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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마치다 준 지음, 김은진 옮김 / 삼인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각하, 가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식량난에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래? 그럼 지금 즉시 식량을 확보해!
주민들은 힘들게 살아가는데, 자기는 호화로운 음식을 먹으면서도
구호 물자가 주민들에게 맛있다며 인기가 많다니까, 그걸 또 줄을 서서 먹고, 맛 없다고 구호물자를 보내는 국가에 구호물자를 캐비어나 연어 같은 걸 보내주라고 편지를 쓰는 각하,
각하의 동상은 버려두고, 자기 동상을 만든데다가, 주민들이 각하의 동상을 부시는 건 버려두고, 자신의 동상은 부서지지 않게 보호하고, 또 깨끗하게 관리하고, 가만 보고 있으면 각하를 위해서 조언을 하는건지,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하는건지, 자기가 각하가 되고 싶은건지 모를 족제비 잭 장관.
가만 보고 있자면 여러 나라의 '각하'들이 생각나면서 나도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책이었다.
신을 믿고 있고, 원수를 사랑하며,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때리겠다는 각하,
하지만 마지막,
'그러므로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겠다.'
살인자를 사랑하고, 용서해주겠다면서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겠다는 것은,
역시 궤변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또한, 권력은 불변의 것이기에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는 불사신 각하, 차에 부딪혔는데 차가 망가지고, 각하는 멀쩡하고, 기차에 부딪혔는데도 각하는 멀쩡했다, 기차는 널부러져있는데도,
강에 빠려 죽으려 했지만 강이 그새 사해가 되었는지 둥둥 떠내려가는 각하,
나중에는 전쟁터에서 총알막이로 쓰인다. 참 유용한 쓰임이다.
어쩐지 익숙한 이름들이 살짝 살짝 바뀌어 나오고, 그 속에서 사회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부분 부분 찾아볼 수 있다.
광우병이 돈다며 각하의 식사를 먼저 시식해보겠다는 장관, 해산물을 먹고 있자 어류 오염이 심각하다며 또 먼저 시식하는 장관, 그런데 눈과 입은 웃고 있다.
메밀죽을 먹으려던 장관이 '메밀죽은 안전한가?' 라고 말하자, '네, 각하, 잡곡류는 안전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장관, 내가 보기에는 음식들이 위험한 게 아니라 장관의 혀가 위험하다.
어째서 각하가 두더지이고, 장관이 족제비일까. 각하는 눈 앞에 닥친 상황도 모르고 제 멋대로 나라를 말아먹고, 장관은 나라가 위험한 상황에도 은근슬쩍 자기 이득만 챙기는 게 눈에 보인다.
가만 보고 있자면 익숙한 그림들도 보이고, 무능한 독재자가 얼마나 위험한가도 알 수 있다. 핵 실험을 대놓고 한다고 광장에서 폭파 하려고 하질 않나, 어찌 어찌 군사를 잘 움직여두니까 딱 포위당한 위치로 옮기질 않나, 나라 말아먹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