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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 2010 새로고침판 ㅣ 자꾸자꾸 빛나는 1
이상석 지음, 박재동 그림 / 양철북 / 2010년 11월
평점 :
이 책은 1979년 에 처음 교단에 선 후,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계속 함께 해 오신 이상석 선생님께서 교직생활을 하시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책이다. 1990년대 초반 전교조 결성의 주축으로 참여하셔서 해직되었다가 5년만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게 된 이상석 선생님. 이 책에는 선생님의 해직 이전의 교직 생활 기간 동안 아이들과 많은 사랑과 정을 나눈 이야기,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참교육을 고민하다가 전교조 결성 이유로 해직된 이야기, 해직 후 복직을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교사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받아 들었을 때는 교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교조'라는 단체의 명확한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전교조 투쟁을 하시다가 해직된 경험이 있으신 선생님의 책이라는 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는 이상석 선생님의 삶을 엿보면서 교사로서 나의 모습이 이선생님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이 느껴졌고, 자꾸만 작아지는 나의 모습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중요시 여기시는 이상석 선생님. 그만큼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교사의 권위도 내어 던지며 힘을 쓰셨고, 또한 부모와 같이 어쩌면 부모님보다도 넓고 깊은 사랑을 베푸셨다.
책에 나와 있는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하루는 창증이라는 반 아이가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신 선생님. 형사로부터 창증이가 2명의 친구와 함께 공장 창고를 털어 기계 부속 또는 고철 덩이를 리어카로 빼 내어서 함께 팔았고, 아이가 여학생과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창증이는 물건을 훔친 것은 사실이지만 동거는 절대로 아니었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이에 무언가 찜찜하셨던 선생님은 창증이와 동거하는 것으로 지목된 여학생을 직접 찾아나선다. 만난 여학생으로부터 창증이가 3달전부터 공장에서 취직을 하여 일을 하며 아버지 약값과 어머니 선물, 서울로 갈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월급을 한 푼도 못받았아서 친구 둘과 창고를 털었다는 것, 훔친 돈으로 자기에게 빵을 사주기에 고마운 마음에 창증이가 서울로 떠나는 날에 밥과 빨래를 해주려고 창증이네 집에 왔다가 집으로 들이 닥친 형사에게 오해를 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따귀를 갈기며 이름을 대라고 하는 형사가 무서워서 가짜 이름을 댔다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하신 선생님.
선생님은 창증이가 처한 어려운 가정 환경적 현실,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동거생활을 하는 아이로 생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비난을 퍼부운 형사의 태도, 아이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 등을 소재로 하여 열댓장에 달하는 탄원서를 쓴다. 그리고 너무 방대해진 탄원서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본문에 소제목을 달고, 요약서를 앞에 붙이고, 중요한 부분을 붉은 색으로 밑줄 까지 쳐서 담당 검사에게 직접 건넨다.
결국 학교에서 선도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검사는 창증이를 내보내준다. 교도소문을 나서는 온몸에서 쉰내가 나는 창증이를 데리고 함께 목욕탕을 가서 등을 밀어주신 선생님. 보통의 교사라면 엄두를 내기 힘든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를 읽으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전교조'라는 단체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교사가 교육이 지향해가야 하는 방향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해 볼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교사인 나는 '전교조'라는 단체의 성격을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 중 전교조 조합원인 분들의 사람 됨됨이를 근거로 하여 막연히 정의하고 있었다. 나는 언론 또는 교사 커뮤니티에서 마주하게 되는 말그대로 '참교사 조합원'들을 보면서 전교조를 참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고 생각한 적도, '대안도 없고 근거도 없이 교육현실에 대하여 비난만을 즐기는 조합원들'을 보며 별 볼일 없는 불만분자들이 많이 모인 단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흔히 듣는 '전교조는 현재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초기에는 참교육에 대한 기치를 높이는데 공이 컸다'는 내용을 전교조 결성 당시 부산지부 부지부장이셨던 이상석선생님의 교사로서의 삶과 고민, 해직 이후의 모습, 계속된 투쟁의 과정을 통하여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재정권이라는 시대적 배경, 입시 경쟁에서의 승리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 교육 현실에 상명하복의 공무원 문화까지 더해져 '진정한 교육의 의미'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사회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어떠한 기반도 마련되지 않았던 당시에 '교육 민주화'를 외치며 단체를 결성하여 교육에 대한 이야기의 장을 마련하였다가 직업을 잃으신 여러 선생님들. 그러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임용고사 시험을 보며 외웠던 '교사는 정치적 활동을 하면 안된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히지만 많은 것을 고민해보도록 만든다.
오랜만에 교사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성찰해 보고 싶으신 분에게 특히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