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시간이 만드는 기적, 그곳의 당신이라는 이야기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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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 출신의 강세형 저자가 쓴 이 책은 자신이 보고 읽고 감상한 책과 영화, 그리고 몇몇 드라마를 소개하고 있었다. 어디서 이 책을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을 책 목록에 메모해뒀길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서 이런 내용의 책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보고 읽은 영화와 책을 이야기할 땐 반가웠고, 아직 접하지 못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땐 나중에 꼭 보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처음 소개한 것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주인공 소녀의 다섯 개의 감정을 사람으로 형상화해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줬다. 저자가 표현했던 것처럼 나도 상상 친구 빙봉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친구들 역시 자녀들보다 더 많이 울었다고 하던데 역시나 어른들을 위한 감동 영화임에 분명했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영화를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을 느껴졌다.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 표현으로 인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영화 <컨택트>와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언급한 <우리도 사랑일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있고 감명 깊게 봤던 터라 원작이 상당히 아쉬웠었는데, 저자가 말하는 원작에 대해 읽고 있으니 내가 책을 제대로 읽은 게 맞긴 한가 의심이 들었다. 때때로 이렇게 내가 읽은 책들이 다르게 언급되는 경우가 있어서 마치 읽어본 적 없는 책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을 좀 꼼꼼하게 읽어야 할 텐데 매번 반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그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하는 고백이 재미있었다. 어떤 작가의 책이 잘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는데, 왜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다는 사람은 좀 편협한 것 같다. 물론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라는 묘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어떤 일화로 인해 좋아하지 않았던 하루키를 다시 보게 됐다고 한다.



여러 영화와 책, 그리고 드라마를 소개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볼 영화와 책 목록 또한 조금은 늘어났다. 작가가 궁금하게 만들며 재미있게 소개를 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읽은 것들에 대한 감상도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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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책을 판다는 건 단지 340그램어치의 종이와 잉크와 풀을 파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인생을 파는 거라고요. 책에는 사랑과 우정과 유머와 밤바다에 떠 있는 배, 그러니까 온 세상이 들어 있어요. 진짜 책에는 말이에요."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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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등교
송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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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차례 및 간략한 내용

송헌 × 밀실 연애편지 사건
여름이는 분명 잠가뒀던 사물함에서 연애편지를 발견한다. 여름이가 이래서 좋다고 말하던 편지를 쓴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밝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름이는 친구들과 함께 편지를 썼을 거라고 추정되는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위래 × 우리 수업이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는데 선생님이 오지 않았다. 반장이 교무실에 선생님을 찾으러 갔지만 역시나 돌아오지 않았고, 반장을 찾으러 간 부반장 또한 오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매점에도 갔는데, 그들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소 × 연기
'나'와 인희는 에어컨만은 정말 잘 틀어주게 해주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인희가 에어컨을 끄지 않았다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그날 담임에게 한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함께 학교로 돌아갔는데, 에어컨 앞에 벌거벗은 남자들이 모여 찬 바람을 쐬고 있는 걸 보게 된다.
차삼동 × 비공개 안건
학급 회의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아 반장 성재는 비공개 안건에 대해 말한다. 요즘 학교에서 귀신을 보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직접 목격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곤 성재는 아이들에게 떠밀려 윤희와 함께 귀신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된다.

쩌리 × 신나는 나라 이야기
'나'는 길면 반 년, 짧으면 하루 동안 사람들의 몸속에 들어가 살고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언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의 주인들은 다 우울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이번엔 왕따 중학생 신나라의 몸에 들어아게 됐는데, 알고 보니 신나라는 직전에 몸에 머물렀던 남자의 딸이었다. 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나는 신나라의 인생을 좀 편안하게 해주고자 왕따시키는 아이를 골려주기로 작정했다.
한유 × 신의 사탕
시골 학교에 전학 온 케이는 사흘째 되던 날, 앞자리에 앉은 봉봉의 뒤통수에서 얼굴이 나오는 걸 보고 기절할 뻔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교 학생들, 선생님들까지 뒤통수 얼굴을 프랑이라고 부르며 좋아하고 있었다. 정작 몸 주인인 봉봉은 괴롭히면서 말이다. 프랑은 반대로 된 몸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관절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뒤집는 거사를 치른다.

손장훈 × 고딩 연애 수사 전선
서지아는 남자 사람 친구인 조재석에게서 짝사랑하는 권민아의 썸남이 누군지 알아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영 들어주고 싶지 않았지만, 오랜 친구의 부탁으로 서지아는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송이문 × 11월의 마지막 경기
시골 고등학교 축구부 부원이었던 장이 산속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 일이 있기 전, 재단 이사장의 친척이라며 새로 온 코치가 캄보디아 혼혈인 장을 갖은 방식으로 괴롭혔기에 그 사달이 났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리고 얼마 뒤, 장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부탁을 하나 한다.



학교를 소재로 한 앤솔러지는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신선했다. 나름 평범하게 연애 수사물도 있었고, 사물함을 밀실로 여기며 추리를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종말물에 버금가는 이야기와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 SF 장르, 나중엔 민간신앙과 결합된 섬뜩한 복수물까지 있었다. 학교를 소재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는 것에 책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왕따 여중생의 몸에 들어간 주인공이 복수를 다짐하는 <신나는 신나라 이야기>는 통쾌했다. 안타깝게도 처음부터 반란을 꿈꿀 수는 없었지만, 나름 머리를 쓰고 몸도 쓰면서 열과 성을 다해 복수를 하는 과정이 좋았다. 분위기가 밝은 이야기는 이 단편과 <밀실 연애편지 사건>, <고딩 연애 수사 전선>뿐이었기에 귀한 유쾌함이 돋보였다.
읽으면서 섬뜩했던 작품이 많았다. <우리>는 교실 밖을 나가기만 하면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였는데,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밝혀진 후에 이어진 마지막 장면이 소름 돋게 무서웠다. <신의 사탕>은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 결말이 앞날을 예상할 수 있어서 섬뜩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시작부터 씁쓸했는데, 마지막엔 공포 장르라는 걸 일깨우며 무서움에 떨게 만들었다. 이런 걸 보면 학교는 공포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적에도 무시무시한 괴담 같은 게 학교마다 있었으니 말이다.

짧은 이야기들이라 가볍게 읽기 좋았고, 단편마다 장르가 달라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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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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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함께했던 아내 미리엄이 1년 전 세상을 떠난 뒤, 아서 페퍼는 자신만의 동굴에 머물며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미리엄이 살아있을 때 지켰던 하루 일과를 매일 반복하며, 아내가 멋지다고 했던 옷을 그대로 입는다. 이웃 버나뎃이 아서를 걱정해 음식을 만들어 찾아와도 그는 집에 없는 척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들 댄은 호주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어서 마음만큼이나 몸이 멀고, 딸 루시는 근처에 있지만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는 이제 미리엄의 유품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물건을 차근차근 살펴보게 됐다. 혹시나 싶어 부츠 안쪽을 살펴보던 그는 모양이 제각각인 참이 여러 개 달린 팔찌를 발견한다. 아내가 그 팔찌를 찬 걸 본 적이 없었던 아서는 코끼리 모양의 참을 살펴보다가 이름과 전화번호로 보이는 글자를 발견하고 연락을 해본다.
그 일을 시작으로 아서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미리엄의 과거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4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아서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공허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는 옛날 아버지 상에 가까운 인물이었기에 자식들과 상실의 슬픔을 나누기엔 좀 서툰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웃들과도 친밀하게 지내지 않았기에 더욱 쓸쓸하게만 보였다.

그런 그가 아내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팔찌를 발견하게 되면서 69세 나이에 엄청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모험의 시작은 전화를 건 것에서부터였다. 알고 보니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인도에 사는 메라라는 남자였다. 그는 미리엄이 자신과 여동생들의 보모였다고 하면서 그녀를 추억했다. 메라에게서 얻은 단서를 통해 아서는 호랑이를 키우는 그레이스톡 경을 만나기 위해 떠났고, 그레이스톡의 부인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프랑스 작가 프랑소와즈 드 쇼펑을 찾았다. 이후엔 파리로 떠나 미리엄과 가깝게 지냈다던 웨딩 부티크 주인 실비, 소니 야들리 등 여러 사람을 만났다.
자신이 알고 있던 미리엄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아서는 점점 더 괴로워졌다.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러다 재미없는 자신으로 인해 아내의 인생이 덩달아 재미가 없어진 건 아닐까 괴로워졌다. 미리엄은 속인 게 아니라 그저 말하지 않은 것뿐이었는데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아서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고통스러워졌다. 그 모습을 보며 기껏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온 아서가 이제는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잘 버티는 듯싶던 아서는 한차례 큰 위기를 겪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모든 걸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미리엄이 떠난 뒤 늘 혼자였던 아서가 모험을 시작한 이후 혼자가 아니게 됐다. 한결같이 아서의 집 문을 두드리던 버나뎃은 아들 네이단과 함께 그의 첫 여행의 일정 부분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길에서 만난 마이크와 개 루시는 아서가 위험에 빠졌을 때 큰 도움을 줬다. 그리고 소원했던 딸 루시와의 관계가 대화를 통해 해소되면서 두 부녀는 파리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호주에 있는 아들 댄이 아버지를 보기 위해 오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소소하지만 따뜻하게 풀어지면서 이제는 70살이 된 아서의 앞날을 더욱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고, 알지 못했던 과거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아서의 모습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어서 마지막이 참 흐뭇했다.

고지식한 외톨이 노인 아서 페퍼의 여행기가 참 유쾌했다. 노인에겐 버거울 때도 있었고 곤란한 일들도 있었지만, 아서는 주변 사람들의 좋은 말과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냈다. 그 과정이 소소하지만 기분을 좋게 만들어서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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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는 손에 쥔 팔찌를 달그락거렸다. 이제 코끼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참들은? 미리엄이 인도에서 살았다는 것도 알지 못했는데, 다른 참들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 P34

"아내를 잘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것들, 내가 아는 걸 원치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이런 것들을 비밀로 간직했다면, 또 뭘 감췄을까? 나한테 신의는 지켰을까? 나 때문에 아내가 따분하게 살진 않았을까? 아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내가 못하게 했을까?" - P216

"아버지의 삶을 보세요. 어머니가 어떻게 웃고 있는지, 아버지가 어떻게 웃고 있는지 한번 보시라고요. 두 분은 서로를 위해 태어났어요. 아버진 행복했어요. 호랑이도 없었고, 형편없는 시들도 없었고, 파리에서 쇼핑을 한 적도 없었죠. 낯선 나라로 여행을 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두 분이 함께한 삶이 있잖아요." - P38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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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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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 조지, 피트, 짐과 함께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며 돌아다닌다. 알렉스는 나쁜 짓을 하도 많이 하고 돌아다녀서 소년원에도 다녀왔고,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그의 부모는 내킬 때만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꾸지람조차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알렉스는 거침없이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 마약을 탄 음료를 마시고, 여자를 강간하고, 길을 걷는 행인을 폭행하고, 남의 집을 터는 등의 갖은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던 중 친구들의 낌새가 이상했던 어느 날, 혼자 고양이를 키우는 노부인의 집을 털게 된다. 바깥에서 망을 보던 친구들이 도와줄 줄 알았지만 경찰이 도착하자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알렉스만 붙잡혔다. 더욱이 노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알렉스는 14년 형을 받아 소년원이 아닌 일반 교도소를 가게 된다.
2년이 지난 후, 알렉스는 교화된 척하며 성실히 지내고 있다. 그러다 갱생 요법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는 피실험체가 되어 사회로 나가 빨리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다.



7년쯤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된 이유는 몇 달 전에 본 영화 때문이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본 후 내가 기억하는 결말과 다른 것 같아 다시 찾아 읽었다.
재독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책 역시 처음 읽는 듯한 낯선 느낌이 있었다. 영화를 본 덕분에 완전히 새롭지는 않았으나 이런 부분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나쁜 짓을 일삼던 알렉스는 너무나 순수한 악 그 자체처럼 보였다. 선함, 착함이라고는 피에 단 한 방울도 없는 것 같은 순수한 악인이었다. 죄책감이나 양심 따위가 전혀 없었으니 그런 짓을 저지른 거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쁘기만 했다. 저렇게 악만 가득한 인간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즘 지칭되는 말로 정의하자면 알렉스는 사이코패스였던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알렉스는 클래식에 대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는 면모를 보였다. 악인과 클래식이라니 이다지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다 알렉스가 14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뒤 '루도비코 요법'의 피실험체가 되면서 강제적 갱생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소설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나쁜 짓을 하는 건 그야말로 나쁜 것이니 강제적으로 억제를 했다. 나쁜 짓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구역질이 나고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게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나쁜 인간들을 이런 식으로 교화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도둑질, 성폭행 등의 온갖 악행이 사라지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마다 신체적인 고통을 겪게 만들면 그걸 과연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악한 의지를 가진 인간을 억제해 선하지는 않더라도 나쁜 짓을 못 하게 만드는 것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장난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에 나쁜 인간들이 워낙에 많아서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일단 악행을 저질렀을 때부터 그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니 자유의지 따위는 가져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이후 소설은 억지로 갱생된 알렉스가 사회에 나와 온갖 일을 겪는 과정을 통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비굴하게 굽신대며 착한 척하고 있는 걸 보니 꼴좋다 싶다가도 그 모습마저 역겨울 때가 있었다.
그리고선 자유의지를 찾아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뒤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토록 갈망하던 악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과거의 철없는 한때였다고 치부하는 끝을 맺었다. 그걸 청춘의 한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알렉스를 보며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는 그저 보란 듯이 잘 살아가는 친구들과는 달리 인생을 낭비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 싫었을 뿐 선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이다.

책을 다시 읽으니 새로운 게 보이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어 좋다. 세계문학은 특히 여러 번 읽을수록 좋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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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간이 착하다면 그건 지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난 그런 기쁨을 방해할 생각이 없어. 그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야. 난 그 반대쪽을 더 두둔하겠지만 말이야. 더욱이 악이란 자기 자신이 유일한 존재, 즉 혼자로서의 너 또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고, 이때 자아란 하날님 또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그건 신의 커다란 자랑거리이자 기쁨인 거야. - P51

"저 애에게는 진정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기 이익,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모독하는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된 거죠. 그게 진심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쟤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더 이상은 아니지요." - P150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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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풀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권도희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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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리버풀의 어느 동네 '페이스풀 플레이스'에 사는 19살 프랭크와 로지는 함께 이곳을 떠나 잉글랜드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계획했다. 여기에 계속 살다가는 부모, 형제, 이웃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될 것 같다는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눌려 억압된 생활을 하는 로지와 변변한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서 술만 마시면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프랭크의 아버지로 인해 가족들에게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날짜와 시간, 만날 장소까지 정했지만, 로지는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는 프랭크는 혼자서라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배신감을 안고 페이스풀 플레이스를 떠났다.

22년 뒤.
형사가 된 프랭크는 올리비아와 결혼 후 딸 홀리를 낳았고, 이혼 후에 종종 딸과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족 중 유일하게 막냇동생 재키와 연락을 하고 있었다.
홀리와 함께 주말을 보내기 위해 집에 도착한 프랭크는 음성 메시지가 다섯 통이나 와 있는 걸 보게 된다. 재키는 집 전화로만 통화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연락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재키에게 전화를 한 프랭크는 22년 전 자신과 함께 떠나려고 했던 로지의 여행 가방이 이제서야 발견되었다고 했다. 프랭크는 로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페이스풀 플레이스로 향한다.




19살 때의 프랭크는 첫사랑 로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했다. 그런 그녀와 함께 떠나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아 어마어마한 배신감에 휩싸였다. 결국 혼자서라도 떠나는 선택을 했지만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프랭크는 왜 로지가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한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로지의 가방이 발견됐다는 재키의 말에 22년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페이스풀 플레이스로 향했다. 그것도 너무나 사랑하는 딸 홀리를 다시 엄마에게로 돌려보내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프랭크가 돌아간 집에서 만난 가족들은 여전했다. 오래전에 집을 떠나게 만든 아버지는 이제는 노쇠해졌지만 여전히 술을 숨겨놓고 마시고 있었고, 어머니 또한 변한 게 없었다. 마음이 여린 큰누나 카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이 프랭크를 향해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는 셰이 형, 겁이 많고 다정한 케빈, 그리고 종종 만나던 재키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동네 또한 그대로였다. 프랭크가 돌아온 지 몇 분 만에 끔찍했던 이곳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정도였다.

하지만 프랭크는 로지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을 밝혀내기 위해 이 모든 걸 참아내야 했다. 가족들 앞에서 형사다운 면모를 보이며 가방을 살펴본 그는 다음 날 케빈을 데리고 가방이 발견된 16번지로 향한다. 그곳은 프랭크가 10대였을 때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처럼 사용되던 곳이었다. 형사의 촉이 발동한 프랭크는 음침한 지하를 훑어보다가 뭔가를 느끼곤 감식반에 전화를 한다. 결국 그 지하에서 로지로 추정되는 여자의 유골을 발견한다.
로지는 프랭크를 두고 떠난 게 아니었다. 두개골이 함몰됐다는 부검 결과로 인해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자신을 만나러 올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프랭크는 그녀를 위해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는데, 경찰학교 동기인 스코처가 수사에서 빠지라는 압박을 넣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게 만든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 충격을 안겼다.
다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다 그런 일이 또 생겼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애먼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쯤 되니 페이스풀 플레이스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소설은 살해됐다고 추정되는 로지 사건과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을 함께 조사하는 프랭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페이스풀 플레이스에 사는 그의 가족과 이웃, 오래전 사귀었던 친구들의 현재를 이야기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마을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어서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협소하고 희망 없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19살의 프랭크가 이해가 됐다. 가족까지도 지긋지긋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의지할 데 없는 프랭크는 떠나고 싶었던 것일 터였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늘어나서 누가 두 사건을 일으켰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프랭크가 로지와 떠나기로 계획했던 날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히면서 결국 그런 이유로 인해 이런 끔찍한 결과가 일어났다는 걸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관적인 캐릭터였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가까운 친구와 연인, 심지어는 가족들까지 말이다. 그 굴레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프랭크가 마지막엔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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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과 그 가방은 오랫동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은 이제 내게 갈고리를 걸었으니 그날 밤보다 더 많은 것을 앗아 갈 것이다. - P32

"로지가 나를 버렸어, 맨디. 완전히 짓밟아버렸지. 나로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는데 지금껏 이유도 몰라. 어딘가에 그 이유가 남아있다면 알아내고 싶어. 그게 뭐든 알고 싶고, 내가 이 상황들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해." - P107

"난 가족들과 달라요. 완전히 다르다고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이 집에서 나간 거니까. 확실하게 달라지기 위해 평생을 보냈어요." - P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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