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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코올중독 의사였습니다
이준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블랙 아웃 등 다양한 주사로 민폐를 끼치다가 단주에 성공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50대 직장인이 된 지금, 내 삶은 평온하지만 가끔은 그 평온함이 폭풍 전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알코올중독 의사였습니다>를 읽는 내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깊은 탄식과 공감이 터져 나왔다.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참회이자 사투 끝에 살아남은 동지에 대한 깊은 유대감이다.
과거의 나는 매일 아침 지옥을 맛보았다. 숙취로 지친 몸을 일으키며 ‘오늘부터는 진짜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퇴근길이면 좀비처럼 편의점으로 향해 초록색 병이 든
검은 봉투를 쥐었다. 그런 내게 종지부를 찍은 결정적인 사건은 결혼 후 찾아온 어느 혹독한 겨울날이었다. 회식 후 집으로 간다는 짧은 통화 후 연락이 두절됐다.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 끝에, 다음 날 새벽 내가 발견된 곳은 집 앞 놀이터의 얼어붙은 그네 위였다. 칼바람 속에서 졸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경찰과 눈물 범벅이 된 아내였다. 블랙아웃. 다음 날 아침 “오늘 당장 술을 끊든지, 이혼하든지 선택하라”는 아내의 마지막 통보를 받았다. 그 서슬 퍼런 경고에 비로소 내가 통제력을 상실한 괴물이라는 현실을 직시했고,
그날로 술을 완전히 끊어내기 시작했다.
외과의사인 저자가 번아웃의 도피처로 술을 선택했다가 바닥까지 추락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환자에게는 금주를 권하며 뒤로는 술 없이 잠들지 못하는 저자의 모순된 모습은
내 젊은 날의 자화상과 닮아 있었다. 의사조차 중독 앞에서는 무력한 인간일 뿐이었다는 고백은, 중독이 결코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뇌 질환’임을 뼈아프게 증명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회복의 열쇠는 ‘지독한
솔직함’과 ‘항복’이다. 자신이 중독자임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 ‘내 힘으로는 이 술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항복하는 선언이 치유의 시작점이다. 나 역시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아내의 마지막 통보라는 벼랑 끝에 서서야 단주의 문턱을
넘었다. 저자는 혼자 참는 단주는 시한폭탄과 같으며, 공동체
안에서 연결될 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고립을 깨고 세상에 손을 내미는 용기만이 우리를 중독으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밧줄이다.
금주 15년 차인 나에게
이 책은 술을 끊는 행위를 넘어, 일상의 루틴을 다시 세우는 ‘삶의
재구성’ 과정이다. 퇴근길 검은 봉투 대신 책과 가족의 따뜻한
손을 잡으며 보낸 지난 15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아침의 다짐을 뒤로한 채, 퇴근길 검은 봉투를 보며
절망하거나 블랙아웃의 공포에 떨고 있을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의사조차 무릎 꿇었던 그 늪에서 빠져나온
기록이, 당신에게도 고립을 깨고 나올 커다란 구원의 손길이 되어줄 것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