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량한 자전거 여행 ㅣ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가출, 모험(여행)이 되다.
페리 노들먼은 ‘집/바깥/집 패턴은 어린이 문학에서 가장 보편적인 플롯이다.’라고 말한다
. (페리 노들먼,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2』, 시공주니어, 2001, p320)
실제로 그림책에서 청소년소설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동청소년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은 집을 나선다. 이는 ‘가출, 모험, 여행’과 같이 다양하게 명명될 수 있다.
가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의는 ‘18세 미만의 청소년이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집을 떠나서 24시간 이상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김향초, 『가출 청소년의 이해(누구에게 속한 아이들인가?』, 학지사 1998, p51)
우리 사회에서 가출청소년은 문제청소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만큼 ‘가출’이라는 단어에서는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비하면 ‘모험과 여행’은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이라는 비교적 긍정적 느낌의 개념이다. 물론 모험이 좀 더 위험을 무릅쓰고 과업을 해결해내는 여행이라는 데에 두 개념에도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문학작품에서는 주인공의 가출을 이후 경험하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 모험, 여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에노 료는 『클로디아의 비밀(E.L.코닉스버그, 1967)』에 등장하는 클로디아의 가출을 '모험으로서의 가출‘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의 가출이 모험 또는 여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아이들의 생활 영역에서 숲을 비롯하여 좋은 모험의 장소가 되는 자연은 멀어졌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아이들은 돈을 벌 능력이 없다. 뉴스는 흉악한 범죄 소식을 계속 전하기에 모르는 사람과의 인연을 기대하며 길을 나서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모험을, 여행을 꿈꾼다. 한국 아동문학 작품 중 위와 같은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본고에서는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2. 나와 싸우며 성장하는 여행
『불량한 자전거 여행』의 주인공 호진은 학원과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리고 회사 좀비 아빠와 함께 산다. 그는 학원에 빠진 일 때문에 엄마에게 대들다가 아빠에게 뺨을 맞는다. 그리고 부모님이 이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그래서 부모님을 걱정하고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가출을 결심한다. 하지만 호진이의 가출은 자전거 여행사를 운영하는 삼촌 덕분에 여행으로 변화한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 어떤 이동 수단을 이용 하는가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호진의 여행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정유정, 비룡소, 2007)와 제1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하이킹 걸즈』 (김혜정, 비룡소, 2008)는 모두 여행의 과정을 중심서사로 한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준호, 『하이킹 걸즈』의 은영에게는 대립관계이지만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일행이 있고, 주인공은 그들과의 갈등 과정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호진에게는 갈등관계의 일행이 없다. 여행 초반부에 호진은 삼촌에게 불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여차하면 호진을 여행에서 내보낼 권한을 갖고, 대안적 삶의 모습을 제시해주는 삼촌을 갈등관계의 일행이라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말한다
. (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4, p83~84)
하지만 자전거는 오히려 여행이 생각의 산파가 되는 것을 막는다. ‘꼼짝하지 않고 고민만 하는 건 고통이다. 빨리 아침이 오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p123)는 호진의 표현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호진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아니다. 호진의 자전거 여행은 주변의 풍경을 보며 사색에 젖을 여유는 제공하지 않지만, 자신의 몸과 철저히 부딪히는 과정에서 ‘자전거를 타는 마음 자세’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게 만든다. 호진은 가지산을 오를 때 ‘산은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나와 싸우는 거다. 내 속에 있는 나, 포기하고 싶은 나와 싸우는 거다.’(p130) 하며 마음을 다잡고, 미시령을 오르며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일등 한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몸부림친다고 일등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꼭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늦지 않게, 방해가 되지 않게 내 속도만 내면 그만이다.’(p186~187)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자전거를 타는 마음에 대한 사유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광주에서 부산을 거쳐 통일전망대까지 1100km를 12일 동안 달리는 자전거여행은 참가자 각자가 고독하게 치러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호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싸우며 성장한다. 여행의 다른 참가자들이 자전거여행에 임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영우아저씨는 알콜 중독과 싸우기 위해, 배병진 아저씨는 암 수술이라는 큰 싸움을 잘 치르기 위해 자전거여행을 한다.
보통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에 맞서 가출했다면, 부모와 싸움으로 갈등을 해소한다. 하지만 호진의 가출은 자전거여행으로 성격이 바뀌어 자신과의 싸움이 주가 된다. 호진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름대로 성장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아빠께 엄마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으라고 이야기하거나 부모님이 자전거여행을 경험하도록 계획을 세우는 모습은 호진이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부모님이 함께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것이 현실적인가, 그것이 이혼을 막는데 기여를 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호진이 자신의 몸과 부딪히고 땀 흘리는 과정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내는 모습은 서사에 있어서 참신한 시도로 다가온다.
3. 일탈이 없는 여행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내 마음대로 나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학원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시간표가 짜여 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표는 실제 경험에 앞서 존재하면서, 가능한 구체적 행위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느 시간에 행해져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행해져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오창섭, 『근대의 역습-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 홍시, 2013, p31)
호진은 여행 중에도 시간표를 갖는다. 1100km를 달리기 위해서는 매일 성실하게 목표한 거리를 채워야 한다. 다 같이 두 줄 또는 한 줄로 이동하기에 혼자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우연히 발길 닿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예기치 못한 사건을 접할 일은 없다. 호진의 여행은 일탈이 불가능하도록 틀이 견고하다. 물론 그 틀 내에서 호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을 접하고 결국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호진이 주체적인 위치에서 여행을 하였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 날 향할 목적지도, 달려야 하는 양도 호진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여행의 주체는 호진이 아니라 호진의 삼촌이다.
삼촌은 일탈을 경험해 본 인생의 선배로서 호진을 이해하고 이끌어준다. 생전 연락이 없던 조카가 불쑥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 이유를 묻지 않고 받아주고, 호진이 집을 나왔음을 알게 되고도 “네가 오고 싶어서 왔으니까 네가 가고 싶을 때 가.”라고 말한다. 또한 대화 과정에서 호진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한 부모님의 논리-"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잖아.“(p117) “사람 일이 맘대로 돼?”(p172)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호진은 ‘아빠에게는 정신 나간 놈이고, 엄마에게는 팔다리 멀쩡하면서 빈둥빈둥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인 삼촌을 자전거여행 과정에서 재발견한다. 그런 삼촌이 주체가 되는 여행이 호진에게 독이 될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여행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출하고 참가하게 된 여행에서도 자신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는 호진의 모습에서 요즘 유행하는 각종 체험캠프가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호진이 좀 더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짜여 진 프로그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행 중에도 일탈을 경험하지 못하는 호진의 모습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4. 모험이 되지 못한 여행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땀 흘리는 여행을 조명한다. “난 그저 너를 힘들게 한 것들을 잊고 땀 흘리게 해 주고 싶었어. 땀은 고민을 없애 주고 자전거는 즐겁게 땀을 흘리게 하지.” (p173~174) 라는 삼촌의 말처럼 호진은 자전거여행의 과정에서 땀을 흘리고 자신과의 싸우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탐색의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부모님께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자신의 몸과 부딪히는 새로운 형식의 여행서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에서 점점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땀 흘리는 것의 의미와 즐거움을 여행서사를 통해 자연스레 제시한 점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진이 여행 중에도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긴다. 삼촌은 호진에게 대안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해주지만, 그 존재감이 너무 크다. 호진은 삼촌의 여행을 따라다닐 뿐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달리고 싶은 속도로 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시작은 가출이었지만 땀 흘리고, 포기하고 싶은 자신과 싸우고, 일탈도 없이 끝까지 달리는 호진의 여행은 ‘불량’하다고 명명하기에 너무 건전하다. 여행조차 짜인 프로그램에서 경험하는 호진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는 호진의 여행이 ‘모험’이라 불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의 작품과 우리의 작품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호진의 여행을 보면 『구덩이』(루이스 새커, 창비, 2008)의 스탠리의 모험이 떠오른다. 초록호수캠프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에 맞추어 구덩이를 파던 스탠리가 친구인 제로를 찾아서 탈출하듯 호진도 자신의 의지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여행이 꼭 모험으로 귀결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호진의 여행은 조금 더 모험에 가까이 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