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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코어
오타쿠코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오십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효율과 계산에 맞춰 숨 가쁘게 달려온 나날이었다. 홍대 거리나 AK플라자 인근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패션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그래픽 티셔츠를 당당하게 입고,
가방에는 만화 인형을 주렁주렁 매단 채 활보하는 모습 말이다. <오타쿠코어>는 그 유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브컬처를 일상 패션에 결합했다는
설명에, 수십 년째 쓰고 있는 포털 ID들이 뇌리를 스쳤다. 나 역시 대부분의 ID를
conan, nana, pobi로 조합해서 쓰는 ‘코난에 진심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평생 마음을 쏟아온 세계가 있다. 일요일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TV 앞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미래소년 코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달리던 코난과 친구 포비, 나나의 세계는 내 유년의 전부였다. 직장 생활의 고단함에 치여 살던 시절에는 만화 원피스의 루피를 만나 ‘너
내 동료가 돼라!’라는 외침에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내
삶의 가장 깊은 정체성은 언제나 코난과 포비의 이름 뒤에 숨어 있었다. 그 순수한 세계관은 현실의 팍팍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정서적 안식처였다.
우리 세대에게 서브컬처는 ‘철없는 취미’이거나 ‘남몰래 즐겨야 하는 음지의 문화’였다. ID를 만들 때조차 동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저 영문 글자를
슬쩍 조합해 숨겨두어야 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만화 캐릭터에 애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주변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세계는 늘 디지털 비밀번호 뒤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내가 숨겨야 할 것으로 여겼던 순수한 정서적 몰입을, 요즘 세대는 가장
힙한 방식으로 세상에 증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방 가득 인형을 채우는 이타백이나 Y2K풍의 오버사이즈 헤드폰 같은 소품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기던 서브컬처 취향을 Y2K 감성의 스트릿 패션으로 승화시켜
당당하게 드러내는 주체적 자기표현’이었다. 아날로그 향수와
스트릿의 융합을 통해 완성된 비주얼을 보며, 이것이 대중적 소비 트렌드로 안착한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젊은 세대의 서브컬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안목을 갖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ID 속에만 숨겨두었던 나만의 열정과 취향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주하게 된다. 거울 속 규격화된 중년의 차림새를 보며, 나는 왜 평생 내 취향을
메일 주소 뒤에만 숨겨왔던 걸까 잠시 생각? 그땐 그랬다. 주체성을
회복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아줄 책으로 읽기를 권한다. 캐릭터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용기는 없을지라도, 오늘만큼은 내 가슴속 코난과 포비를 당당히 꺼내어 마주하고 싶다. 이
눈부신 '오타쿠코어'의 시대에, ID 속 코난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으니까.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