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교육 경제학인가 EBS 교육인사이트
김희삼 지음 / EBS 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교육 현실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개천에서 용 나오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다만 용쓸 뿐이며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농담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최근 교육계에 닥친 변화의 추세보다 앞으로 더욱더 빠르고 폭넓게 다가올 변화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교육을 왜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공감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 그럼 과연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바라볼 것인가? GIST 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우리의 교육 문제를 효율성, 형평성, 타당성의 세 가지 기준에서 교육의 현주소와 필요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그는 그가 가르쳤던 <교육의 경제학> 수업과 지식 채널 EBS강의에서 진행했던 내용 위에 완전히 새롭고 종합적인 자료와 깊이 있는 성찰을 제시한다.

 

똑똑한 전문가가 입시제도를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이익을 추구한다. (33)


이 책은 전체 411장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교육이라는 자원이 배분되는 과정을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장 낮은 비중의 타당성을 지닌 현행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육 시스템에 대한 탈출, 개혁, 무시, 순응의 대응 방식 가운데 대다수가 순응의 태도를 보이는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독자들이 개혁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공감해주기 바란다는 저작 목표를 밝히고 있다.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2부에서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기준을 토대로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현 교육의 주소를 돌아본다. 고도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주었던 산업화 시대 교육의 순기능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보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비효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계층의 대물림 현상을 공고히 하며 사회 이동성을 방해하는 교육 사다리의 부재를 지적하는 동시에 태반의 학생들이 엎드려 자는 붕괴된 교실의 회복 방법을 찾는다.

교육 현장에서 희망의 싹을 찾아보는 3부는 사실상 가장 신랄한 자아비판의 연속이다. 공교육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사교육 한계 효용 법칙과 각자도생의 사회상을 언급하면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호혜적 상호 의존 방법을 모색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의 자국 고등학교 이미지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으로 인식한다는 결과는 충격적인 수준을 넘어 우울감마저 들게 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학령인구 급감과 인공 지능 도입의 기술 급변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아 위기를 타고 넘어갈 방법을 모색한다. 지금까지는 사회 변화의 속도에 둔감해도 별일 없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초저출산과 급고령화 등의 변수를 맞아 과거 어느 때 보다 급격한 디지털 환경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한다.

 

가정 배경의 차이에 따른 교육 불평등은 취업 후 노동시장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되고

곧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으로 연결된다. 그러면 그 세대가 부모가 된 후에 

그다음 세대의 양육 및 교육 환경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앞 세대의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108)

 


1980년대 25% 정도에 불과했던 대학 진학률은 최근 80%까지 올랐으며, 전국 70여 개뿐이던 대학의 숫자가 최대 세 배에 이르기도 했다. 고등교육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은 1996109개에서 2013156개까지 늘었다. 예전 같으면 대학 입학의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를 인구가 낮은 성적으로도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대학생 인구의 양적 팽창은 곧 대학 경쟁력과 질적 저하의 원인이 된다. 소위 명문이라 불리던 상위권 대학들의 경쟁률은 여전히 높게 유지돼오던 편이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학령인구가 대폭 줄어들고 경영이 부실한 대학이 정리되면서 대학마다 수능 최저요건을 완화하여 입학생 수를 보전하려는 추세가 뚜렷하다.

 

우열을 가리지 않고 참가 자체를 높이 평가했던 반경쟁 교육 관행이 

학생들의 자기 우월감을 과도하게 부풀려 오히려 비협력적이고 

비호혜적인 개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281)



일부 학생들의 적성이나 취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대학을 가고 보자는 생각은 곧 사상 최고의 진학률로 이어졌다. 그 결과, 고등교육이 양적으로는 팽창해도 질적으로는 내실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서 대졸자가 자기 전공 분야와 맞지 않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비율이 50%에 이른다. 이러한 교육의 고비용 저효율 현상은 졸업 이후의 노동 현장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 취업자들은 긴 노동시간에 비해 매우 낮은 노동생산성을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 분야가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조금만 개선되더라도 우리네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지리란 점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여전히 입시만 있고 4차 산업혁명은 없다는 

우리 학교 현장의 현실은 오래갈 수 없는 상황이다. (381)

 


결국, 저자는 교육의 변화를 실현할 교육행정과 교육재정 그리고 환경교육과 같은 교육사회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지 못한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한국의 경제와 사회의 현실로 다가올 우리 교육을 평가해보려 시도한 데에 이 책의 의의를 두고 있다. 급변하는 미래 시대에 적응하고 다수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내기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고된 작업임이 분명하다. 결함투성이의 현재 교육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희망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정확히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교육경제학 #왜지금교육경제학인가 #교육현실 #교육문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지금 교육 경제학인가 EBS 교육인사이트
김희삼 지음 / EBS 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먼저 인식하는 것. 우리 교육 문제의 현주소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길라잡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과학 대처법 - 유사과학,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는 똑똑한 회의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스티븐 노벨라 외 지음, 이한음 옮김 / 문학수첩 / 2022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살면서 이따금 자신의 귀가 매우 얇다거나 팔랑귀라는 힐난을 듣는다. 남의 말에 혹해서 곧잘 속아 넘어가거나 근거 없는 소문, 광고, 정보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 결과 종종 금전적 손해를 비롯한 사기를 당하거나 사람을 잃기도 하고, 자기 소신을 믿는다며 고집을 부리다가 제 꾀에 넘어가기도 한다. 심지어 우리 주위에 매우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이상한 믿음에 자신을 가두거나 자발적으로 합리적 의심을 거두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대체 왜 이런 걸까? 우리에게는 각자 신성한 소(sacred cow), 비논리적으로 맹신하며 반대되는 어떤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의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은 누구나 이러한 영역을 지녔으면서도 자신은 항상 옳으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려 들지 않는 성질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제안하는 강력한 해법은 회의론자들과 맹신자들 사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고 거기서 새로이 연관성을 찾는 것이며, 저자들은 그들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가는 길을 찾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과학은 논리 및 철학과 결합되어 있다. 논리와 철학은 적어도 내부 모순이 전혀 없음이 확실해질 때까지 무언가를 진정으로 아주 꼼꼼하게 조사하는 사고방식이다. (서문 12)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과학적 회의론 자체의 의미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며, 특히 이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각 장은 주제에 대한 짧은 설명으로 시작되며 주제를 뒷받침하기에 매우 적절한 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등의 인용구를 곁들인다. 주제별로 잘 세분된 목차를 통해 찾고자 하는 세부사항을 쉽게 확인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우리의 감각에 대한 신뢰도, 인지적 편견, 논리적 오류,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차이 등을 다룬다. 이 부분은 비판적 사고와 회의론의 핵심 기술을 다루며, 우리가 자신을 속일 수 있는 과도한 방법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사실, 책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 주제는 오류 가능 주의(틀릴 수 있는 믿음이라고 하더라도 이러저러한 기준만 만족한다면 지식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의 개념이며, 우리가 어떻게 편향되고 논리적으로 잘못된 사고에 휩쓸리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듯 이는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며, 자신을 회의론자로 자처한다고 해서 편견으로부터 면역력을 지닐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반부는 유사 저널리즘, 유사 과학이 피해를 주거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비판적 사고력의 실제 적용과 유사 과학적 아이디어와 맞닥트렸을 때 설득력 있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조언으로 끝맺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과학적 회의주의와 비판적 사고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며, 여기서 회의주의자란 과학과 비판적 사고를 옹호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선 과학적 회의론의 개념과 그 중요성에 대한 소개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만들어내거나 가지고 있는 주요한 추론과 인지적 결함인 과학 대 사이비 과학을 구별하는 문제를 탐구한다. 그런 다음 독자들이 비판적 사고 기술에 대해 배운 내용을 연습할 수 있도록 실제 사례를 제시한다. 또한, 이 주제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논리적 바탕과 사람들이 결론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며 서로 논쟁하는 방법 그리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유념해야 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한다. 세간에 비범하다고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역사적 사건들, 현존하는 일부 사이비 과학, 그리고 그러한 주장이 과학적 회의주의와 비판적 사고의 영역에서 왜 관련자들의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 있지 않은가를 말한다.



 

이 책의 어조는 매우 명확하고 읽기 쉬우며 많은 예시를 제시함으로써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도입 부분이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갈수록 더 풍부해지는 예시를 만끽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기본적인 심리학 및 과학 용어를 주제별로 펼쳐 보기 좋게 구성되었으며, 예시를 활용하여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전의 역할로도 훌륭하다. 예를 들어, 더닝-크루거 효과는 항상 명심해둘 만하다. 이 효과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빚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무능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인정하지 못한다. 이는 흔히 발견하는 전문가의 역설로, 자신의 전분 분야가 아닌 다른 모든 분야를 거의 모르는 것만큼 자신도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며, 우리가 세상을 공부하는 공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지식의 가장 강력한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안다는 착각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과학적 사고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의 현실감각이 얼마나 틀리기 쉬운지, 기억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우리가 실제로 세상을 관찰할 때 증거가 없는 한 어떤 것도 절대 고집스럽게 확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만 제외하고 영원한 것은 없으니 자신의 오래된 사고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새롭고 더 나은 증거를 접한다면 물론 생각을 바꾸는 게 좋겠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우리는 매일 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깨우친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우리는 그에 따라 시야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또한 회의적이어야 할 필요도 있다. 만약 어떤 정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엄격하게 검증되어야 하며 때로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다. 이는 연구와 과학의 모든 측면에 해당하며, 새로운 주장이 나타나더라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더 많은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또한 자신이 아는 바와 믿는 바에 대해 매우 겸손해지는 법을 배운다. 나의 세계관이 일정한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봄에 따라 나의 마음이 새로운 증거로 채워지는 순간 바보가 되는 느낌을 떨쳐내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참된 욕망은 진실을 아는 것이며, 종종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실의 기준 또한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주가 무한히 매력적이고 놀랍다는 점을 알게 되며 우리가 매일 배울 수 있는 모든 놀라운 것들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아마도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악마의 세계> 이후 비판적 사고와 회의론에 관한 최고의 책 중 하나일 것이다. 강황으로 습진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이 왜 권유 사항이 아닌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21세기에도 인간은 여전히 사이비 과학에 잘 속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이 책처럼 인간 심리의 반복적인 실수에 대한 끊임없는 폭로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복잡한 문제들을 탐색하면서 독립적인 사고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 심리학, 논리, 그리고 과학의 모든 분류를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피상적인 사고, 음모론, 사기, 오류, 가짜 뉴스 등 잘못된 정보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진실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환영할만한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다.


#자연과학 #나쁜과학대처법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과학 대처법 - 유사과학,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는 똑똑한 회의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스티븐 노벨라 외 지음, 이한음 옮김 / 문학수첩 / 2022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각자의 신성한 소(sacred cow), 즉 ‘비논리적으로 맹신하며 반대되는 어떤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의 사각지대’를 들여다보는 안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정이 필요 없는 영어 글쓰기 - 미국 최대 출판사 랜덤하우스 교열국장의
벤자민 드레이어 지음, 박소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어의 네 가지 기능 가운데 읽고 듣기는 수동적 기능으로, 쓰고 말하기는 능동적 기능으로 분류된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기능은 단연코 쓰기다. 작문이 가능해지면 나머지 기능은 거의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다. 게다가 한국어도 아닌 영어를, 취미도 아닌 생계 수단으로 작문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해당할까? 모르기는 해도 영자 신문기자, 외교관, 해외 영업직, 교수, 작가, 기업가 등 해당 직군을 다 합쳐봐야 인구의 0.05%도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제목처럼 오로지 영어 글쓰기만을, 그것도 기본 원칙부터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자처럼 출판 교열자이거나 문법학자라면, 또는 정말로 영어 자체에 관심이 많거나 작문 실력의 향상이 필요한 경우라면, 왜 이제야 세상에 나타났느냐는 애정 어린 원망을 듣기에 충분할 것 같다.


영어는 규칙적으로 쉽게 통제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 영어는 규범화 과정 없이 영국 제도에 외국인들이 발을 들일 때마다 새로운 문형과 어휘를 흡수하면서 발전했고우리 미국인들이 수백 년에 걸쳐 장난질 치며 훼손한 건 물론이다무정부 상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데, 있지도 않은 법을 강제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23)



오늘날의 영어 문법은 성, 시제, , 수 등의 문법 요소가 형제 격인 유럽 언어보다 단순해 보인다. 소유격만 해도 영어는 my, your, his/her, their, its 5개인데 비해 프랑스어는 인칭과 성, 수를 구별하여 mon, ma, mes, ton, ta, tes, son, sa, ses 9개로 세분되어있다. 그러나 영어보다 언어 규칙이 엄격한 프랑스어는 변형과 예외가 적은 편으로 문법만 놓고 보자면 영어보다 배우기 수월하다. 영어의 불규칙성이 커진 데에는 노르만족, 게르만족, 프랑크족 등의 외세가 영국 원주민 켈트족을 지배하던 당시에 끼쳤던 언어 역사적 배경이 한몫한다. 더욱더 가깝게는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미국에 정착한 개척민들의 영어가 모국으로부터의 간섭을 덜 받게 된 결과 오늘날 의미, 철자, 용례가 달라져 소통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변형되었다.

 

단어가 글을 이루는 살과 근육, 뼈대라면 문장부호는 호흡이다. (40)

 

이 책은 미국 랜덤하우스의 교열국장 벤자민 드레이어가 교열 작업 중에 발견한 작문 오류를 집대성한 것으로, 다소 익살스럽고 흥미로운 어조로 피해야 할 일반적인 철자 실수를 비롯하여 문장의 가독성과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글을 단순화하고 조이는 일을 다룬다. 그는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많은 실수와 오해들을 다루면서, 작가들이나 작품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보편적인 글쓰기 지침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글쓰기의 모든 걸 알려주겠다며 가르치려 들거나 작문법 종결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30년 교열자 경력을 통해 발견하고 축적한 다수의 오류를 제시함으로써 영어 작문이 필요한 이들에게 마땅한 도구를 제공한다. 그의 설명 방식은 교열자로서 겪었을 남모를 고생과 치열한 고민을 담은 동시에 칭찬받을 만한 재치도 겸비하고 있으며, 일방적인 비판이나 힐난이 아닌 매우 절제된 방식의 유머로 코딩되어 있다. 저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편집하고 교정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지 뽐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 또한 빠짐없이 표현하고 있다.

 

Here’s one of those grammar rules that infuriate people.

사람들을 격분시키는 문법 규칙들을 하나 알려주겠다. (120)


 

저자는 대부분 사람이 철자와 구두점은 물론 문법과 표기법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역시 문법이 싫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영어의 적절한 사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문장 구성, 구두법, 단어 선택 등의 세부사항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저자의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영어 전공자조차도 미처 몰랐던 지독하게 까다로운 내용을 다루면서도 현학적이고 답답하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저자의 어조는 전반적으로 진지하고 강렬하면서도 거의 모든 페이지에 달린 각주를 통해 경쾌하게 사안에 접근한다. 그는 글쓰기와 편집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기까지 여러 사안을 오해하기도 했으며 교열자 특유의 고집으로 작가들의 원성을 산적도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류를 바로잡으려면 아무리 말 많고 탈 많아도 교열 작업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는 천성이 타고난 교열자인 것 같다.


맞춤법, 문장부호, 문법 등의 기초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방대한 기술적 작업을 제쳐 두면, 글에 특정한 표기 원칙을 적용하는 문제는 글을 경청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경청하는 교열자란 작가의 의도를 훤히 꿰뚫어 글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작가의 목소리에 열중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141)

 


대부분 편집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매끈한 문장의 흐름, 전체적으로 잘 구성된 글이 주는 원초적 즐거움에 감동한다. 독자 취향에 따라 저자가 선호하는 교열 방식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교열자의 영혼을 갈아 넣는 지루한 작업 과정을 통해 개별 단어의 의미는 물론 철자의 뉘앙스까지 세세히 일러주는 그의 세심함에는 찬탄을 금할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철자법 차이점을 논하면서, ‘미국 회색과 영국 회색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색으로, 전자는 빛나다 못해 거의 은빛 광택이 나지만 후자는 더 무겁고, 칙칙하고, 촉촉하다고 말한다. 단어 하나에도 미국과 영국의 기후조건이 다르다는 뉘앙스를 이렇게 표현하다니.


영어에 관한 많은 재미있는 사실과 함께 문법과 문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 책은 영어 학습자들과 특히 새내기 편집자들을 위한 훌륭한 자료집이자 영어 학습 사전이다. 영어 글쓰기의 규칙을 명확하고 우아하게 정해 줄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글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글쓰기 영역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표준화된 언어 사용 규칙(규범성)과 사람들이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서술성) 사이의 간격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규칙이 있는 한편, 지켜지지 않아도 되는 규칙 역시 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입장은 영어가 불규칙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면, 영어 사용자들 역시 그렇게 해서 안 될 게 뭐냐는 그의 질문 속에 녹아있다. 기존의 문법 체계에서 어긋나더라도 절대다수가 사용하면 대세가 되었다가 언젠가는 사라지듯, 언어 역시 유기체와 닮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는 뜻으로 읽힌다.

 

맞춤법 검사기는 기막힌 발명품이지만 틀린 철자만 고쳐 줄 뿐 맥락과 무관하게 잘못 쓴 단어는 잡아내지 못한다. 교열 작업의 대부분이 이런 오류를 잡아내는 일인데, 장담컨대 최고의 작가라는 사람들도 이런 실수를 범한다. (219)


끝으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흡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굳이 내용을 선별해서 읽고픈 독자에게 조언하자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첫 세 장은 정독하시기를 권해드린다. 간결한 영문을 만드는 법과 영어 글쓰기의 원칙과 비원칙 그리고 문장부호를 사용하는 67가지 방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하기에 앞서 전체 분량과 내용의 세밀한 정도를 고려해 보시면 좋겠다. 글쓰기와 편집에 관한 지혜를 간결하게 압축했다기보다는, 저자가 수십 년 동안 교열자로서 작업했던 내용을 모아놓은 일련의 장황한 아이디어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영어 글쓰기의 기초를 다룬 20개의 목록이 유익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기는 하나, 분명한 것은 글쓰기 요령이나 스타일 또는 문법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 참고서는 아니란 점이다. 영어 글쓰기의 지침이 필요하다면, 고민하지 마시고 이 책을 곁에 두시기 바란다.

 

 

#영작문 #교정이필요없는영어글쓰기 #영작지침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