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침대에서 자기 몸을 주운 사람
누군가의 복제품인 도플갱어(doppelganger) 현상은 책과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독일어로 doppel은 영어의 double, ganger는 walker로 함께 걷는 두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이 현상은 너무나 사실적이며 도플갱어 효과를 겪는 이들은 실제로 자기 몸이 증식했다는 환각을 느낀다. 만약 이 복잡한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면 또 다른 ‘나’를 보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몸과 환각 상태 사이를 넘나든다고 느낀다. 취리히 출신의 한 청년이 도플갱어 환각으로 자살할 뻔한 사례가 잘 기록돼 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발작 약을 끊고 맥주를 많이 마신 후, 출근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 침대에서 일어나 어지럽게 돌아선 그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게을러빠진 또 다른 나에게 분노한 그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 즉 도플갱어를 흔들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의식은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빠르게 옮겨갔고, 그는 두 사람 중 누가 실제로 자신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공포에 질린 그는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나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무엇이 이런 복잡한 환각을 일으키는 걸까? 뇌에는 모든 종류의 감각 신호를 통합하는 ‘전방 섬엽’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자신이 자기 몸 안에 머무른다고 느끼게 하고, 자기 몸이 우주의 어디쯤 있는지를 식별하는 것이 바로 이 뇌 영역이다. 도플갱어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은 왼쪽 전방 섬엽이 손상되어 자신이 몸 밖에 머무르는 유체 이탈을 경험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환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8장. 모든 것이 제자리에
지금까지는 괴상하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뇌의 기능 부전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8장에서는 그 반대이다. 황홀한 뇌전증은 꼭 불쾌하지만은 않은 증상이다. 황홀한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뇌의 특정 부위에서 심한 전기 방전이 발생한다. 환자는 종종 의식을 유지하며, 행복감이나 완전한 안정감처럼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겪는다. 러시아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완벽한 조화의 느낌을 묘사하면서 그의 황홀한 발작에 대해 웅변적으로 썼다. 이러한 행복감과는 별개로, 갑작스러운 명료함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꼈다는 보고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앞서 논의된 자폐증의 신경학적 설명과 관련이 있다. 자폐증 환자가 뇌의 예측이 틀리기 때문에 고통받는 한편 황홀한 뇌전증 환자는 자기 뇌가 항상 옳다는 느낌을 즐긴다. 황홀한 뇌전증이 의식과 주관적인 감정이 생성되는 전방 섬에서도 발생함을 발견하였다. 전방 섬은 신체로부터 오는 신호를 통합할 뿐만 아니라 이 신호를 감정으로 변환한다. 스위스의 신경학자 파비엔 피카르는 전방 섬이 우리가 다음에 경험할 것에 대한 뇌의 예측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정한다. 뇌가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불안과 불확실을 경험하지만, 예측이 맞을 때는 안전과 확실함을 느낀다. 황홀한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전방 섬의 전기 폭풍은 뇌의 예측과 실제 경험을 비교하는 메커니즘을 방해한다. 황홀한 발작 환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맺는말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뇌는 우리 각자가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달리 인식하는지를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독특한 성격과 자아를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자아에 균열이 생긴 조현병, 자폐증, 알츠하이머, 탈인격화, 도플갱어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뇌의 어떤 문제가 어떻게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는지, 어떻게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의 세계를 인지하고 그 세계와의 관계 맺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중요한 메커니즘, 예측, 모형 등을 잘못 이해할 때 이러한 노력은 뿌리째 흔들린다. 이 매력 넘치는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까지 알려진 최신 뇌 작동법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돌아본다. 그는 자아가 정의되고 창조되고 발견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은 단백질 덩어리를 탐구하고 있다.
결국,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과학자들은 뇌를 지도화하고 특정한 감정이나 행동을 관장하는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등 여러 주제들을 조사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에게 닫혀 있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얻어내고 있다. 다양한 양태로 고통받는 수많은 정신 질환 경험자들을 접한 저자는 항상 친절하고, 주의 깊고, 빈틈없이 경청하면서 힘들었거나 아직도 힘든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한다. 동시에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과학적 내용을 쉽게 풀어내려 최선을 다한다. 눈높이 과학 교육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준 점에 감사한다.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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