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평점 :
수의사로 살아온 지난 30년은 ‘재현과 증명’의 연속이었다. 동물의
미열, 혈액 수치 같은 미시적 징후는 임상 실험을 통해서만 사실로 증명될 수 있었다. 가설은 통제된 실험을 통해 재현되어야 진실이 된다. 나에게 과학이란
그런 냉철하고 엄격한 학문이었다.
<실험하는 고고학자>을 읽으면서 부각된 질문? ‘과거를 다루는 고고학은 과학인가, 인문학인가?’ 나는 고고학을 박물관 유물을 보며 과거를 상상하는
문학적 영역으로 치부했다. 지나간 과거는 통제된 실험실로 가져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실험 고고학'은
나의 오만을 무너뜨렸다. 연구자들은 유물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대 효모로 직접 빵을 굽고 흑요석 칼날로 절단력 테스트를 한다. 이 기술의 재현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다. 당대의 물질적 조건을 제한하고 육체 노동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철저한 과학적 방법론이다. 과학의 핵심이 재현과 증명에 있다면, 고고학은 실험 고고학이라는
날개를 달고 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실험고고학의 목적은
단지 과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물질적 조건 속으로 직접 들어가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 말처럼 그들은 오감 복원을 통해 역사의 빈틈을 메운다. 고대의
텍스트는 침묵하지만 직접 땀 흘려 일하는 육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셰프나 미용사 같은 전문가들의
기술이 결합할 때 죽은 데이터는 살아있는 문화가 된다.
‘과학적 실험과 신체적
재현을 통한 고대 인류의 일상과 삶의 복원’이 핵심 주제이다. ‘과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박물관 유리창 너머의 박제된 역사는 직접 도구를 쥐고 땀 흘릴 때 비로소 생생한 일상으로 걸어 나온다. ‘우리는 유물을 발견함으로써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유물을 사용해
봄으로써 과거를 이해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과학적 재현 끝에 닿는 목적지는 결국 인간이라는 인문학적 본질이다. ‘진정한 이해는 손끝과 땀방울에서 시작된다’는 실천적 지식의 가치를
알려준다. 안데스 사냥꾼이 왜 특정 각도로 창촉을 깎았는지 이해하려면 직접 돌을 내리쳐 손에 상처를
입어봐야 한다. ‘지식은 머리로 기억되지만 기술은 몸의 근육과 오감으로 전수된다’는 기술의 복원은 그들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사의 진짜 주인공은
평범한 대중’이라는 말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실험 고고학은
역사라는 거대한 퍼즐에서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대중의 일상을 메워 넣는 정밀한 과학이다. 노동자의 땀방울이
실험자의 근육을 통해 재현되는 순간, 과학은 인문학적 따스함으로 승화된다.
고고학은 과학이라는 정밀한 메스를 들어, 인류의 잃어버린 시간과 마음이라는 인문학적 빈틈을 메워가는 아름다운 융합 학문이다. 50대 중반, 매일 동물의 생명을 과학으로 다루는 나에게 이 책은
재현과 증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뜨겁고도 인간적인 온도를 가르쳐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박제된 유물
속에서 평범한 고대인들의 생생한 숨결을 오감으로 느끼는 지적 확장과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