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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긋다, 마음을 잇다
이향숙·강숙아·김상철·이미자·이은정·임해숙·조시원·조숙희·지선령·황경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내 손에 들린 책들이 어쩌면 치열한 현실을 피하기 위한 도피의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자가 주는 안온함에 숨어 세상의 소란을 지워내던 나는 자칭 타칭 ‘활자 중독자’였다. 마주하기
두려운 책임감과 삶의 무게로부터 도망쳐 타인의 문장 속으로 숨어드는 일은 달콤했으니까. 하지만 도피가
길어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자라났다. 남의 생각에 밑줄을 긋는 일에만 머물러 있던
내가 이제는 나의 마음을 세상과 잇고 싶다는, 즉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었다.
그동안 읽었거나 읽기 위해 책장에 꽂아 놓은 책들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이 책들은 와이프와 가장 큰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버린다. 1년 이상 깨끗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 분명 읽었지만 머릿속에
아무런 기억이 없는 책들을 미련 없이 비워낸다. 그렇게 솎아내고 남은 책들은 손때가 묻고 내 손으로
직접 밑줄을 그은 책들뿐이다. 나는 그 남겨진 문장들을 읽고 또 읽는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마주한
<밑줄을 긋다, 마음을 잇다>는 책
속의 한 문장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에서 문장은 단순한
위로에 그치지 않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음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구체적 행동의 단서’로 작용한다. 저명한 작가들의 문장은 그저 종이 위의 활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독자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며 살아 숨 쉬게 된다. 현실 도피의 수단이었던 나의 활자 중독이, 실은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해 붙잡을 단 하나의 문장을 격렬하게 탐색하던 과정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성공한 이들의 화려한 영웅담이 아니라, 우리 주변 평범한 이웃들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 낸 서사라는 점이다. 뇌종양, 사업 실패, 깊은 갈등 속에서도 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 열 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는 완벽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 진솔함 덕분에 더 큰 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옆집에
사는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친근하다. 그들과 함께 책장을 넘기고 밑줄을 그으며 내 마음의 상처
역시 시나브로 아물어 갔고, 타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연결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얻었다. 이 책에는 거친 폭풍이 아닌, 대지를 적시는 이슬비 같은 묵직한
울림이 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나에게 '나도 쓸 수 있다'는 시작의 용기를 격려하듯 불어넣었다.
이제 나는 남이 쓴 활자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독자에서 벗어나려
한다. 내면의 깊은 감정과 울림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오롯이 나만의 문장으로 빚어내려 한다. 타인의 문장에 밑줄만 긋던 관객의 삶을 지나, 내 삶을 글로 마주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로 거듭나고자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결코 없다. 도피처였던 방구석 책방에서 걸어 나와 글쓰기라는 광장으로 향하는 지금, 오늘
밤 오랫동안 노트북을 연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타인의 문장에 그어 내린 밑줄이 마침내 나만의 글로 온전히 이어지는, 또
다른 인생의 진짜 시작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