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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에 내가 없다
권지연 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평점 :
"지금 당신의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치열하게 달리다 문득 가방을 열었을 때, 정작 그 속에 ‘진짜 나’의
이름과 취향은 사라지고 없음을 깨닫는 공허함에 공감한다. <내 가방에 내가 없다> 속 김태이 작가의 문장, “가방 속엔 눈물 닦을 휴지만 없는
게 아니었다. 거기엔 나도 없었다”를 읽는 순간,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늘 거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놓여 있던 아내의 가방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주기적으로 새 가방을 사기 시작했다. 농담으로 ‘학교 다니 때보다 가방이 더 많은 거 같은데?’라고 말하면 씩 웃고 마는 아내. 집안 살림이나 아이들 교육비에는
꼼꼼하게 지갑을 닫으면서도, 가방을 고를 때만큼은 묘하게 들뜨고 집요해 보였다. 50대에 접어든 남편의 둔한 시선으로는 ‘멀쩡한 가방이 저렇게 많은데
왜 또 살까’ 하는 철없는 타박이 먼저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저
나이 들며 생기는 사치나 허영이 아닐까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내가 쉬지 않고 사 모았던 것은 가방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쓰럽고 서글프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아내의 가방은 늘 무거웠다. 결혼 후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사회적 역할의 무게가 그 작은 가방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 같다. 아이의 기저귀와 물티슈, 남편의 영양제, 시댁 어른들께 드릴 약봉지까지, 정작 본인의 물건은 비좁은 틈새에 간신히 끼워져 있을 뿐이었던 거 같다. 아내는
타인의 시선과 가족에 대한 의무로 가득 찬 가방을 메고 꽃다운 30~40대를 보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돌봄의 강도가 줄어들었지만, 문득 열어본
가방 속에 정작 '진짜 나'의 존재가 비어 있음을 알게된
아내의 외로움이 이 책의 문장들과 겹쳐 보였다.
이제야 아내가 왜 그토록 가방을 샀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려나 있던 자신을 향한 뒤늦은 보상이자,
“나 여기 살아있다”고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터에 새 가방을 들여놓으며, 잠시나마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설렘과 취향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책 속 작가들이 가방을 비워내며 진짜 나를 찾아갔듯, 이제는 내가 아내의 무거운 가방을 비워내어 진짜 아내를 찾아 주려고 한다. 아내가
새로 산 가방을 메고 외출할 때, "또 샀냐"는
잔소리 대신 "참 잘 어울린다"는 다정한
칭찬을 건네기로 한다. 그 가방 속에는 의무 대신 오롯이 아내만의 온전한 행복과 꿈이 채워져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상 모든 아내들의 숨겨진 눈물을 닦아주는 참 따뜻한 책이고 무심한
남편들에게 일침을 놓는 책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