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깜박 도깨비 옛이야기 그림책 13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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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와 친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도깨비 방망이를 빌려서 가지고 싶은 것도 잔뜩 갖고, 도깨비감투를 쓰고 투명인간이 되어 신나게 돌아다니고 하루하루가 재미있는 일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깨비와 오래 두고 만나는 친구가 된다면 정말 좋을까? 의외로 생각을 해보지 못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 있다. 깜박깜박 도깨비(권문희, 사계절, 2014)이다

 

   부모님 없이 홀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아이가 있다. 어느 날 아이는 그 날 번 돈의 전부인 서 푼을 빌려달라고 하는 도깨비를 만난다. 도깨비가 뭐든 잘 까먹는다는 것 때문에 망설여졌지만 아이는 겁이 나서 돈을 빌려준다. 하지만 도깨비는 돈을 빌렸다는 것이 아닌 돈을 갚았다는 것을 까먹고 매일 서 푼의 돈을 갚으러 온다. 아이는 매번 어제 갚았잖아!”를 외치지만 도깨비는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찾아온다. 한 술 더 떠서 아이의 집에 있는 낡은 냄비를 보고 저런 것을 어떻게 쓰냐고 매일 서 푼과 요술 냄비를 가져오고, 또 아이의 낡은 다듬잇방망이를 보고나서는 도깨비 방망이까지 추가한다. 시간이 지나고 도깨비는 재산을 헤프게 써서 하늘나라로 벌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울며 찾아온다. 아이는 준 것들을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려 했지만 도깨비는 틈을 주지 않고 돈을 못 갚아서 미안해.”라 하며 떠난다. 어른이 되어 행복하게 살던 아이는 도깨비야, 도깨비야.”하며 세상을 떠난다.

 

   돈을 갚은 것을 잊고 계속해서 돈을 가져오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구전설화는 전라, 강원등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주인공이 건망증이 있는 도깨비 덕분에 부자가 되지만, 곧 귀찮아져 도깨비가 싫어하는 일을 해서 더 이상 찾아오지 못하게 한다.’는 서사를 공통으로 한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도깨비를 쫓아내기 위해 도깨비의 약점을 물어보고, 도깨비에게는 자신의 약점을 돈이라 말한다. 이에 도깨비는 자신의 약점을 공격한 주인공에게 복수한답시고 돈을 잔뜩 던져주고 간다. 세상물정에 밝은 주인공이 기지를 발휘하여 잘 살게 되는 이 이야기는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꾀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다만 주인공이 자신을 도와준 도깨비에게 너무 비정한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깜박깜박 도깨비는 구전설화와는 성격이 다른 도깨비와 주인공을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깜박깜박 도깨비는 주인공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매일 서 푼의 돈을 갚는 것과 별도로 아이의 낡은 물건들을 보고 요술냄비와 도깨비방망이를 선물로 가져온다. 반면 깜박깜박 도깨비의 주인공은 착하고 어수룩한 성격으로 좀처럼 도깨비의 선물을 쓸 줄 모른다. 도깨비가 준 돈과 요술냄비와 도깨비방망이이면 집도 세간도 으리으리하게 갖출 수 있을 텐데 아이는 그것들을 별로 사용하지도 팔지도 않는다. 이러한 설정 때문에 요술냄비와 도깨비 방망이도 마법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방에만 쌓여 있다. 어쩌면 옛이야기의 환상성과 흥미가 반감될 수도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반가운 표정으로 아이를 찾아와서 선물을 건네는 도깨비와 도깨비의 선물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이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구전설화의 주인공들처럼 도깨비를 재산을 늘리는데 적극 활용하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친구를 얻는다. 매일 밤 돈을 갚았다 안 갚았다 실랑이를 하는 것이 전부인 관계이지만 부모님 없이 외딴 곳에 혼자 살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던 아이에게 도깨비는 많은 의지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가 통념을 깨고 도깨비를 인간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그려낸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도깨비는 피부색이나 생김새에서 인간과 뚜렷이 구별된다. 하지만 한국의 도깨비는 일본과 중국의 도깨비와는 달리 그 형상이 단순히 규정되어있지 않아서, 다양한 형태로 묘사될 수 있다. 어린아이 같은 외모에 표정변화가 귀여운 도깨비의 모습은 아이와 도깨비가 친구가 되는 서사가 자연스러울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서사의 진행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왕 도깨비와 주인공을 친구로 그리기로 했다면 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어라, 얘 좀 봐? 어제 꿨는데 어떻게 어제 갚아?”라는 말로 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도깨비와 추억이 많은 친구가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도와줄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벌을 받으러간 도깨비, “도깨비야. 도깨비야.”하면서 죽었다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 둘의 관계에 살짝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주인공 역시 도깨비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었다면 아이들이 이들의 관계에 좀 더 몰입하고 우정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 내려오며 다듬어진 옛이야기는 그 나름의 완결성과 가치를 갖는다. 더 이상 구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금 시대에 이야기를 다듬어 들려주는 역할은 전문 이야기꾼인 작가가 담당한다. 뉴스를 통해 일상적으로 비정한 사건을 접하게 되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주는 것이 좋을까. 꾀를 내어 부자가 되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비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옛이야기를 진심으로 관계 맺어나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야기로 재화한 깜박깜박 도깨비에서 옛이야기를 시대에 맞게 다듬어서 펼쳐보이고자 한 이야기꾼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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