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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설계자 -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동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7월
평점 :
쇼룸의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가방을 보았을 때, 혹은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질주하는 자동차의 엔진음을 들었을 때 심장이 먼저 쿵쾅거리는 경험이 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갖고 싶다”는 감정에 심장이 요동친다. 하지만 이내 서늘한 이성이 개입한다. 통장 잔고를 떠올리고 실용성을
따지며 “이게 나한테 정말 필요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게 뜨거웠던 욕망을 꾹꾹 누르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저자의 <감정
설계자>는 바로 그 지점, 하이엔드 브랜드를 마주하고
욕망과 억제 사이에서 치열하게 흔들리는 나의 감정을 예리하게 파고든 책이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억제와 이성적 판단이 사실은 거대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논리로 비교하지만 결국 욕망에 의해 선택하며, 제품 품질이나 스펙은 선택 이후의 사후 정당화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내가 물건을 사지 않기 위해 동원했던 이성적인 핑계들은 실은 브랜드가 뿜어내는 감정적 끌림에 대항하기 위한
처절한 방어기제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애초에 나의 이성을 향해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들은 정교하게 짜인 감정 프레임워크를 통해 내 마음의 빗장을 먼저 열어젖힌다. ‘브랜드의 진짜 승부는 눈에 보이는 제품의 스펙 경쟁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는 문장 앞에서, 내가 왜 그토록
이성의 브레이크를 밟으려 애썼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다. 내 마음 깊은 곳은 이미 그들에게 점령당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욕망을 누르면 누를수록 그 브랜드가 더 아른거렸던 이유도 비로소
이해가 간다. 진정한 하이엔드 브랜딩은 단순히 비싼 가격표를 다는 것이 아니라,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함을 만드는 일이다. ‘진정한 하이엔드는 단순히
가격표가 비싼 물건이 아니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상징적 가치와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함을 지닌 것’이라는 저자의 통찰처럼, 내가 탐했던 것은 그 물건의 물리적 기능이
아니다. 그 브랜드가 품고 있는 무형의 상징적 가치, 그리고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증명될 나의 정체성이다. 그렇기에 욕망을 억제한다는 것은 도리어 내가 그 브랜드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뼈저리게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거부하려 애쓸수록 그 상징성은 내 안에서 더욱
커진다.
그들이 나를 유혹하는 방식은 충격적이다. 그들은 길거리의 흔한 광고판처럼 자신을 사달라고 애걸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게 숨어 피를 말린다. ‘정보와 기술이 평준화된 시대에 살아남는 브랜드는 고객을 억지로 설득하지
않고, 고객 스스로 발견하도록 자신을 설계한다’는 문장을
읽을 때 소름 돋는다. 내가 남몰래 정보를 찾아보고, 한정판의
출시일을 기다리며 애태웠던 모든 과정이 실은 그들이 파놓은 덫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숨은 욕망을 건드려 내가 스스로 그들을 발견하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이 고도로 계산된 설계 앞에서는 아무리 단단한 이성의 성벽이라도 무력하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매번 욕망을 누르며 이성의 끈을 붙잡으려 애쓰는 소비자로서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동시에 생산자들에게는 ‘성공하는
브랜딩을 원한다면 단순히 제품의 장점을 나열하는 논리주의자가 될 것이 아니라, 고객의 욕망을 조율하는
감정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해답을 제시한다. 나는 여전히
하이엔드 매장 앞을 서성이며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한다. 여전히 이성은 브레이크를
밟겠지만, 내가 누르는 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물질이 주는 환상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내 안의 방어벽을 완벽하게 무너뜨릴 진짜 ‘감정 설계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성을 마비시킨 채 그들이
설계한 감정을 기쁘게 구매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유쾌한 예감이 든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