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의 산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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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0년 발표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는 인간과 문어의 훈훈한 교감을 통해 잊혀진 감성을 회복하는 감동 드라마다. 작품은 인간과 문어가 서로 정말 다를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결국 사실 닮았다!”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이 소설 바닷속의 산은 그 따스한 결말에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는다. “닮긴 뭐가 닮아?”라고 반박하면서 독자의 세계관을 통째로 흔들기 때문이다.

 

주인공 하 응우옌 박사는 베트남 깐다오 제도에서 특이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문어 집단을 조사한다. 원래 문어는 혼자 사는 외톨이에 평균 수명도 짧아 지적 발달이 어렵다. 하지만 이곳의 문어들은 복잡한 색채 패턴으로 소통하고 마치 자신만의 SNS 문화를 만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함께 하는 인물들 역시 평범한 조력자가 아니라 하 박사의 심리를 흔드는 거울들이다.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안드로이드 에브림은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인간을 비추고, 말수가 극히 적은 경비원 알탄체체그는 불편한 침묵 속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하 박사 자신도 결국 타인과의 단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깨닫는다.

 

작가는 여기에 병렬 서사 두 개를 끼워 넣어 이야기를 더 쫄깃하게 만든다. 러시아 해커 러스템과 AI가 지배하는 어선에 잡혀간 일본 청년 에이코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인간을 기계처럼 취급하는 씁쓸한 현실을 비추며,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슬쩍 꼬집는다. 다만 소설이 철학적 대화를 과하게 늘어놓아 종종 설교 같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긴장감 있는 전개가 충분히 메워준다. 특히 저자는 해양 생태 전문가답게 문어를 귀여운 바다 친구가 아니라, 우리와 완전히 다른 지성을 가진 진짜 타자로 그려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작품은 결국 인간 중심적 사고에 유쾌한 반기를 드는 소설이다.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마저 어려워 반()인격 AI를 선호하는 세상에서, 또 다른 지성체와의 연결을 갈망하는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지적한다. 문어들이 던지는 명확한 메시지 닝겐들, 우리를 방해하지 마!”는 독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정말 연결되어 있기는 해?”

 

소설은 최신작답게 기업 스파이물, 군사물, AI 스릴러 장치를 두루 활용하지만, 핵심은 결국 인간이 정말 세상의 중심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주인공들이 깨닫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두 가지 진실이다. 첫째, 개인은 절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둘째, 인류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섬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의 무대가 이라는 점은 이 메시지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작중 섬은 결국 세계의 모든 사건과 얽히고설킨 운명을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발견되는 언어를 가진 문어 사회는 인간학의 기준으로도 분명 사회다. 하지만 이들의 지각이나 개념 체계는 인간과 너무 다르다. 따라서 소설의 중심은 문어의 언어 해독이 아니라 탐욕·오만·자기기만 등 우리의 윤리적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데 있다.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 문제도 특정 개인이나 기업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작가는 문제의 원인을 전 인류의 무관심과 탐욕으로 넓히고, 책임 역시 한두 영웅이 아니라 모두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개성을 지우지도 않는다. 문어의 신경망을 비유 삼아 각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때 세상이 변화한다고 귀띔한다.

 

흥미롭게도 세 명의 주인공은 서로 만나지도 않으면서 협력해 문어 사회를 보호한다. 각자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이 불교적 세계관을 빌려 '올바른 관점(정견)''무관심'을 대비시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짜 적은 악의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난 어차피 아무것도 못해라는 체념을 가장 경계하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독자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결과적으로 공상과학 소설이라 하면 흔히 생각하듯 외계 지성체와 만나는 단순함을 넘어, 이 소설은 독자를 능글맞게 꼬드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문제작이다. 등장인물들이 자꾸만 진지한 철학적 대화로 빠지지만, 놀랍게도 재미는 끝까지 유지된다. 그래서 Scientific 대신 Speculative Fi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평을 듣는다. 결국 이 소설은 독자에게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면서도 꾸준한 책임과 관심이 없으면 언제든 다시 불행해질 수 있다고 짓궂게 경고한다. 다 읽고 나면 웃으며 책을 덮을 수는 있어도, 인류의 연결성에 관한 질문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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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의 산
레이 네일러 지음, 김항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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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fic Fiction에서 Speculative Fiction으로 한층 진화하는 신예 작가의 기염. 지구가 마치 자기 것인 양 구는 닝겐들, 당신들부터 대화를 나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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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보다
셔우드 앤더슨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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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의 생애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 1876~1941)은 미국 오하이오주 캠든에서 태어나 빈곤한 유년기를 보냈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광고업과 비즈니스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1919)는 미국 모더니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내면 심리의 복합성과 개인의 소외감을 탁월하게 묘사하였다.

 

2.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의 세계관

앤더슨의 작품에는 20세기 초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겪는 개인의 고립과 소외, 인간 내면의 억압된 욕망과 심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사회의 관습과 억압적인 구조가 인간의 진정한 자아 발견을 방해한다고 보았으며,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내면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투쟁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체적·주제적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한국 작가 김유정과 가장 흡사해 보인다.


3. 다른 미국 작가들에 미친 영향

앤더슨은 미국 문학의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등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의 결합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새로운 서술 방식을 제시했다. 헤밍웨이는 앤더슨으로부터 간결한 문체를, 포크너는 복잡한 내면세계 묘사를 배우는 등 각기 다른 측면에서 앤더슨의 영향을 받았다.

 

4.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작가의 위로

앤더슨의 이야기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에서는 열정이 끓어 넘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잘 묘사한다. 잘나가는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을 통해 어딘가 마음이 비어있는 순간을 오래 들여다본다. 사람들이 서로 스쳐 가면서 말은 주고받지만 정작 마음은 잘 와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단편을 읽고 나면 큰 사건이 없어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앤더슨의 글에서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물건을 놓아둔다. 달걀은 무언가 잘될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하지만 동시에 쉽게 깨질 수 있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물건이다. 우유병의 반질반질한 표면은 깨끗하고 신선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상하기 십상이다. 씨앗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흙과 날씨, 사람의 손길이 조금만 어긋나도 금세 자라지 못하는 물건이다. 이런 물건들은 우리가 믿는 하면 된다같은 말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조용히 말해 준다.

 

등장인물들은 자주 자기 자신과 싸운다. 나는 바보다의 주인공은 이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괜한 허세를 부리다가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여기서 바보 같음은 타고난 결함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비뚤어진 결과일 뿐이다. 어느 현대인의 승리: 변호사 불러줘요에서는 얄팍한 승리감이 얼마나 빈약할 수 있는지 드러난다. 절차대로 이겼다고 말하는 순간, 정작 사람 사이의 의미는 사라진다. 겉으로는 승리처럼 보이는 일이 속으로는 패배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과 말의 힘도 흔들린다. 슬픈 나팔수들에서 연주자들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 애쓰지만 그 소리에는 어딘가 외로운 기운이 섞여 있다. 소리는 관객에게 닿는 다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앤더슨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으로 사람을 재지 않는다. 끝까지 표현해 보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사람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몸과 시선의 문제도 솔직하게 다룬다. 그 여자 저기 있네. 목욕중이야에서 목욕은 깨끗해지는 일이면서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서로를 슬쩍 보거나 피하고, 욕망을 규칙의 말로 포장하려다 더 큰 침묵에 빠진다. 앤더슨은 누구를 어떻다고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외로운 마음을 어떻게 다루지 못해 엇나가는지를 찬찬히 따라간다.

 

장소도 사람의 어깨를 누른다. 어느 낯선 동네에서의 길은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불안의 길이다. 형제에서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을 달래고 누구와든 이어져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신문 속 인물들까지 자신과 같은 결핍을 지닌 형제라 사칭하는 고립된 노인의 이야기다. 전쟁은 총소리보다 먼저 사람들의 삶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멀리서 들려오는 구호와 소문이 사람의 마음을 먼저 소모시킨다는 점이 핵심이다.

 

앤더슨의 문장은 짧고 단정하다. 꾸미는 말이 적고, 망설임과 멈칫거림을 그대로 둔다. 그의 인물들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실패는 낙인이 아니라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달걀의 껍질, 우유병의 유리, 씨앗의 작은 몸체는 허무의 표시가 아니라 우리가 손으로 만지고 돌볼 수 있는 삶의 크기로 느껴진다.

 

결국 앤더슨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허물을 쉬이 나무라지 않는다. 그는 산업화 시대의 미국식 성공 이야기의 밝은 면만 보지 않고 그 뒤에 남는 빈자리와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어긋난 약속, 부끄러운 고백, 잘 깨지는 물건들 사이에서 그는 다시 시작하려는 작은 움직임을 발견한다. 그의 단편을 읽는 일은 실패가 많은 세상에서 그래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연습이다. 이 연습이 남기는 태도는 단순하다. 서로의 부족함을 알아도 등을 돌리지 않는 마음이다. 이것이 앤더슨 소설이 건네는 가장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깨닫게 된다. 나만 바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다들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저마다 달걀 하나씩을 안고 조심조심 하루를 건너는 사람들이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 마음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실패와 수치의 순간도 나만의 흠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사연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그 생각을 붙들면 숨이 조금 길어지고 어깨가 조금 펴진다. 오늘도 내 보폭대로 걸어가도 괜찮다는 용기가 생긴다. 앤더슨의 작품을 읽는 일은 결국 괜찮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말을 배우는 것이며, 그 말을 먼저 나에게 조용히 건네보는 연습이다.

 

#한달한권할만한데 #셔우드앤더슨 #나는바보다 #아고라출판 #벽돌책격파 #온라인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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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
신디 L. 스캐치 지음, 김내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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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같은 교직에 있는 대학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배, 요즘 너무 힘들어요. 주위 선생님들이 저를 대놓고 무시하고, 이제는 법적으로 대응해서라도 벗어나고 싶습니다.” 순간 멈칫했다. 대학 시절 그 친구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단 혼자 있는 걸 좋아하던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교사가 되어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니. 평소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는 아니어서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이렇게 말했다. “식사나 커피 한 잔이라도 같이하면서 진솔한 대화로 풀어보는 게 어때? 인간관계는 법보다 가까운 데서 작용하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사실 나 자신도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다. 법이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일한 답은 아니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도 이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헌법학자로, 전쟁이나 내전으로 무너진 국가(예컨대 이라크)에서 어떻게 하면 헌법을 제대로 세워 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지 연구해온 사람이다. 오랫동안 그는 법과 헌법이야말로 사회 협력과 평화를 지키는 핵심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믿음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부족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은 뒤에 쓴 반성문처럼 읽힌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법이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저절로 협조적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협력의 문화가 먼저 있어야 법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라크의 사례를 보면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는 이 원리를 특정한 상황이 아닌 보편적인 원칙으로 확장한다.

 

더 많은 법률을 통해 사회를 고치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 세계를 가로질러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기술이 전례없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법과 규칙, 위계질서에 기반한 리더십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할 때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시민을 한 명, 한 명씩 바꿔보자는 거다.” (33)

 

물론 그렇다고 법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법만으로는 사회 질서를 세울 수 없으며, 대신 공동체가 지켜야 할 여섯 가지 생활 원칙을 제시한다. 쉽게 말해 우리 서로 조금 더 잘 지내자, 배려하자는 이야기다. 얼핏 식상하고 순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자는 매우 진지하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나 키케로가 강조한 공공선을 위한 시민의 미덕과 맞닿아 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미국의 법관 러니드 핸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의 화합이 깨지면 어떤 법정도 해결하지 못한다. 반대로 화합이 굳건하면 법정이 필요 없다. 모든 문제를 법정에 떠넘기면 결국 화합의 정신마저 사라진다.” 저자의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현실의 갈등 대부분은 시민과 국가 간의 대립보다, 시민 집단끼리의 이해 충돌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집값 안정 정책은 기존의 주택 소유자에게는 유리해도 무주택자에게는 불리하다. 노인 연금 확대는 젊은 세대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미래 세대에게는 필요하지만, 현재 세대에겐 불편함을 안겨준다. 이런 문제를 모두 법으로 해결하려 들면 정치는 결국 집단 이익의 힘겨루기로 변질한다. 이를 벗어나려면 개인적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행복과 공공선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사례는 오히려 법이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자칭 법 전문가이지만 시민성을 결여한 그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비상계엄 선포를 앞세워 국회와 정적을 압박하려 했고 그 결과 사회는 극도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법적 형식이 앞세워지는 과정에서 신뢰와 협력은 오히려 사라지고 말았다. 법비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법이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심화시킬 뿐이었다. 법적 절차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법체계 운용자가 법을 지키지 않거나 그 권한을 남용하면 정치권력의 정당성보다 법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방해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는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협력을 필요로 하고, 협력은 공유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공유된 지식은 광장을 필요로 한다.” (151)

 

저자는 법적 강제력에만 의존하면 공동체의 문제가 독재나 권위주의적 강압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법과 제도에만 기대지 않고 도덕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의 미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저자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이라는 것이 결국 지도자를 맹신하지 말고, 책임 있게 권리를 행사하며, 이웃과 적극 소통하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려 하고 환경을 신경 쓰며, 다른 집단과 공감하자는 다소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권유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런 조언들은 맞는 말이지만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저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선을 논의하는 피아자(광장)’ 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나 현대처럼 복잡하고 규모가 큰 사회에서 이게 얼마나 가능할까? 결국 그는 현실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문제와 고민의 방향성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저자는 놀이터에서 낯선 아이들이 힘을 합쳐 막힌 물펌프를 뚫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어른들은 문제만 생기면 법부터 찾으려 하고, 아이들처럼 스스로 대화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바꿔야 할 세 가지 태도를 강조한다. 첫째, 방관자를 죄 없는 존재로 보지 말고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을 돕는 것을 도리로 삼아야 한다. 둘째, 관계망은 작을수록 건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역 공동체 중심의 소규모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셋째,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이름을 알고 신뢰할 수 있는 광장같은 공간에 참여해야 한다. 성공적인 작은 공동체는 구성원 간의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위계보다 대화를 중시하며, 개인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는 민주적인 조직이다. 또한 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법이 허용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지역 사회를 위해 실험하고 변화시켜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법이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할 수는 있어도, 그 길에 필요한 참여와 협력을 유도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 역할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215)

 

결론적으로 이 책은 완전한 해답을 주진 않지만,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완전할 수 없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책장을 덮고 나니 앞서 후배 이야기가 떠올랐다.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관계의 회복은 법이 아니라 마음의 공간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더 크게 와닿는다. 저자의 통찰은 결국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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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
신디 L. 스캐치 지음, 김내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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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따지기 좋아하고 법률 소송이 능사이지만 법대로 안 돌아가는 법치주의 국가 대한민국 국민이 꼭 읽어보면 좋은 어느 저명한 법학자의 가벼운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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