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동화 보물창고 4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섬뜩하리만큼 무서운 이러한 소재들은 ‘미디어의 홍수’라는 명칭이 적절한 요즘 세상에서 적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드라마로 포장되어 소비되고 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터져서 발생되는 냉혹하고 비참한 현실은 주인공의 뛰어난 능력을 포장해주는 ‘소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다. 재난영화 또는 전쟁영화라고 불리는 류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왠지 전쟁이 터지더라도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심지어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드라마틱한 운명의 사람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할 것만 같다.

  ‘원자폭탄’, ‘핵무기’등에 대하여서는 위와 같은 형식으로 포장되고 소비되는 이야기들은 없는 것 같다. 다른 재난들이 과도하게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음에 비하면 핵, 그리고 원자력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의 원전사태에서 보았듯 언제부터인가 ‘방사능 오염’이라는 것도 우리 생활과 그리 멀지 않은 재난이 되었다.

  언젠가 시사주간지에서 우리나라는 ‘원자력은 안전한 에너지’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쓰고 있으며 ‘원자력 재단’에서 제공하고 있는 밥 맛있고 편안한 연수 덕에 교사집단도 ‘원자력’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아이들은 원자력과 ‘핵무기’의 관련성을 스스로 연결 지을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과도하게 회자되는 다른 재난들과 ‘핵문제’는 어쩌면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재난’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그려내지도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있는 분위기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를 고려할 때 비록 외국 작품이지만 ‘원자폭탄으로 인한 무서운 방사능 피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책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이야기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롤란트의 가족이 여행을 가던 도중에 갑작스레 섬광과 돌풍을 맞이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혹시나 했던 그 섬광과 돌풍은 역시나 원자 폭탄의 폭발로 인한 것이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던 이들 가족들은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삶을 위한 사투를 시작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아끼기 위해 식량이 모자란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 물을 구하기가 어렵기에 고양이 목욕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원자병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것, 비참한 현실에 마을 사람들이 점점 매몰차지고 미쳐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식량을 훔치고 훔쳐간 사람을 죽이는 것, 사람들이 워낙 많이 죽어서 짐짝처럼 처리되는 것 등 이 책은 재난 상황에서 벌어질만한 극한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위와 같은 내용이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희망’을 그리고 있는 따뜻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롤란트는 어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시체들이 쌓여 있는 병원을 꾸준히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식량을 나누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롤란트의 어머니도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해 지하실을 하나 마련하고 아이들을 꾸준히 보살핀다. 물론 결국은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롤란트와 롤란트의 어머니가 돌보던 모든 이들, 마지막에는 롤란트의 어머니마저 죽어버리지만 그래도 작가가 극한의 상황에서 누군가를 도우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준 것을 보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또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롤란트는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살아남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가르치기까지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주인공인 롤란트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전쟁의 상처를 주로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쓰셨던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을 읽고 너무나도 커다란 충격에 빠져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한국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했던 그 이야기는 가난하고 형제들이 많은 집에서 장녀로 태어난 고등학생인가 대학생 나이의 딸을 주인공으로 한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마을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미군에게 몸을 파는 것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몸을 팔고 싶지는 않은 주인공. 그러자 굶어 죽어가는 자식들을 보다 못한 주인공의 어머니가 요란한 파마에 천박한 화장을 하고 미군들에게 몸을 팔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식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몸을 파는 것은 정말 싫은 주인공을 날이 지날수록 ‘식구 생각 안 하고 혼자만 고고하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에미가 몸 팔도록 하는 몹쓸 딸년’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 이야기의 중간에 그려진 그 어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가족’조차도 흔들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분열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롤란트의 가족에게 가족의 분열을 요구하는 가혹한 시련을 제시하지 않았고, 또한 무엇보다도 작가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힘이 충만한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다. 살아 있던 사람들도 모두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임신을 한 롤란트의 어머니. 롤란트의 어머니는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싫어서 원래 집인 프랑크푸르트로 떠나자고 막무가내로 우긴다. 프랑크푸르트는 이미 폐허가 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하여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도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이 책이 그리고 있는 희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급하게 책을 읽기 위해서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슬쩍 제목을 보더니 도서실에서 빌려봐야겠다고 한 아이가 잠시 후 돌아오더니 도서실에는 이 책이 없다고 아쉬워한다. 물론 다른 성인문학과 비교했을 때 희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매우 사실적이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내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선뜻 권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조용히 학급 문고에 꽂아 놓고 이 책을 선택할 아이를 기다리고 싶은 느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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