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H.M. - 기억을 절제당한 한 남자와 뇌과학계의 영토전쟁
루크 디트리치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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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자 H.M.(루크 디트리치 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이며 다른 어떤 종의 생명체도 해내지 못한 문명을 이루어 지구라는 별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게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1.3Kg에 불과한 인간의 장기인 두뇌 덕분이며 그 중에도 일등공신은 ’대뇌피질‘이라고 생각해왔다. 인류학으로 유명한 이상희 박사가 저술한 ’인류의 기원‘에 따르면 인류의 두뇌 용량이 급격히 커진 시기는 사냥기술의 발달로 대량의 단백질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때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각설하고, 이처럼 위대한 존재로 부각된 인간의 두뇌에 만일 이상이 생겨 인간답게 살기 어렵게 된다면 어찌 될까. 환자 H.M.을 통해 저자는 영화 ’메멘토‘의 직접적인 제작 동기이기도 했던 기억 상실증에 관한 흥미로운 그러나 심지어는 기괴하고 비참할 수도 있는, 그늘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의학계의 두뇌연구 역사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날 우리는 책상에 앉아 가벼운 손놀림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만 하면 두뇌의 어느 특정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대략적이나마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그러한 정보가 어떠한 경로로 시각화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본 본 적은 없었다. 지도를 만들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아야 했던 시절처럼, 저자의 외할아버지도 그와 같은 탐험가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오늘날 두뇌에 관하여 알려진 많은 사실들을 밝혀내는데 일조하였음은 분명하다. 탁월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그가 이룩한 뇌엽부분절제술과 정신질환 연구 분야에 관한 발전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의학적 진보이자 업적이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고 전기 자극을 주어 반응 현상을 관찰 기록한다거나 두뇌의 일부를 제거해가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 또는 치료하려면 직접적인 병변, 즉 문제가 되는 두뇌 일부분을 제거해야한다고 확신하기에 이른 저자의 외할아버지는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기억을 주관하는 해마와 편도체를 포함한 내측두엽의 상당부분을 흡입기로 제거하였고 수술 후 봉합부위를 클립으로 마무리해둔다. 마치 후손에게 물려주는 유산과도 같이 그의 외손자는 환자의 사후에 두개골을 열어 두뇌를 적출하면서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이 환자의 뇌는 2401개의 절편으로 분해되어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시료로 제공된다.

 

정상적인 사람이 자신의 두뇌를 열어 자신을 피실험체로 사용해도 된다고 동의할 리는 만무하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에서 그렇게 많은 정신병 환자가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지만,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립 정신병원, 일명 생활회관에 수용되는 환자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신경의학 분야에서는 풍부한 실험재료가 확보되어 온갖 종류의 두뇌 임상실험이 가능했으니 경제용어로 말하자면 호황을 누렸던 셈이다.

 

겨우 일곱 살 나이에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로 심한 뇌손상을 입게 된 환자 헨리 몰래슨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사고 이후 점차적으로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작을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나머지 또래보다 3년 늦게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제조업체에 취업을 하긴 했으나 아주 단순한 포장 업무에도 제품 개수를 잊어버려 생산 공정에 차질을 빚게 만들어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자신을 제어할 능력을 잃어 발작으로 인한 소란을 염려하여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도 겨우 참석만 허락받는다.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환자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독 자신의 생모에게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고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스스로도 매우 힘들어 했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이후에도 50년 가까이 외부와의 접촉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과,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미국 유수의 신경의학도들에게 살아있는 피 실험체였다.

 

아무리 좋은 학문적 또는 의학적 명분을 지녔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분명 윤리적이지 않다. 반면, 상대적으로 극소수인 환자 실험 군으로부터 얻은 결과가 전체 인류에 희망이 되고 삶에 보탬이 된다면 마땅히 이를 저지할 명분도 찾기 어렵다. 자기 집 정원사의 여덟 살 먹은 아이에게 강제로 수두 균을 접종하여 수두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제한 제너가 그러하고, 노비의 신체를 훼손하여 조음기관을 해부학적으로 파악하고 한글을 창제하여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계몽한 세종대왕이 그러하듯, 다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온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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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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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사태를 경험으로 한 번 입사하면 그곳에서 정년퇴직하는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안정적인 생계수단에 안주하며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동이 생긴 것이다. 변화하는 주변 여건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무사히 퇴근을 주문하며 나서는 직장의 개념부터 흔들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등교하기가 참 쉽지 않다. 학교가기 싫어요 그러면 엄마에게 혼나는 건 학생이나 교사나 피차일반이거든.

 

저자는 일이란 사회의 일원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입장권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구해야 하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최소한 이 입장권만은 꼭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입장권을 획득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과 공평하지 못한 평가를 시작으로 입장권을 손에 넣지 못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저자의 말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지닐수록 우리 학교에 미치는 반향은 더욱 더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입장권을 학생들 모두가 마련하지는 못하는 현실이거든.

 

저자는 일본 역시 일하기를 원하는데도 취업을 못하는 현 상황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년 실업률은 높아만 가는데 그들의 높아진 눈이 문제인지 아니면 높아진 취업 스펙이나 문턱이 문제인지 사회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자격증이나 기술도 없이 취업문제에 맞닥뜨려야 하는 처지가 가장 애처롭다. 이들에게 학교생활기록부의 종합의견란은 곧 교사의 고졸사원 취업 추천서일 수 있음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학력 사회 모델 대신 뜨고 있는 ‘개인 경력 모델’. 내가 모든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책임지며, 나의 활동을 조정하고 배치할 수 있으며,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청하고, 또 변화된 환경에 맞춰 즉각적으로 내 안의 프로그래밍을 바꿔 행동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인재를 지금 대학에서는 요구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대학별 등록금 액수가 오르고 있는 자료는 보았어도 고등학교에만 있어봐서 그런지 대학생들의 이러한 멀티인재 육성의 성과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을 가는 자체가 큰 일이 되어버린 우리 학생들은 꿈을 가지지는 못하고 수업 중에 자면서 꿈을 꾸기만 하고 있다. 그나마 꿈을 꾸기라도 하면 다행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 이것저것 요구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외침과 격렬한 몸짓으로 오늘도 책상위에 엎어진다. 영어 듣기평가가 영어 자장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코까지 골며 아주 숙면을 취해 주신다. 그러다 밥 먹을 시간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득달같이 식당으로 내달린다. 자고 먹고 노는데 이만한 식도락이 없고 이만한 지상낙원이 없다.

 

학이불사즉망. 저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다는 논어 말씀을 인용한다. 책을 읽되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은 외국어인 영어를 그것도 교재도 없이 맨 몸으로 앉아 필기고 뭐고 두 팔은 축 늘어뜨린 채 다 듣고 이해하는 신공을 펼쳐 보인다. 아무리 봐도 이만큼 영악하고 똑똑한 학생들은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에만 존재하지 싶다. 물론 공부 안하고도 실망하지 말라는 뜻에서 시험문제 수준을 고려해주는 편이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보면 정치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정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폭넓은 사회관계를 맺는 것이 곧 각성과 깨달음으로 이어짐을 아이들은 벌써 알고 있었다. 굳이 대학까지 가지 않아도 대학교육을 접하지 않아도 정치는 곧 생활임을 피부로 느껴 배우는 영특한 아이들이다. 다만 대학에서 공부의 길을 잘 찾아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새로운 배움의 계기, 각성과 깨달음의 계기를 얻는데 도움이 될 독서와 인문지식이 현재로서는 많이 부족할 따름이다. 부족하면 좀 어떠한가 당장의 생활에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된다고. 머리아프게 책 들여다 볼 시간은 없어도 햄버거집 알바나 피씨방에서 롤이나 오버와치에 기꺼이 투자할 시간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이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건물 옥상에 모여 불로장생의 지름길이라는 식후 연초를 실천에 옮기는 근면성실함 마저도 지녔다.

 

그렇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을 참 잘도 지키며 학교 환경에 훌륭히 적응하고 있던 것이었다. 오히려 졸업 후 학교로 찾아와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일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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