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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소년 다림 청소년 문학
이순원 지음 / 다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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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야 .“

그 무렵 꿈길인 듯하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소년을 불러내는 소리가 있었다 .’신비롭고 묘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소설의 이 첫 문장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줄곧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

너무 허약하게 태어나 일찍부터 죽음을 몸 가까이 의식하며 살아오던 소년은. 자신을 지켜주던 할머니의 죽음과 역시 자신을 지켜주던 명어머니의 딸 영숙의 알 수 없는 죽음을 보며 자신을 대신해서 죽었다고 괴로워합니다. 그 충격으로 소년은 삶과 죽음의 세계 속에 침잠하여 학교도 가지 않고 방황하게 되는데, 이를 걱정한 어머니는 할머니의 친척인 스님과 의논하여 소년을 절로 보내고. 스님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은 소년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학교로 돌아가 자신의 삶의 시간을 걷게 됩니다 .

 

반복해서 읽어보게 되는 서정적인 아름다운 문장들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그 중 한 문단을 옮기면,

"강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가 넘어간 저 멀리 하늘은 붉은 기운의 강을 두운령 너머에서 이쪽 세상으로 끝없이 흘러보내고 있었다.

       '아부지이 ……. 은어가 왔어요 .’

하늘과 땅의 장엄함 속에 강은 점점 붉어지다 검은 색을 띠어가고, 지는 노을 속에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은어가 뛰어 오르는 저 황홀하고도 슬픈 광경을 아이는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울며 불러도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 …….

아이는 노을이 다 스러지고 어둠이 밀려들 때까지 오래 강둑에 서 있었다.우주라는 말은 몰라도 우주 한가운데 홀로 길을 읽고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스무하루 장의 장례절차의 여러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초혼 의식에서, 소년이 삶과 죽음의 시간이 두 길처럼 나누어지는 것을 보는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습니다 .

아버지가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 할머니의 저고리를 북녘하늘을 향애 깃발처럼 흔들며 땅거미가 내리는 북쪽 하늘을 향해 ‘강하 우계댁 연일 정시 보옥!’하며 할머니의 혼을 세  외쳤다. 아버지가 다시 지붕에서 내려올 때 아버지가 몰고 온 것처럼 하늘의 어둠도 함께 내려왔다. 소년에겐 그것이 어떤 시간을 삶과 죽음의 시간으로 나누어 반은 할머니가 어둠 속의 길로 저쪽 세상으로 가져가고, 반은 아버지가 마당 아래로 가져오는 듯 보였다 .

할머니를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쪽 세상으로 몰려가는 시간과 아버지를 따라 지붕 아래로 끌려 내려오는 시간이 소년의 눈앞에서 두 길처럼 나누어졌다. 할머니가 지붕 위로 날아가는 저쪽 시간은 바람처럼 아득해 보이고 …….“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할머니를 보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작별 인사입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어께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시게. 이렇게 가고 마는가? 뭐가 바빠서 이리 서둘러 가는가?“

잘 가서 기다리시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게야. 내가 곧 따라갈 테니 …….“

수십 년을 함께 살을 붙이고 살다 헤어지는 할아버지의 이승에서의 이 마지막 작별인사는 젊잖으면서도 왜 그리 애틋하고 아름다운지요 .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답고 격조 높은 작별인사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소개되었지만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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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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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여 년 전인가 티브이 다큐를 처음 보고서 뻐꾸기를 엄청 미워했다 .

뱁새는 뻐꾸기가 자신의 둥지에 낳은 알을, 자신의 새끼인 줄 알고 부화하여 자신의 몸보다 10배나 되는 뻐꾸기를 몸이 기진할 정도로 먹이를 물어와 키우고 나면, 뻐꾸기는 어미가 보내는 신호에 따라 뒤도 안돌아 보고 어미를 따라 둥지를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오목눈이의 사랑을 읽으면서 눈물을 대여섯 번쯤 흘렸다. 그런데뻐꾸기의 모성 이야기에도 눈물을 흘렸다. 뻐꾸기의 어미는 아프리카에서 14,000km 를 오로지 새끼를 탁란하러 날아와, 붉은머리오목눈이 육분이가 키운 뻐꾸기를 데리고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바다를 건너다 힘에 부쳐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안전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뻐꾸기 어미는 먹이가 풍부한 길을 자식에게 알려주려고 늙은 몸으로서는 위험한 길을 선택하여 가다 자신의 목숨을 잃은 것이다 .   

이 소설은 붉은머리 오목눈이 육분이의 출생에서부터 시작, 성장하며 세상을 알아가고, 짝을 만나 새끼를 기르고, 철학하는 오목눈이를 만나고, 자기가 기른 뻐꾸기 앵두를 못 잊어 아프리카로 가는 긴 여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간단치 않은 삶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준다. ,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새들의 생태에 관한 지식을 알아가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이 소설을 선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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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
서진연 지음 / 답(도서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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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연 작가의 2007년 문화일보 신춘 단편소설 당선작인 붉은 나무젓가락, 3년 전에 나온 장편 수목원을 읽은 나로서는 이번에 나온 장편 시뮬라크르는 작가의 놀라운 변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시뮬라크르’라는 제목에서 예상되듯, 소설을 읽다보면 가상세계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특히 대재앙 이후의 루가 나오는 세상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너무 끔찍하고 낮선 세상이어서 그런지 몰입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가상과 현실의 시공간의 모호함과 낯설음이 차차 적응이 되며 나는 어느덧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몰입되고 있었다, 오래 전에 본 영화 메트릭스가 떠올랐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회사의 에이전시의 지사장인 세영은 죽은 남편 혁을 못 잊어서 서버의 프로그램에 남편의 아바타를 만들어 자신의 아바타와 일상을 공유하며 그리움을 달랜다, 서브 속의 혁은 현실 속의 인물인 화가 완을 스쳐 지나치기도 하고, 또 다른 여인을 만나 동거도 하게 되는데, 세영은 운전 중에 이를 보고 질투심을 못 참아 하다 차량사고까지 낸다.

 

 화가 완은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다 자신과 똑 같은 트래이닝복을 입은 혁을 두 번이나 만나고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또 집으로 오는 길에서 한 소녀를 지나치며 묘한 영감을 받아 그 소녀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 소녀가 있는  배경은 소설의 끝부분인 대 재앙의 세계에서 루가 서 있는 곳이다.

 이런 일들이 실제 가능할 수 있을까? 실전을 통해서 스스로 지능을 발전시켜나간다는 바둑계를 제패한 AI(인공지능)의 출현을 보면서, 이런 일들이 정말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전,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현재 있는 공간을 스캔해서 현실과 똑 같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으로 홀로그램을 불러들이는 기술인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더욱 발전해서 생명공학과 연결하여 자신의 아바타를 통하지 않고도 실제와 똑 같은 느낌으로 서버에 심긴 아바타를 3D로 불러와 현실 속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면, 이 소설에서처럼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정말 모호해질 날이 오지 않을까? 장차 신이나 인간이 아닌 AI의 시선을 느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고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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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8
서진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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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지방 여행부분이 길어서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티브이 화면에서 우연히 본 수목원이 눈에 익어 찾아본 15년 전의 사진에서, 같은 배경 앞에 있는 스무 살의 나를 보면서 잊고 있었던 첫사랑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히데오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중저가 브랜드의 여성복 회사의 과장인 이수는 입사동기인 유부남인 재영과 원할 때마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한다. 이제 이수는 재영의 피부 감촉과 아직 탄탄한 다리근육과, 서서히 탄력을 잃어가는 허벅지 안쪽 살까지 너무 잘 안다. 그렇게 편하게 섹스에 몰입하는 사이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 재영과의 관계로 자신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 이수는, 재영이 새로 들어온 자신의 부하직원인 차 대리와 비록 업무적이긴 하지만 그 관계가 긴밀해지고 견고해지는 보면서 불안을 느끼고 초조해한다.

재영이 연애시절부터 결혼까지 이수가 옆에서 보아온 재영의 아내가 만삭의 몸으로 찾아와 울면서 재영과 차 대리와 사이를 의심하며 이수에게 둘의 관계를 알아봐달라고 하고 돌아간다. 재영의 아내가 의심스럽다고 조목조목 얘기했던 부분들은 모두 이수 자신의 흔적들이었다. 이수는 더욱 괴로워져 폭음을 하고 만취하여 의식을 잃기도 한다. 이수는 히데오와 자주 가던 라멘집이 생각나서 찾아갔던 일식집에 자주 들리게 되면서, 음식을 직접 만드는 사십대 중반의 주인과 친하게 되고, 그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는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고배지진 때 그곳에 있었다는 그는, 어떤 허위나 가식이 끼어들 틈이 없는 순순한 미소,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쓸쓸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잘 어울리는 웃음을 웃는 남자였다. 그에게도 말 못할 상처가 있다.

이수는 재영을 떠나려 하나 재영은 이수를 쉽게 놓아 주지 않으려 한다. 이수는 휴가원을 던지고 남쪽 바닷가로 여행하면서 히데오와의 추억에 잠긴다. 이수는 고교 2년 때 어머니가 한국식 주점을 하는 일본으로 건너가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3년 동안 히데오를 거의 매일 만났다. 둘 사이에 실수로 아기가 들어섰지만 이수는 기뻐했다. 그러나 히데오는 기뻐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살던 헤데오는 8살 때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겼었고, 히데오의 어머니는 그 휴유증으로 일본에서 돌아온 지 4년 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죽었다. 히데오는 자신도 방사능으로 일찍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이수는 이런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이는 태어나자 곧바로 죽었다. 그녀는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히데오를 괴롭혔다. 히데오도 엄마도 지쳐갔다. 이수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히데오는 잠시만 쉬다 오라고 했었다. 이수는 사직서를 회사로 보내고 일본으로 간다.

엄마로부터 히데오의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이수를 한 번 보고 싶어 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난다, “히데오는 잘 있죠?” “그럼 잘 있고말고.” 두 사람은 묻고 답하고, 히데오의 아버지는 이수를 데리고 히데오에게 가면서 히데오의 이야기를 해준다. 수목원을 지나 산사에 이른다. 눈 쌓인 숲 한 나무 앞에 히데오는 딸 리에의 유골과 함께 같은 단지에 묻혀 있었다. 그는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이수와 헤어지려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히데오와 리에를 묻은 곳 위에 쌓인 눈을 헤치자 두 나무의 밑둥으로 연결된 뿌리가 뒤엉켜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나가 된 뿌리 위에 손을 얹는다. 이수는 당분간 일본에 머물며 그와의 추억이 있던 곳을 다니며 그와 리에를 충분히 기억하고 사랑하려 한다. 연리목처럼 하나가 되려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더하는 것이 적지 않은 분량이 나오는 일식집 마츠리에서의 이야기다. ‘그릇을 들어 아직도 따뜻한 국물까지 훌훌 들어마셨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무장해제되는 기분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그 분위기가 참 좋다. 사람 사이에 훈훈한 정이 흐르고 위로를 받는다.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나는 입에 군침이 돌았고 당장 그런 일식집에 가서 음식을 즐기고 인정을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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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여인
이순원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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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령’과 ‘그대 정동진에 가면’을 읽으면서부터 이순원 선생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 속 젊은 남녀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설레임과 안타까움, 애틋한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있다. 그리고 문득, 어느덧 흘려보내버린 아득한 세월 속 우리의 순정한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며칠 전 주문했던 삿포로의 여인을 받고서 점심을 먹자마자 곧바로 책을 잡았다. 이야기가 마무리로 향하는 기점인, ‘주호가 몰랐던 연희(삿포로 여인)’의 장에서부터 눈이 젖기 시작하더니, 새벽 4시가 넘어 책을 덮을 즈음엔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1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심하게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나는 한동안 나의  과거 속 순정한 시간 속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특히 아래의 문장에서 줄을 긋고 싶어졌다.

그는 가만히 술잔을 들어 허공을 지나가는 맑은 바람과 잔을 부딪쳤다.
오래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
잘 지내고 있니?
그는 혼잣소리로 연희에게 말했다. 그리고 방금 지나간 별똥별처럼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연희가 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연락되면 그때는 예전에 연희가 보낸 편지에 대해 꼭 답장할 것이다. 먼저 대관령에서 헤어질 때까지 포함해 그건 미옥이가 장난으로 바꾼 편지가 아니라 자신이 받고도 아직 답장하지 못한 편지였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시간 또한 맑게 흘러 다시 서로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이번엔 자신이 먼저 그 시절 연희처럼 그곳이 삿포로든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내가 가는 길 네가 시간을 좀 내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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