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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희순
권은혁 지음 / 좋은땅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둘째는 서럽다. 육 남매 중 둘째인 나는 서러운 기억 뿐이다.언니의 옷과 신발은 일 년 후 당연히 내 것이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언니의 새 옷을 사오는 날이면, 그날 언니는 입이 찢어져라 행복했다. 그리고 이 년 후 내가 행복해질 것이다. 그래야만했다. 언니가 이 년, 내가 이 년을 입고 나면 옷이 해져 셋째인 여동생에게는 새 옷을 사주셨다. 이 것은 지천명의 나이에도 억울한 일이다. (-14-)
돈가스보다 설렁탕을 좋아한다.
식당에 들어가 의자를 조심히 들어서 빼 앉는다.
반드시 숟가락은 왼쪽, 젓가락은 오른 쪽에 두고 밑 끝을 일자로 맞춘다.
테이블 위에 놓인 김치, 깍두기 항아리에서 각각 조금씩 꺼내어 하나의 접시에 담는다.
밥을 다 먹은 후엔 빈 접시와 사용한 수저들, 휴지를 한곳에 가지런히 모은다.
엉덩이를 의자와 함께 살며시 들며 일어선다.
계산할 때는 너무 맛있다는 말을 항상 거네고, 주방 쪽을 향해 "잘 먹었습니다." 인사한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
그때의 그대는
구수하고 수려한 단어로
나를 치장시켰고
그때의 나는 덧없이 아름다웠다
그 시절 말한 그 아름다운 단어들이
지금의 내 모습과 어울린다면
나는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것이겠지요.
낯선 이유는 그대가 없기 때문이고요. (-115-)
철없고 죄 많은 엄마는 아들과의 추억이 몇 없다. 아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가지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스무살이 된 아들은 평일 낮에 집에 있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한 날은 늦은 아점을 먹으며 아들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다. 다 큰 아들은 박물관에 가고 싶다 했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 충주로 행선지를 정했다. 해야 할 빨래가 있었지만 그날은 아들과의 소풍이 오래 밀린 빨래 더미와 같이 느껴졌고, 양치만 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이내 집을 나섰다.
내리쬐는 볕에 후끈하게 달궈진 차르 탔다. 에어컨을 트는 것보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이하고픈 날씨였다. (-142-)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시집 『소녀 희순』은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저자의 소녀 감성을 읽을 수 있었다. 장녀도 아닌 차녀로 태어나 서러움을 끼면서 살아야 했던 지 나날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으며,그 과정에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인생들을 주섬주섬 담아내고있었다.
억울하거나,철이 없거나,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어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이 책에서,시집 한 편에서, 내 삶을 느낄 수 있고,그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결코 희순씨의 삶이 내 삶을 반영하고 있었으며,그 삶이 나에게 이로움 뿐만 아니라, 나에게 경험하고자 하는 것을 깨우치고 있었다. 태도와 자세,그리고 인성에 대해서, 작은 것 하나 놓칠 수 없었다. 감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대해서,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위대해 보인다고 하였다. 겸소함과 감사함이 내 인생에 깃들어있을 때 가능하다. 특히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놓칠 수 없었던 것은 내 삶이 앞으로 지향해야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이 소녀 희순에 담겨져 있으며,진솔함과 진정서이 느껴지느 시집이다.꾸밈이 없는 시집이기에 특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일들 하나하나가 내 삶의 모든 발자취였을 듯 싶다. 돌이켜 보면,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범주 안에서,내 삶을 보존하고, 타인의 삶을 인정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사랑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였고, 나에게 필요한 인생이기도 하다. 특히 나의 삶이 그 삶 속에서 놓칠 수 없었고,그것이 내 안생을 크게 흔들어놓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