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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성선설을 믿는 편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고전적 명제는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일종의 경계선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허구의 세상은 지나치게 냉소적이었고, 모두가 무탈하게 행복하길 바라는 내 소망을 흔들곤 했기 때문이다. 소설
<그루잠>을 읽기시작 할 때 두려움이 앞섰다. 소설을 멀리하던 내가 마주한 주인공 윤설의 줄거리는 나의 순진함을 비웃듯 가혹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겪은 모친의 상실, 첫
직장에서의 추행,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거액의 빚더미까지. 윤설의
전 생애는 연쇄적인 불행의 연속이었다. 소설은 허물어져 가는 그녀의 인생을 건조하게 바라보며 ‘역시 소설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라며 책장을 덮고 싶게 만들었다. 더욱이 현실과 똑 닮아 있지만 미세하게 균열이 간 '낯선 세계'가 나타나면서, 윤설은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독자인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든 힘은 역설적이게도 윤설이 가진 지독한 선함이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남을
완전히 미워하지 못하고 모든 고통을 홀로 감내한다. 소설 속에서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며 ‘내가 믿고 있던 세상은 과연 진짜였을까?’라는 의심이 싹틀
때, 나는 비로소 작품의 핵심 주제를 알게 되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인간의 추악함이 아니라, 그 추악함이
짓밟고 간 자리에서도 기어코 고개를 드는 선함의 생명력이었다.
'영혼의 세계'라는 판타지적 설정과 '접촉 이력 조회'라는 핵심 키워드를 통해 파편화된 복선들이 하나의 퍼즐로
맞춰지는 순간, 가슴을 치는 핵심문장이 찾아왔다. "끝내 보상받지 못한다 해도, 선함은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나로 하여금 대가 없는 선의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인과응보의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내 간절한 소망이 이 가혹한 세계관 안에서도 마침내 온전하게 구원받는 순간이었다.
독자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상처 가득한 현실을 원망하기보다, 그럼에도 내면의 온기를 잃지 않는 이들이 결국 세상을 구원한다는 다정한 위로다. 우리는 타인을 향해 섣불리 쳤던 방어벽을 허물고, 대가 없는 선의를
건넬 수 있는 조그만 용기를 얻게 된다. 냉소적인 세상에 팍팍하고 메말라가던 마음이 다시금 부드러워지고, 내 주변의 작고 소중한 인연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선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을 뜻하는 제목처럼, 고단한 현실이 잠시 깨어 있는 고통의
시간이라면 이 소설이 준 위로는 다시 찾아올 아늑한 단잠이다. 소설을 읽지 않던 나에게 이 책은 내가
믿어온 성선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 단단한 모델이 되어주었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