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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
김희경 지음 / 웨일북 / 2026년 7월
평점 :
세 아들을 키웠다. 아들만
셋인 집안은 매 순간이 전쟁터였고, 나와 아내는 그곳을 함께 누빈 전우였다. 내 나이 이제 50대 중반, 주변에선
가사나 육아를 두고 ‘아내를 도와준다’며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나는 그 '돕는다'라는
말의 오만함이 늘 거북했다. 육아는 누군가의 배려로 거드는 은혜가 아니라, 부모라면 당연히 함께 짊어져야 할 온전한 본업이자 치열한 노동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깨어 있는 아빠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를 읽기 전까지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가사와 돌봄의 심연을 직시하게 했다. 청소기 돌리는 실행 노동 이면에, 상황을 조율하는 ‘기획 노동’이 존재함을 파헤친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다 할게’라고 외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왜 시키지 않았냐고 묻는 남편의 말은 기획 노동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가장 흔한 증거다. 무엇을 시킬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정신적 노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가정이라는 우주선의 ‘관제탑’에 홀로 앉혀두고, 지시만 따르는 단순 노무자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삼형제를 키우며 머릿속이 복잡했던 쪽은 늘 아내였다. 예방접종 시기, 학원 스케줄, 식단
고민까지 나는 시키는 일은 해냈지만, 일정을 구상하는 ‘세
번째 근무’의 지독한 과부하는 나누지 못했다.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지침과 지시를 내리는 일에 가깝고, 육체 노동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바로 이 결정의
과정이다. 돌봄의 책임이 닥쳤을 때 사회는 약자인 '딸'이나 '엄마'를 관제탑으로
밀어 올리는 ‘돌봄의 성별화’ 구조를 작동시킨다. '사랑'과 '모성'이라는 외피는, 누군가의 기획 노동과 희생을 당연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가림막이었음을 깨닫는다.
돌봄의 무게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시스템으로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묻는다. 50대에 접어드니 이제 부모님 돌봄이라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복잡한 제도의 미로 속에서 누군가는 또 홀로 밤새 검색창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일에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은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돌봄 경로의 결정 무게를 덜어줄 ‘케어 매니저’ 같은 공적 지원 체계가 절실한 이유다.
세 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훗날 가정을 이룬다면 아내에게 ‘내가 뭘 도와줄까?’ 묻지
말고, 함께 책임지는 '공동 기획자'가 되라고 말이다. 독자들은 가사와 돌봄은 생각하고 결정하는 정신적
기획 노동이라는 이 책의 핵심 주제를 통해, 일상 속 정신적 고갈의 실체를 명확히 인지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돌봄을 도덕적 수사나 희생에만 가두지 말고 공적 시스템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가정 내 공정한 분담의 기준을 세우고 연대하는 소중한 시선을 얻을 수 있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