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배드 : 클로이 에스포지토의 3부작 - 제 2권 클로이 에스포지토의 3부작 2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쌍둥이 언니 베스와 형부 암브로조, 베스의 내연남이자 이웃인 살바토레는 물론 본업은 마피아인 신부까지 살해하고 뒤처리는 모두 암브로조의 동업자 니노에게 맡겨버린 앨비는 베스의 흉내를 내며 니노와 함께 돈을 들고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니노가 앨비를 속이고 돈가방과 람보르기니까지 모두 가지고 도망을 쳐버렸다.

복수심에 불타오른 앨비는 니노를 잡아서 죽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다행히 그녀는 니노의 핸드폰에 몰래 위치 추적 어플을 깔아뒀었다. 핸드폰이 공항에 있는 걸로 봐서 그가 이 나라를 뜰 거라 예상한 앨비는 베스와 역할을 바꾸느라 몸에 걸치고 있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귀걸이, 약혼반지와 결혼반지 모두를 전당포에 가서 돈으로 바꿨다. 핸드폰이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있다는 걸 확인한 앨비는 곧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몇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부쿠레슈티는 어두운 밤이라 교통편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전 재산이 든 토트백을 누군가가 빼앗아 도망친다. 악에 받친 앨비는 죽자 사자 쫓아가 토트백을 되찾고 몸싸움을 벌이다 화가 난 나머지 그의 머리채를 벽에 처박아 죽이고 만다. 당황스러워진 앨비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 남자가 니노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다시금 그를 쫓을 방법을 생각해낸다.

 

 

 

매드 시리즈 1편인 <매드>에서 제목처럼 완전히 미친 모습을 보여줬던 앨비가 이번엔 복수를 위해 추격전을 벌였다. 니노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쫓기 시작하지만 이미 그에게 푹 빠져버려서 얼굴을 마주한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를 그런 복수였다.

이런 와중에 암브로조와 살바토레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되고, 앨비라고 알려진 베스의 시신 역시 찾게 되면서 경찰이 베스 행세를 하는 앨비를 쫓기 시작하여 그녀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는 것도 약간은 걱정하게 됐다. 하지만 이 미치고 나쁜 여자에게 행운이라도 따라주는지 매번 무사히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이전 소설에서는 앨비가 정말 굉장한 또라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배드>를 읽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정상이라는 게 느껴졌다. 부쿠레슈티에서 남자를 죽인 건 가방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쳐도, 나중엔 수녀님을 (모르고)차로 치고 수류탄을 가지고 죄 없는 경찰들까지 죽였다. 여러 차례 살인을 한 것뿐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산책을 시키는 개가 마음에 들어서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다가 훔치고, 차가 필요해서 또 훔치는 등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나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렀다.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여자였다. 정말이지 이런 캐릭터는 처음 본다.

 

이 와중에 또 웃긴 것은 여전한 성욕이었다. 지난 시리즈에서는 남자에게만 성욕을 느끼고 열심히(?) 섹스를 하던 그녀는 이번엔 어마어마하게 멋지고 아름다운 레인이라는 여자를 만나 잠깐 동안 굉장한 희열을 느낀다. 암만 봐도 앨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책까지 읽고 나니 영화화가 퍽 걱정이 됐다. 일단 정신줄을 놓고 연기를 해야 될 거고 노출도 엄청 있을 테고 연기력도 받쳐줘야 할 텐데, 이런 캐릭터를 맡을 20대 여배우가 과연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잘만 한다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에 버금가는 미친 캐릭터가 나오긴 할 것 같다. 물론 욕은 훨씬 많이 먹을 것 같지만.

 

아무튼, 니노를 쫓느라 바쁜데 경찰은 기어코 앨비를 찾아내고, 호주에서 날아온 엄마가 눈앞에 나타나 죽은 아이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베스였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하지만 엄마도 멀쩡하지는 않은 캐릭터라 잠깐 애통해했을 뿐, 이후로는 니노를 찾기 위해 앨비가 도움을 받고 있던 도메니코와 사랑에 빠진다. 앨비의 엄마를 보며 그녀가 누구를 닮은 건지 확실히 알았다. 앨비만큼이나 굉장한 엄마였다.

후반엔 결국 니노를 찾고 복수심은 사그라들어 그들 나름의 사랑의 도피를 하지만, 코카인에 취한 앨비가 마지막에 또 한 번 사고를 치고 엄마가 내내 숨겨왔던 비밀 역시 밝혀졌다. 마지막 두 모녀의 모습을 보고 나니 왠지 베스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쌍둥이 여동생 사이에서 괜찮게 자랐는데 결국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버려서 안타깝다.

 

<매드>에서 앨비의 캐릭터가 워낙 강했는데, <배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제목처럼 앨비는 진짜 나쁜 여자였다. 생각 없고 양심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본능에 충실한 욕구뿐이었다. 그래서 이 캐릭터가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3부작의 마지막 책은 언제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앨비의 마지막이 어떨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어서 조금 궁금하다.

아무도 모르게 살인을 하다니, 왜 그런 짓을 하지? 나라는 걸 드러내도 어차피 경찰은 나를 못 잡는다. 분명하다. 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악명을 떨칠 것이다. - P223

"엄마, 저를 비난하지 마세요. 전 그저 좋지 않은 때에 가서는 안 될 장소에 갔을 뿐이에요. 그게 다라고요."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52년.

습지 판잣집에 사는 카야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가 외출용 구두를 신고 떠나버렸다. 카야는 엄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엄마는 며칠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나자, 카야의 오빠, 언니들도 차례로 집을 나갔다. 카야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바로 위 오빠인 조디밖에 없었지만 조디 역시 어린 동생에게 떠나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제 집에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카야뿐이었다.

그 누구도 카야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그녀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아빠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착하게 보이도록 노력한 덕분에 부녀 관계가 더없이 좋아지지만, 아빠 역시 습지를 떠나버려 이제는 정말로 카야 혼자만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카야를 마시 걸, 습지 쓰레기라고 부르며 병균 취급을 했기 때문에 의지할 데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1969년.

소방망루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두 소년이 계단 밑 진흙에 기이하게 몸이 꺾여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쿼터백으로 마을에서 유명한 체이스 앤드루스였다. 소년들은 보안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고, 이내 보안관들은 사건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진흙에 남은 발자국이 없었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물론 체이스의 발자국조차 없었고, 그 누구의 흔적이나 지문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소외된 소녀의 성장기로 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미래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걸 밝혔기에 스릴러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1950년대 미국 남부 배경이란 사실로 알 수 있듯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백인 마을과 유색인종만 사는 마을이 당연히 구분되어 있었고, 그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습지 소녀 카야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흑인보다 카야가 더 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다. 카야가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공무원에게 잡혀 딱 하루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경험이 어린 카야에게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카야는 글을 배우지 못해 엄마가 보낸 편지도 읽을 수가 없어서 아빠가 화를 내며 태워버린 편지의 재만 간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빠마저 습지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기에 카야는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렸다.

 

여섯 살짜리 어린 카야는 당장에 먹고살아야 하는 게 문제였는데, 다행히 가게를 하는 흑인 점핑 덕분에 홍합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었고, 점핑의 아내 메이블이 카야에게 필요한 헌 옷과 신발을 가져다주었으며 나중엔 신체 변화에 따른 도움도 주었다. 그리고 조디와 몇 번 낚시를 한 적이 있는 테이트가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먹고사는 것에도 큰 도움을 줬다.

차별받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점핑, 메이블 부부는 그 누구보다 카야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카야는 혼자 살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으니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카야가 경계심이 워낙 심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갑게 지낼 수는 없었어도 그녀 나름대로 점핑 부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테이트는 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들지 않은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카야를 걱정하며 최대한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생각이 깊고 다정해서 카야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테이트 역시 마을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카야에게 푹 빠졌다.

 

카야와 테이트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테이트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카야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난 테이트의 빈자리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카야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게 바로 훗날 사망할 체이스였다. 미래엔 죽어 없어졌을 사람이 카야와 가까워지는 걸 보며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가 겹쳐져 현재가 된 시점부터는 체이스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체이스가 마시 걸 카야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표적수사 대상이 되어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는 편견과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습지의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이유로 카야는 부당한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소설 후반을 읽는 내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카야가 그럴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번 한 번만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카야가 받았을 당연한 멸시와 차별, 편견 등이 얼마나 그녀를 상처 내고 또 외롭게 했을지 생각해보게 됐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그녀를 무지렁이로 보고, 어느 정도 자라 외모가 아름다워지자 그저 하룻밤 가지고 놀 여자로만 봤다. 외따로 떨어져 산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슨 벌레보듯 하는 게 당연했던 시기에 그런 취급을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한 마음이었을까. 하나의 편견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해지고 또 오래 지속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카야가 행복하기를 내내 바랐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애가 탔는데 결말은 다행히 원하는 대로 됐다. 하지만 심장이 덜컥 한 부분이 있었고, 마지막엔 좀 놀라우면서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유명세를 떨치는 이 소설도 영화화가 된다고 한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과 애틋한 사랑, 그리고 살인사건까지 담고 있기에 영화로 만들 요소가 충분하다고 본다. 캐스팅과 각색이 잘 됐으면 좋겠다.

카야는 나침반을 심장에 대었다. 이곳보다 더 절실하게 나침반이 필요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 P370

테이트는 첫사랑 그 이상이었다. 카야처럼 습지를 헌신적으로 사랑했고,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었고, 아무리 희박한 인연이라도 사라진 가족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 P246

마음 깊은 곳에서, 카야는 자기 역시 체이스에게 해변의 예술작품 같은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모래밭에 휙 던져버릴 신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존재. - P200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갈망했어. 정말로 누군가 내 곁에 머물러줄 거라고, 실제로 친구와 가족을 갖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집단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아무도 내 곁에 머물러주지 않았어. 그쪽도 떠나버렸고, 우리 가족도 내 곁에 남지 않았지." - P361.3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드는 외국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라틴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라틴어는 요즘엔 거의 쓰이지 않는 언어인데, 그래도 전문성을 띠는 특정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익숙한 문장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이 말했던 "Carpe diem" 같은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라틴어 문장 하나쯤 외우고 있다고 하면 왠지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정작 조금만 파고들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게 되는 언어인 것 같다. 책 초반에 라틴어의 do 동사 활용표를 보고 기겁을 했을 정도였다. 세상에 이걸 어떻게 공부하나 싶어서 책을 괜히 읽기 시작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라틴어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 언어와 관련된 로마 문화나 사람들, 생각 등 인문학이 주를 이루고 있는 책이었다.

 

 

 

언어는 사고의 틀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p.45

 

 

 

라틴어는 기본적으로 수평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언어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대를 내려다보지 않는 언어라고 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어려 보이면 일단 하대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고, 또 그런 걸 많이 겪어서 그런지 언어에서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이런 예시로 편지를 보낼 때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말이 관용적인 표현이겠지만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 "욕망"이라는 단어에 왠지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욕망하는 인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읽으니 긍정적인 면이 보였다. 욕망하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삶이나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욕적인 삶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욕망은 당연히 좋고 긍정적인 것이어야 하겠다.

 

저자인 한동일 님의 개인적인 일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2002년 월드컵 때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읽지 않아도 훤히 예상됐는데, 당시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결과 때문에 학생들에게 큰일을 당할 뻔하고 심지어는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갔더니 교수님이 나가라고 했다던 부분은 등골이 서늘했다. 그래도 교수님이 이성적인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p.137

 

 

 

인생에 대해 말하는 책은 대체로 에세이를 통해 많이 접했는데, 라틴어를 중심으로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왠지 모르게 괜찮다, 편안하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책에 담긴 작가님의 온화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라틴어를 통해 다시금 깨달은 인생의 의미, 앞으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열다섯 살이 된 초희의 함이 들어오는 날 비가 내렸다. 초희의 아버지 허엽은 물론 어머니 김 씨도 내리는 비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미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비가 내렸어도 무사히 함을 받고 손님맞이를 치르고 난 깊은 밤, 누군가가 안채 용마루에 올라 시가에서 보내준 초희의 녹의홍상을 찢어발겼다. 잠을 이루지 못해 잠깐 나왔던 초희가 그 모습을 보았고, 둘째 오라비 허봉의 친구이자 초희를 남몰래 사모하는 최순치, 그리고 친구를 따라 나온 허봉과 부모 역시 목격했다.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초희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집안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어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입단속을 해 초희는 세도가 안동 김씨 집안의 성립과 혼인을 한다. 성립은 혼례를 치르는 내내 주눅이 들어 있더니 합방을 한 첫날밤에 혼자 술을 마시고 뻗어버렸다. 그 후 집을 떠나 시가로 향한 초희는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시어머니 송 씨의 시집살이를 묵묵히 받아내며, 과거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면서도 학문에 매진하기는커녕 기생집에나 드나드는 남편 성립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짧은 생을 살아간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명문가 여식에 천재 소리를 들었던 시인이긴 해도 당시 여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으나 대사성을 지낸 아버지 허엽과 이조좌랑이었던 둘째 오빠 허봉,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 동생 허균이 있었기에 허난설헌의 기록이 조금은 남아있었던 것 같다.

당호 외에 본래 이름은 초희이고 15살에 김성립과 혼인 후에 무지막지한 시집살이를 견뎌냈다. 뱃속의 아이를 유산한 일이 있었고, 얼마 품어보지도 못한 딸과 아들을 너무 어린 나이에 차례로 떠나보냈다. 자식을 앞세운 슬픔을 견디지 못했었는지 그녀는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기록에만 있는 사실은 이렇게 간략했을지라도 혼인 후 12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삶이 얼마나 그녀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을지 왠지 예상할 수 있었다.

 

허난설헌의 친정은 교육에 자유로운 편이었다고 한다. 당시엔 사대부 자제라고 할지라도 딸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녀는 초희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8살에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시를 지은 여동생의 재능을 알아본 둘째 오빠 허봉이 자신의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시인 손곡 이달에게 초희와 균의 교육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렇게 열다섯 살 때까지 서책을 읽고 시를 지으며 자유롭게 살던 그녀가 혼인 후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억압된 삶을 살게 됐으니 답답한 게 당연했다.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혼인 후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부인의 넘쳐흐르는 천재성을 시기하는 못난 남편(놈)과 여인이 글을 쓰는 걸 아니꼽게 본 시어머니가 있어서 허난설헌은 재능을 억누르며 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자잘한 이야기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소설이었다. 전기 실화가 아닌 팩션(Faction)이라 어느 정도는 꾸며낸 것이라는 걸 감안하고 읽었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읽으면서 분통이 터졌다. 시어머니의 악행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했는데,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짜증 나긴 하지만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남편 김성립이었다. 이 인간은 혼인하기 전에도 학문을 제쳐두고 노느라 과거에 낙방을 한 전적이 있던 터라 혼인 후에 새사람이 되어 과거에 붙을 리가 없었다. 남편이 공부를 안 한다고 아내가 닦달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괜히 초희만 시어머니에게 트집이 잡혀 사람이 잘못 들어왔단 식의 개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와중에 김성립은 자격지심까지 있어서 고매한 부인을 시기하기나 했다. 능력도 없는 게 자존심만 센 경우였다.

어떻게 이런 인간과 허난설헌을 혼인시켰는지 너무 열이 받았다. 이런 놈 말고 가풍이 비슷한 집안과 맺어졌다면 허난설헌은 재능을 마음껏 펼치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고 슬프다.

 

아름답게 피어 짧게 진 꽃 같은 허난설헌의 삶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의 신산한 삶도 말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딸에게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허난설헌이 낳은 큰딸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해산 후에 돌아온 시가에서 딸에게 항렬이 붙은 이름을 지어줬다며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여인은 글도 배우지 못하고 재능이 있어도 감옥 같은 집에 갇혀 오랫동안 외롭고 또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는 게 가련했다. 사대부 집안의 허난설헌이 이 정도로 살았으니 그녀보다 낮은 신분의 여인들은 얼마나 더 박복한 삶을 살았을까 싶다. 이런 이유로 읽는 내내 슬프고 안타깝고 또 화가 나기만 했었나 보다.

 

허난설헌이 허균의 누나라는 사실과 당대 여류 시인이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삶을 살다 금세 떠나버렸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해서 좀 부끄럽다. 사실에 바탕을 둔 창작 소설이라고 해도 실제 인물을 향한 작가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는 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나도 같은 마음으로 그녀의 삶에 흠뻑 빠졌었다.

머물지 않고 흐르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고여 있지 않아 늘 새롭고 싱싱하다. 그미도 때때로 흐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을 느꼈다. 청정한 상태로 머물다가 언젠가는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 공기 중에 떠도는 한 톨의 먼지가 되어 하늘로 스며든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현상인가. - P99.100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좁은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없다. 그미는 절로 숨길이 떨려 나온다. 나무, 풀, 꽃들, 새들의 재잘거림. 그들이 전하는 계절의 수런거림을 가슴에 적시며 살아왔다. 여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고 조정하는 칼빛 같은 법도와 명령만이 좁은 집안을 횡횡거릴 뿐이다. - P132

울컥 서러움이 복받쳤다. 아이한테 이름을 준 것이 그리 부당한 노릇이란 말인가. 이름 없이 평생을 살아가는 이 나라 여자들이 측은하고 가여워 가슴이 빠개지는 것 같다. - P199

그미의 눈가에 눈물이 핑그르르 어린다. 겹겹이 감추고, 숨기고, 억압하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순수한 본성까지도 작은 틀 속에 가두려는 제도와 인습이 문득 진저리쳐진다. 내 어찌 이 땅에 아녀자로 태어나 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던고. - P2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드 매드 시리즈
클로이 에스포지토 지음, 공보경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런던에 사는 앨비(앨비나)는 모델처럼 멋지고 섹시한 남자 암브로조와 결혼 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사는 쌍둥이 언니 베스(엘리자베스)의 메일을 받는다. 자기네 집에 꼭 놀러 오라면서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앨비는 메일을 무시했지만 베스는 몇 번이고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래도 앨비는 갈 생각이 없었다. 좋아하지는 않아도 일단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인 베스를 안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계정으로 포르노에 관한 트윗을 하는 바람에 잘리고, 셰어하우스에서도 쫓겨나 내일 당장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스가 있는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것도 베스가 예약해 준 비즈니스석에 앉아 공짜 샴페인을 마시면서 말이다.

 

공항에 마중 나온 형부 암브로조의 차를 타고 도착한 언니 부부의 집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호화로웠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베스는 어릴 때부터 그랬듯 외모는 같아도 앨비보다 묘하게 더 예쁘고 우아해 보였다. 거기다 베스에겐 어니라는 예쁜 아들이 있고, 가정부 겸 유모도 있으며, 옷장에는 눈이 번쩍 뜨일 명품으로 가득 차 있다. 앨비는 언제나처럼 속으로 베스를 시기했다.

 

도착 둘째 날이 되자 베스는 부탁이 있다면서 몇 시간만 자기 행세 좀 해달라고 했다. 얼굴은 같아도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앨비는 거절했지만, 베스가 몇 시간만 된다고 하면서 예쁜 명품 샌들을 주겠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기로 한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옷을 바꿔 입고 머리 모양과 화장, 네일까지 완벽하게 서로의 모습으로 꾸민다. 베스는 어니를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고, 베스의 행세를 하는 앨비는 언니의 남편과 단둘이 집에 남게 된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앨비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 베스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장르가 스릴러라는 걸 알고 있었고 베스가 죽어서 앨비가 언니 행세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려나 싶었다.

사건이 중요 포인트라기보다는 앨비의 존재 자체가 굉장하고 과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하자면, 내가 읽은 소설 주인공 중에 최고의 또라이이자 미친 여자가 바로 앨비였다. 프롤로그 부분이 지나고 앨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까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포르노를 보고 그걸 회사 계정에 트윗하는 모습을 보며 이 여자는 얼마나 미쳤나 싶어 당황했는데, 나중엔 그 정도는 약과라는 걸 보여줬다. 상상초월의 또라이라서 중반까지는 왜 이러나 싶었다. 감정이 널을 뛰는 것은 그러려니 했는데 미친 사람처럼 굴다가 갑자기 예상 밖의 행동을 해서 황당했고 또 웃기기도 했다. 여태까지 본 적 없는 특이한 캐릭터라 나중엔 신기해서 좀 재미있기도 했다.

 

역할을 바꿔 서로의 행세를 하다가 베스가 사고로 죽은 뒤부터 소설은 제정신 아닌 여자의 섹슈얼 스릴러로 흘러갔다. 베스가 암브로조와 만나기 시작했을 당시인 8년 전에 앨비는 그와 잤고 심지어 임신까지 했으나 아기를 잃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차별을 받으며 살아와서 오랫동안 베스를 시기했던 앨비는 언니가 암브로조와 결혼해 누리고 있는 지금의 삶이 원래는 자기 것이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베스가 살아있을 때는 아무리 역할을 바꾸고 있더라도, 암브로조가 탐이 나더라도 끝끝내 피해 다녔는데, 언니가 죽고 난 뒤에 그와 섹스를 했고 베스와 바람을 피우던 옆집 조각가 살바토레와도 잠자리를 가졌다. 심지어는 또 다른 남자와도 자면서 욕구를 충족해나갔다.

앨비가 회사에서 포르노를 볼 때부터 알아봤는데 예상보다 더 색광이었다. 앨비는 정말이지 육욕에 충실한 노예였다. 거기다 생각하는 방식이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고 나중엔 살인 본능에 눈을 뜨기까지 했다. 진짜, 진심으로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냈는지 작가가 좀 궁금했다.(감사의 말에 엄마, 아빠에게 책을 읽지 마시라고 써놓은 게 포인트!)

 

렇게 본능에 충실한 앨비는 살인에도 맛이 들려 앞길을 가로막는다 싶으면 다 죽이게 되는데, 수습은 암브로조의 친구 니노가 다 했다는 것도 좀 웃겼다. 아무 생각 없이 살인을 하는 바람에 경찰이 집에 찾아오기도 하고, 암브로조가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마지막엔 3천만 달러짜리 그림 사건도 일어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치게 되는데, 무지갯빛 인생을 손에 넣을 뻔하다가 고대로 빼앗기는 바람에 분노한다.

앨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그 사람은 끝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무래도 앨비가 너무 굉장한 캐릭터라 잡을 때까지 쫓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캐릭터가 앨비의 육욕을 가장 만족시켜준 사람이라 더욱 집착하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은 리뷰를 통해 먼저 접했는데 결말을 맺다가 말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져 찾아보니 3부작이라고 한다. 작가가 이런 특이한 캐릭터를 한 번으로 끝내기엔 아쉬웠나 보다. 2부 <배드>는 출간됐고, 3부 <댄저러스 투 노우(Dangerous To Know)>는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설이 영화로도 나온다고 한다. 과연 어떤 배우가 이 미친 앨비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상하고 특이한 앨비의 다음 이야기도 곧 읽어봐야겠다.

사람들은 쌍둥이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며 초자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영원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쥐뿔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개소리 그만 좀 하길.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난 도플갱어의 그림자에 가려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 P66

난 이제 베스다. 난 안전하다. 여기서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살아 있는 것도 나다. 암브로조가 나를 베스라고 생각하는 한 괜찮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베스로 살 것이다. 베스보다 더 베스답게. - P252

완벽한 살인이자 내 두 번째 살인이다! 나는 워낙 빨리 배우는 사람이다. 이 일도 꽤 쉽게 해내고 있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프로처럼 숙련되게……. - P4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