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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들)
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5월
평점 :
반평생을 직장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속에서 살아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갈 곳이 있었고, 명함 속 사회적 가면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50대에 접어든 지금, 내 삶의 지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은퇴라는 예정된 결별, 자녀의 독립, 그리고 노화라는 신체적 취약함까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이 수많은 변화 앞에서 나는 깊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클레르 마랭의 저서 <단절(들)>은
피할 수 없는 폭풍처럼 내 삶을 휩쓸었다.
저자는 단순히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절단과 달리, 단절은 함께 얽혀 있던 삶의 천을 갈기갈기 찢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50대
직장인에게 단절이란 단순한 일의 중단이 아니다. 사회적 직함과 익숙한 관계가 떨어져 나가는 실존적 이탈의
공포다. 직장을 떠난 내가 과연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익숙한 궤도가 흔들리는 두려움에 나는 그간
단절의 가능성을 외면하며 살아왔음을 직시하게 된다. 조직의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찾아올 사회적 부평초
같은 삶에 대한 공포가 나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랭은 이러한 상실을 단순한 파멸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속한 곳에서 느끼는 미세한 어긋남이나 부유하는 마음을 '본질적
자아를 깨우는 신호'로 승화시킨다. 사회가 정해준 위치나
타인의 시선에 맞춘 자리는 결코 완벽한 제자리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껍질일 뿐이라는
것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저자는 “단절은 나를 가두고 있던
비좁은 정체성의 껍질을 깨뜨리는 순간”이라며 우리를 위로한다. 익숙한
공간에서의 소외감은 낙오의 증거가 아니라, 참된 자아를 찾아 떠나라는 영혼의 부름이었던 셈이다.
결국 인간은 한곳에 영원히 고정된 정착민이 아니라, 삶의 끊임없는 균열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해 나가는 주체다. 나는
다가올 은퇴와 이별을 더 이상 재앙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내 삶의 실패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침내 온전한 내 이름 석 자가 남을 것이고, 노쇠한 몸은 내게 속도를 줄이고 내면을 돌보라는 새로운
신호가 될 것이다. 상실을 성장의 이면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 영혼의 온전한 주인이 된다.
직함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지는 시기,
이 책은 단절을 통해 과거와 결별하고 미세한 어긋남을 실존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전한다. 나처럼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두려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50대 직장인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길 권한다. 찢어지고 갈라진 삶의 틈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의 자리를
찾는 뜻밖의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울타리 밖으로 씩씩하게 나아가 나의 본질을 꽃피울 무한한 가능성의
대지를 발견하길 바란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