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의 교양 - 알고도 모른 척해야 하는 지위의 법칙 세계척학전집 7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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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벤처의 시계는 대기업보다 몇 배는 빠르게 돌아간다. 서른 명 남짓한 조직원들이 매일 생존 사투를 벌이는 이곳에서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살아온 지도 수년이 흘렀다. GMP 기준을 맞추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 검토하고 실사관의 질문을 받아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세포에도 명확한 극성과 서열이 존재하듯, 인간 조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잔인한 계급 구조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책장을 넘기면 그 안에 일상의 숨통을 조여오는 서열화된 현실이 담겨있다. 인류가 수렵 채집 시절부터 집단 생존을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고 서열을 가려왔던 본능은 뇌 속 코끼리가 말하는 무의식 속 '이기적 동기'와 정확히 이어진다. 인간은 평판을 위해 이기심을 숨기며, 타인을 속이기 위해 자신마저 속이는 '자기기만'의 존재라는 뜻이다.

오십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 역시 이 전장에서 기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머리가 희끗해진 나와 젊은 박사들 사이에는 늘 묘한 기싸움이 흐른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펼치는 이들 앞에서 자꾸 작아지던 순간, 느꼈던 위축감의 실체는 무엇일까. ‘당신이 어떤 사람 앞에서 자꾸 작아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소심함 때문이 아니라 수백만 년간 진화해 온 동물적 서열 본능이 켜진 탓이다.’라고 저자는 나에게 일침을 가한다. 내가 겪은 고독감은 진화적 지위 게임과 서열 스트레스의 증거였던 셈이다. 신의 인정을 받지 못해 열등감과 분노에 휩싸여 파멸했던 카인의 고통처럼, 이 잔인한 서열 스트레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지위 게임의 패배 선언과 다름없었다.

스타트업의 수평 문화라는 외피 속을 들여다보면 더욱 서글픈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서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취향과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세탁되었을 뿐이다.’ 젊은 직원들이 골프나 오마카세 같은아무도 모르는 명품취향으로 은밀하게 구별 짓기를 할 때, 내 안의 카인 역시 뒤처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 건네는 형식적인 몸짓보다 상대의 상처를 온전히 직시하는사과보다 중요한 것을 놓친 채, 능력주의의 함정 속에서 나를 끊임없이 비교의 감옥에 가두고 채찍질했다. 그것은 데이비드 브룩스가 지적한공적 이력서(Resume Virtues)’ , 취업과 승진, 사회적 지위만을 위해 세상의 평가에 목매는 삶의 한계였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은 타인의 판 위에서 어떻게 든 버티고 이겨내는 기술이 아니었다. 서열이 정교하게 세탁되었을 뿐이며, 이 규칙을 투명하게 판독해야만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가장 완벽한 승리는 타인이 설계한 서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게임 자체를 거부하고 걸어 나오는 것이다.’ 이 선언을 접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공적 이력서의 서열 경쟁을 멈추고 인격과 성품을 뜻하는내적 이력서(Eulogy Virtues)’를 채워야 할 때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QC 팀장으로서 내 본연의 역할은 남과 비교해 우위를 점하는 일이 아니다. 오직 절대적인 기준(Spec)을 충족하느냐 만을 따지는 작업이다. 내 삶이 지위 게임의 승패로 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나를 억누르던 사회적 서열의 메커니즘과 내 안의 코끼리, 그리고 카인이 흘렸던 해묵은 시기의 허상을 허물어 낼 안목을 얻었다. 50대 중반,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공적 이력서의 서열 대신 내 삶의 절대적 품질을 관리하고 내면의 주권을 회복해야 할 시간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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