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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1952년.
습지 판잣집에 사는 카야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가 외출용 구두를 신고 떠나버렸다. 카야는 엄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엄마는 며칠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나자, 카야의 오빠, 언니들도 차례로 집을 나갔다. 카야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바로 위 오빠인 조디밖에 없었지만 조디 역시 어린 동생에게 떠나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제 집에는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카야뿐이었다.
그 누구도 카야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그녀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아빠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착하게 보이도록 노력한 덕분에 부녀 관계가 더없이 좋아지지만, 아빠 역시 습지를 떠나버려 이제는 정말로 카야 혼자만 남았다. 마을 사람들은 카야를 마시 걸, 습지 쓰레기라고 부르며 병균 취급을 했기 때문에 의지할 데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1969년.
소방망루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두 소년이 계단 밑 진흙에 기이하게 몸이 꺾여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쿼터백으로 마을에서 유명한 체이스 앤드루스였다. 소년들은 보안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고, 이내 보안관들은 사건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진흙에 남은 발자국이 없었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물론 체이스의 발자국조차 없었고, 그 누구의 흔적이나 지문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소외된 소녀의 성장기로 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미래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걸 밝혔기에 스릴러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1950년대 미국 남부 배경이란 사실로 알 수 있듯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백인 마을과 유색인종만 사는 마을이 당연히 구분되어 있었고, 그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습지 소녀 카야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흑인보다 카야가 더 심한 차별을 받고 있었다. 카야가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공무원에게 잡혀 딱 하루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경험이 어린 카야에게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카야는 글을 배우지 못해 엄마가 보낸 편지도 읽을 수가 없어서 아빠가 화를 내며 태워버린 편지의 재만 간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빠마저 습지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기에 카야는 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렸다.
여섯 살짜리 어린 카야는 당장에 먹고살아야 하는 게 문제였는데, 다행히 가게를 하는 흑인 점핑 덕분에 홍합을 팔아 돈을 벌 수 있었고, 점핑의 아내 메이블이 카야에게 필요한 헌 옷과 신발을 가져다주었으며 나중엔 신체 변화에 따른 도움도 주었다. 그리고 조디와 몇 번 낚시를 한 적이 있는 테이트가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먹고사는 것에도 큰 도움을 줬다.
차별받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점핑, 메이블 부부는 그 누구보다 카야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카야는 혼자 살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으니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카야가 경계심이 워낙 심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갑게 지낼 수는 없었어도 그녀 나름대로 점핑 부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테이트는 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들지 않은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카야를 걱정하며 최대한 배려하고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생각이 깊고 다정해서 카야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테이트 역시 마을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카야에게 푹 빠졌다.
카야와 테이트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테이트에게는 꿈이 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카야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난 테이트의 빈자리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카야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게 바로 훗날 사망할 체이스였다. 미래엔 죽어 없어졌을 사람이 카야와 가까워지는 걸 보며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가 겹쳐져 현재가 된 시점부터는 체이스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체이스가 마시 걸 카야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표적수사 대상이 되어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는 편견과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습지의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이유로 카야는 부당한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소설 후반을 읽는 내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카야가 그럴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번 한 번만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카야가 받았을 당연한 멸시와 차별, 편견 등이 얼마나 그녀를 상처 내고 또 외롭게 했을지 생각해보게 됐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그녀를 무지렁이로 보고, 어느 정도 자라 외모가 아름다워지자 그저 하룻밤 가지고 놀 여자로만 봤다. 외따로 떨어져 산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슨 벌레보듯 하는 게 당연했던 시기에 그런 취급을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한 마음이었을까. 하나의 편견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해지고 또 오래 지속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카야가 행복하기를 내내 바랐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애가 탔는데 결말은 다행히 원하는 대로 됐다. 하지만 심장이 덜컥 한 부분이 있었고, 마지막엔 좀 놀라우면서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유명세를 떨치는 이 소설도 영화화가 된다고 한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과 애틋한 사랑, 그리고 살인사건까지 담고 있기에 영화로 만들 요소가 충분하다고 본다. 캐스팅과 각색이 잘 됐으면 좋겠다.
카야는 나침반을 심장에 대었다. 이곳보다 더 절실하게 나침반이 필요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 P370
테이트는 첫사랑 그 이상이었다. 카야처럼 습지를 헌신적으로 사랑했고,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었고, 아무리 희박한 인연이라도 사라진 가족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 P246
마음 깊은 곳에서, 카야는 자기 역시 체이스에게 해변의 예술작품 같은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모래밭에 휙 던져버릴 신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존재. - P200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갈망했어. 정말로 누군가 내 곁에 머물러줄 거라고, 실제로 친구와 가족을 갖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어. 집단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아무도 내 곁에 머물러주지 않았어. 그쪽도 떠나버렸고, 우리 가족도 내 곁에 남지 않았지." - P36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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