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 뇌과학이 밝힌 인간 자아의 8가지 그림자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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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어느 시점이든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 궁금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정체뿐 아니라 내 생각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라거나, 자기 팔다리에 이질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고 육신은 나날이 썩어간다고 믿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정체성과 자아 확립 사이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도 우리는 보통 기본적인 자아의식을 잘 지켜낸다. 또 한편으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뇌 손상을 입고 자신을 거의 잃어버리는 경우처럼 우리의 자아 감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하기도 한다. 우리 뇌의 많은 부분은 자신이 온전히 자신일 수 있도록 서로 돕지만, 매우 사소한 손상이나 무해한 오작동으로도 완전히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부류의 ‘비범한’ 인간 자아 여덟 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장.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나는 누구인가? 우리 대부분은 자아, 즉 주체인 ‘나’를 변함없는 존재라 생각한다. 누구나 자기 몸과 마음에 애착을 느끼면서도 정말로 몸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아감은 우리 뇌가 공들여 일한 결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 뇌가 적절한 자아 감각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적으로 자신이 실제로 죽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코타르증후군 환자는 정말로 자신이 죽었다고 확신한다. 어느 정신과 병동의 중년 환자 그레이엄은 자신이 뇌사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혼과 연이은 자살 시도 실패 이후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고 그의 모든 감정은 생기를 잃었다. 그의 결론은 그가 죽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잠자고 먹고 마시는 행위를 계속하면서도 그럴 필요성을 잃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양치질도 중단했다. 자신이 아직 산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는 믿기를 거부했다. 뇌의 특정 영역은 우리의 자아 감각에 필수적이다. 코타르증후군 환자의 손상된 뇌는 살아있다는 느낌 같은 자아 감각의 기본 요소들을 방해한다. 그레이엄의 뇌를 스캔해본 의료진은 의식적인 인식과 관련된 영역, 즉 전두엽 부분에 대사 활동이 거의 없음을 발견했다. 특히 감정과 같은 내적 활동을 인식하는 연결망에 영향을 주어 자신의 감정과 신체적 필요에 대한 인식을 잃음으로써 자신이 죽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2장. 나의 이야기를 모두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서사적 자아를 형성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서사적 자아 유지 능력을 잃어가며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의미 기억은 특정한 형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개념을 ‘자기표현 시스템’에 저장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찬 이 기억 저장소는 우리의 서술적 자아에 통합되는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는 이 과정을 수행할 수 없다. 뇌에서 해마를 제거한 환자가 보이는 증상은 결과적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들과 유사했다. 어머니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기억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글쎄요,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였어요’라고 말한 유명한 환자 H.M.(헨리 몰레슨)은 어머니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 우리의 자아에 대한 모든 감각이 서술적 자아로 귀결되는 듯 보이지만, 알츠하이머에 대해 다르게 증명되는 예도 있다. 오히려 환자의 자아의식의 일부가 보존되기도 하는데 이는 신체가 기억하는 ‘체화된 자아’(몸에 밴 습관, 몸짓, 동작들이 인간성과 개성을 지지하고 전달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마치 손가락 끝에 뇌가 저장된 듯 타이핑은 거의 자동으로 수행되는 작업인데, 이런 체화된 지식은 뇌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동안에도 지속된다. 말을 잃어버린 어느 알츠하이머 환자는 유대인들의 휴일에 유대교 회당에서 기도하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섰다. 놀랍게도 그는 이 의식에 참여하면서 보낸 몇 년 동안 기도문을 그의 몸에 ‘새겨’ 넣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기도문을 암송할 수 있었다. 


우리 뇌는 몸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뇌도 있다. 자기 손을 보고 당연히 자기 몸의 일부라 인식한다면, 아직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지가 자기 일부라는 느낌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는 주인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뇌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쉽게 조작되기도 한다. 이 소유감의 조작이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정상적인 피실험자들에게 앉아서 한 손을 고무손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으라고 말한다. 피실험자는 분리벽에 가려 자기 손 대신 고무손만 보이게 하고, 진짜 손과 고무 손을 동시에 페인트 붓으로 쓰다듬었다. 피실험자들은 가짜 손에 붓질을 느꼈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고무손이 실제로 그들의 손처럼 느껴졌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것은 신체 일부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신체 완전성 정체성 장애(BIID, 팔다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증후군)를 초래하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BIID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특정 부분, 즉 전형적으로 내 몸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팔이나 다리의 절단에 집착한다. 그 이유는 뇌에 있다. 대개 우리 뇌는 모든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 발을 간지럽히면 그에 상응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BIID는 선천적으로 또는 생애 초기 발달 단계에서 뇌의 한 부분이 잘못되어, 팔이나 다리가 뇌에 적절하게 표현되지 않아 보고 느끼는 것이 조화되지 않는 갈등상태로 정의된다. 지도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한 자신의 사지를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이해하는 반면, 만약 지도가 불완전하다면 이질감을 견디지 못하고 실제로 절단시킴으로써 ‘해방되고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사례도 있다.


4장.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자기 몸에서 가장 예민한 부위를 찾아 스스로 간지럼을 태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부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이런 걸까? 일반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은 자기 몸을 통제하고 있다는 ‘주체감’이 없어 대리 감각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리잔을 들어 올리는 행동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홀린 것이라 말한다는 사례를 통해 조현병 환자들이 이상한 목소리를 듣는다고 설명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일상적인 정신적 수다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자기 목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종류의 해리는 우리의 대리 감각을 생성하는 뇌 메커니즘이 손상될 때 발생한다. 이 메커니즘의 작동을 설명하는 예로 축구공을 차는 행위가 있다. 축구공을 차게 만드는 운동 피질은 두 가지 신호를 보낸다. 다리를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 명령의 복사본을 뇌의 다른 부분으로 보낸다. 이 복사본으로 우리 뇌는 다리에 가해질 감각을 예측하고, 뇌의 예측과 경험과의 일치가 대리 감각을 만들어낸다. 조현병 환자의 뇌는 이 복사 명령을 보내지 못해 신체가 경험하려는 감각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예측이 없다면, 우리의 행동은 실제로 시작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대신 다른 누군가의 책임으로 느껴진다. 이로써 왜 일부 조현병 환자들이 쉽사리 스스로 간지럼을 탈 수 있는지 설명된다. 이들의 뇌는 손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으며 몸은 아무런 준비가 없어 간지럼을 타게 된다.

5장. 영원히 꿈속을 헤매는 사람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여전히 꿈을 꾸는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아프도록 몸을 꼬집어보아도 현실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면? 할리우드 영화의 대본처럼 들리겠지만 비인격화(이인증)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실제 살아있는 경험이 이렇다. 비인격화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자아의식과 전반적인 인식의 현실감을 방해한다. 비인격화 환자들은 자기 몸, 감정, 삶 그리고 주변의 세계로부터 완벽히 분리된 느낌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일상생활에서 겉보기에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요약하자면 이 현상은 조현병과 마찬가지로 손상된 뇌의 예측 메커니즘 오작동으로 발생하며 뇌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뇌는 본질적으로 예측 기계로서, 감각 신호의 원인을 예측하고 이를 현실과 비교하여 세상을 인식한다. 단순히 우리의 신체뿐만 아니라 분노와 즐거움 같은 매우 기본적인 감정 역시 신체 상태에 맞추어 예측된다. 자기감정에 대한 뇌의 예측이 정확해야 비로소 자기 것이라 느끼며, 이 감정은 우리의 자아 감각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비인격화의 경우 뇌는 들어오는 감정 신호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므로 자기감정이라 느끼지 못한다. 



6장. 자아의 걸음마가 멈췄을 때

‘자신을 생각한다’라는 뜻의 자폐증(auto + ism = autism)은 오늘날 빈번히 접하는 용어이다. 자폐증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는 타인의 표정을 해석하고 감정 상태를 식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예컨대 자폐증 환자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걱정하느라 얼굴을 찌푸린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못하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듯 이 표정의 의미를 익혀야 한다. 또한, 이들은 종종 새롭고 예상치 못한 일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말을 반복하거나 같은 영화를 질리지 않고 반복 시청한다. 조현병이나 비인격화와 마찬가지로, 자폐증 역시 뇌의 예측 능력 고장이 원인이다. 뇌는 다가오는 경험을 예측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며, 이러한 예측은 하나의 모형으로 뇌에 저장된 예전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모형이 부정확하여 예측이 잘못될 수 있다. 예측과 현실 사이의 격차에 놀란 뇌는 감각 기관을 통해 새로 들어온 신호의 도움으로 모형을 수정하려 한다. 하지만 자폐증 환자들의 뇌는 자기 몸에서 나오는 공복감이나 타인의 얼굴에 나타난 슬픔 등의 신호를 정확히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뇌 정적'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의 뇌에는 되먹임 신호가 지나치게 왜곡되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되먹임 신호는 뇌의 예측 모형을 업데이트하지 못하며, 새로운 지식이나 자극을 통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규칙적으로 예측 오류를 겪으며 끊임없이 외부 자극에 놀라게 되고, 이 놀라움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므로 이미 익숙한 영화를 반복 시청하게 된다.

7장. 침대에서 자기 몸을 주운 사람

누군가의 복제품인 도플갱어(doppelganger) 현상은 책과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독일어로 doppel은 영어의 double, ganger는 walker로 함께 걷는 두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이 현상은 너무나 사실적이며 도플갱어 효과를 겪는 이들은 실제로 자기 몸이 증식했다는 환각을 느낀다. 만약 이 복잡한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면 또 다른 ‘나’를 보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몸과 환각 상태 사이를 넘나든다고 느낀다. 취리히 출신의 한 청년이 도플갱어 환각으로 자살할 뻔한 사례가 잘 기록돼 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발작 약을 끊고 맥주를 많이 마신 후, 출근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 침대에서 일어나 어지럽게 돌아선 그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게을러빠진 또 다른 나에게 분노한 그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 즉 도플갱어를 흔들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의식은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빠르게 옮겨갔고, 그는 두 사람 중 누가 실제로 자신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공포에 질린 그는 창문에서 뛰어내렸으나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무엇이 이런 복잡한 환각을 일으키는 걸까? 뇌에는 모든 종류의 감각 신호를 통합하는 ‘전방 섬엽’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다. 자신이 자기 몸 안에 머무른다고 느끼게 하고, 자기 몸이 우주의 어디쯤 있는지를 식별하는 것이 바로 이 뇌 영역이다. 도플갱어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은 왼쪽 전방 섬엽이 손상되어 자신이 몸 밖에 머무르는 유체 이탈을 경험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환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8장. 모든 것이 제자리에

지금까지는 괴상하고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뇌의 기능 부전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8장에서는 그 반대이다. 황홀한 뇌전증은 꼭 불쾌하지만은 않은 증상이다. 황홀한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뇌의 특정 부위에서 심한 전기 방전이 발생한다. 환자는 종종 의식을 유지하며, 행복감이나 완전한 안정감처럼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겪는다. 러시아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완벽한 조화의 느낌을 묘사하면서 그의 황홀한 발작에 대해 웅변적으로 썼다. 이러한 행복감과는 별개로, 갑작스러운 명료함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꼈다는 보고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앞서 논의된 자폐증의 신경학적 설명과 관련이 있다. 자폐증 환자가 뇌의 예측이 틀리기 때문에 고통받는 한편 황홀한 뇌전증 환자는 자기 뇌가 항상 옳다는 느낌을 즐긴다. 황홀한 뇌전증이 의식과 주관적인 감정이 생성되는 전방 섬에서도 발생함을 발견하였다. 전방 섬은 신체로부터 오는 신호를 통합할 뿐만 아니라 이 신호를 감정으로 변환한다. 스위스의 신경학자 파비엔 피카르는 전방 섬이 우리가 다음에 경험할 것에 대한 뇌의 예측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정한다. 뇌가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불안과 불확실을 경험하지만, 예측이 맞을 때는 안전과 확실함을 느낀다. 황홀한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전방 섬의 전기 폭풍은 뇌의 예측과 실제 경험을 비교하는 메커니즘을 방해한다. 황홀한 발작 환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맺는말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뇌는 우리 각자가 세상을 얼마나 어떻게 달리 인식하는지를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독특한 성격과 자아를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자아에 균열이 생긴 조현병, 자폐증, 알츠하이머, 탈인격화, 도플갱어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뇌의 어떤 문제가 어떻게 우리가 자아를 인식하는지, 어떻게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의 세계를 인지하고 그 세계와의 관계 맺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중요한 메커니즘, 예측, 모형 등을 잘못 이해할 때 이러한 노력은 뿌리째 흔들린다. 이 매력 넘치는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까지 알려진 최신 뇌 작동법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돌아본다. 그는 자아가 정의되고 창조되고 발견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은 단백질 덩어리를 탐구하고 있다. 

결국,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과학자들은 뇌를 지도화하고 특정한 감정이나 행동을 관장하는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등 여러 주제들을 조사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에게 닫혀 있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얻어내고 있다. 다양한 양태로 고통받는 수많은 정신 질환 경험자들을 접한 저자는 항상 친절하고, 주의 깊고, 빈틈없이 경청하면서 힘들었거나 아직도 힘든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한다. 동시에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과학적 내용을 쉽게 풀어내려 최선을 다한다. 눈높이 과학 교육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준 점에 감사한다.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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