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 모든 공정을 멈춰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이 문장들은 눈앞의 파도에 함몰되지 말고 사수해야
할 '방향'을 바라보라고,
남의 평가에 휘둘려 엄격함이라는 본성을 잃지 말라고, 그리고 들이닥친 절망을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말고 데이터와 원칙을 무기 삼아 정면으로 뚫고 나아가라고 나직이 일깨우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거친
바다일수록 사소한 흔들림에 연연하지 않고 나침반을 중심에 두는 태도가 곧 삶의 태도임을 깨닫는다.
인생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여정은 결국 ‘버팀의 철학’을 담고 있다. 저자는
오디세우스가 위대한 진짜 이유는 괴물을 물리쳐서가 아니라 무수한 좌절 속에서도 ‘매번 다시 짐을 싸고
노를 저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은 결코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다. 나만의
오디세이아를 채워가는 가장 위대한 서사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는 깊은 감동마저 밀려왔다. 애써 구축한 시스템이 흔들릴 때마다 '커리어의 종착지에 거의 다
온 와중에 왜 사서 고생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배가
뒤집혀도 다시 뗏목을 만든 오디세우스처럼 매일 실험실의 오차를 수정하는 나의 고군분투 역시 위대한 서사가 될 것이라 믿게 되었다.
품질관리 팀장으로서 책이 제시하는
‘내려놓음의 미학’ 또한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낮춰 위기를 탈출하듯, 책은 겸손함이야말로 거대한 위기 속에서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지혜라고 일러준다.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과거 대기업 시절의 직급이나 화려한 경력이 무용하다. 오히려
비대해진 자아는 변화의 방해물일 뿐이다. 나를 비워내고 본질에 집중할 때 비로소 시련을 돌파할 진짜
지혜가 생겨난다.
결국 이 모든 고군분투가 향하는 궁극의 이야기는 ‘진정한 귀향’이다. 고향 ‘이타카’는 거친 풍랑 속에서 상처 입고 방황하던 나 자신을 온전히
찾아가는 과정의 상징이다. 긴 방황의 끝에서 마주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외적인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모진 풍파를 견디며 한층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이다. 50대 중반은 인생의 파고를 넘어 자신만의 이타카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기다. 비록 화제의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고전의 깊은 지혜로 삶의 본질과 마주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도 품질 표준이라는 나침반을 점검하며 내일의 파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묵묵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른 독자들 역시 매일 마주하는 고단한 일상을 나만의 위대한 서사로
수용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생의 거친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노를
저어 나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과 따뜻한 위로를 마주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