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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시'라는 것은 그다지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본 적도 없고.철학이라는 것은 임용고사에 나올만한 교육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주장을 깊은 이해도 없이 단편적으로 외운 기억 밖에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 시인은 너무 발달한 감성 때문에 사는게 참 힘들 것 같은 안쓰러운 사람일 뿐이고. 나에게 철학자란 너무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혼미할 것 같은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들의 언어는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나는 그들의 어렵고 힘든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기에는 너무나 바쁘고 지친 사람이다.
그런데 저자인 강신주씨는 내가 그들의 어려운 언어에 귀를 기울이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수준에 맞게 해석해준다. (물론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비슷한 사회현상 또는 개념을 이야기한 시인과 철학자를 엮고 그들의 아주 어려운 통찰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서 제시하고 있는 친절한 책.' 이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첫번째 인상이었다.
이런 접근 방식은 강신주씨가 애용하는 방식인 듯 하다. 요즘 읽고 있는 강신주씨의 책인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도 이런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짤막한 이야기를 늘어 놓은 '단편소설집'의 느낌임에 반해 이 책은 좀 더 깊이 있게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장편소설'의 느낌이다.
절대적 교환가치를 지닌 자본주의의 신적 존재. 돈(화폐).
'돈'신의 은총을 간절히 기다리며 위험을 무릅쓰고 경건한 마음으로 도전하는 행위. '도박'
인간 허영의 전투장인 동시에 욕망의 학습장. 백화점.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구별짓기를 위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시도하는 변화. 유행.
다양하고 화려한 외적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세계에 대해 점점 냉담해지는 도시인. 그리고 그들의 권태.
이 책은 내가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작가는 '자본주의'를 '전자본주의(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와 비교해서 분석해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산업자본'의 다양한 시도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제시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이 책이 다양한 철학자와 시인과의 '깊이 있는 만남'을 매개해주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철학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이 책을 빌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뿌듯함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만의 개성,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모두 '자본주의적 사회 구조를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학습 받은 것 일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상당히 많이 불쾌해졌다.
개인의 욕망도 결국 사회에서 학습받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
내가 원하고 추구하던 것들이 결국 모두 남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에 자꾸 맴돌아 혼란스럽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해 주는 책. '몸에 병이 있다'는 진단 결과를 통보받게 한 '건강검진' 같은 느낌의 책이다. (ㅠ)
그래도 건강검진은 받아야 하는 거니까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