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동요그림집
윤석중 외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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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노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44-)

파란마음 하얀 마음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73-)

동요집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에는 어릴 적 익숙한 멜로디, 익숙한 노래가사가 담겨져 있었다. 강소천,권오순, 김규환, 김동호, 김소월,김요섭, 목일신, 박경종 등등 그들이 살았던 100년 전 에 쓰여진 동요집은 지금 우리 삶의 가치관이 되었으며, 민족성이면서, 대한민국 문화와 대한민국 사람들을 엮어주는 긍정 에너지가 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과 희망으로 채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책에 쓰여진 동요집은 그리움이었으며,만남이었으며, 희망과 꿈, 동심이었다. 스승에 대한 배움, 선후배 간의 우애를 동요집 『졸업식 노래』에 있었으며, 학교를 졸업한 뒤, 선후배 였다는 이유로,서로를 엮어주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동문의 힘은 , 1920년 이후 쓰여진 순수 동요집에서 출발한다.

동요집 『파란마음 하얀 마음』은 너무나 익숙한 멜로디이며, 노래가사다.TV 에서, 들리는 멜로디이며, 서정적인 동요, 그리움과 희망, 꿈, 긍정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다. 각박하고, 삭막한 사회에 살아가며,동요를 잊으면서, 동심을 잊으면서, 주어진 삶에 있어서, 행복을 가까이 두면서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느꼈던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 3대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는 쉽고, 가벼이 읽을 수 있는 동요 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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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4일
조성기 지음 / 한길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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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주는 1980년 3월 6일 공교롭게도 내 생일날 수형번호가 붙은 군복을 입은 채 세 명의 사형수와 함께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 야산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30-)

1975년 3월 박근혜는 직접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 만났다. 일설에 따르면 최태민이 육영수 혼에 빙의되어 평소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 박근혜를 압도해버렸다고 했다. 영혼합일설 교리에 따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최태민은 1975년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고 스스로 총재에 취임했다. 5월에는 2,000여 명이 모여 임진각에서 '구국기도회'를 열었는데 박근혜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최태민이 박근혜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78-)

고향도 경북 영주군이라 동향인과 같은 친밀감을 느꼈다. 둘 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진해로 내려와 같은 관사를 사용하고 있는 처지라 거의 매일 조석으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식사와 술을 함께했다.

한번은 김계원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부탁했다.

"육군대학 비품들이 많이부족하네.부총장이 군수기지사령관 박정희 장군과 친하다고 하니 부산 한번 다녀오게. 여기 사정 잘 이야기하여 필요한 비품들이 빠리 보급되도록 해주게." (-105-)

통일혁명단은 전위정당으로서 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철폐, 민중민주주의 혁명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 일소, 민족 재통일 성취 등을 당 강령으로 내걸고 주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했다. 민주적 토지개혁, 주요산업의 국유화, 민주적 노동법 실시, 여성의 권익보장, 무료 교육제, 선진적 의료보험제, 무상치료제 들을 열거했다. (-163-)

"이 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 아래 전 국민이 굳게 뭉쳐 조국 근대화의 신념을 가지고 땀 흘려 일한 결정이며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값진 민족 자산으로 전국토의 4대 권역을 완전한 일일 생활권으로 품어 균형적인 발전을 기약하는 지름길이다. 1974년 11월 14일 김재규" (-227-)

김계원의 안색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흥주는 최종 선고임을 의식했는지 더욱 긴장하고 덥수룩한 얼굴로 의젓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박선호는 올곧은 자세로 앞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기주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고 유성옥과 김태원도 바짝 굳어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사형 구형을 받은 8명에게는 구형대로 사형이 선고되도 유석술은 2년이 감면되어 3년 형이 선고되었다. 사형에 해당되는 죄명은 약간 달라졌다. 나는 내란목적살인죄와 내란수괴 미수죄가 적용되었고 나머지 6명에게는 내란목적살인죄와 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죄가 적용되었다. (-287-)

차지철이 말한 남민전 같은 용공단체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시위가 아니라 자발적인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였다.

부산시위 사태가 벌어지기 일주일 전 구자춘 내무부장관은 지하당 성격의 예비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그 일당 74명 중 20명을 반국가단체 조직 및 간첩 혐의로 검거하고 54명은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차지철은 수배 중인 남민전 일당이 부산으로 내려가 학생시위를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50-)

1980년 5월 18일 ,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5.18 광주민중항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 일원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며, 그 사이에 우리에게 잊혀진 날짜. 잊혀질 수 있는 역사, 1980년 5월 24일에 주목해 보고자 하였다.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026 사건이 있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1909.10.26)에 비견될 정도로 역사적 비중을 품고 있다.대한민국 근현대사는 1979년 10월 26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며, 1979년 10월 26일은 군부독재 국가에서, 민주 국가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기였다.

역사는 누군가가 살아서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 죽어서 역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197910.26과 1980.5.24 는 제4공화국이 종식되고,제 5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죽음으로 역사가 전환기가 되고, 권력이 바뀌고,나라의 체계가 달라진다. 40여 년전 일어난 두가지 사건, 그리고 두명의 죽음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가 될 수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성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1980년 5월 24일 사형에 처해진 김재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움으로서, 청와대 관람을 하게 되었던 날,그곳에서, 심수봉 김재규가 있었으며, 박근혜,박정희, 정승화, 14대, 16대 국회의장을 맡았으며, 8선의원이었던 이만섭李萬燮 (1932 ~ 2015)이 있다.

소설 『1980년 5월 24일』 은 김재규의 총성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박근혜 탄핵의 주역이었던,대한구국선교단 최태민이 나오고, 최태민의 딸 최순실,1970년대 박근혜가 20대 였던 당시를 상상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뒤에 숨겨진 1970년대 최태민이 저지른 다양한 종교적 행위 속에,박정희대통령의 어두운 흑역사다.

김재규는 1980년 죽었지만,대한민국은 민주화 운동이출발할 수 있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 군부 세력이 들어서게 된다.전두환 이후 노태우가 집권함으로서,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화와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김재규가 쏜 총성은 군부 독재,유신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었고, 민중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국민에 의한 나라, 정제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세상, 불온서적 한 권 가지고 있으면 잡혀 가던 그 시절이 사라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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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로 진정한 나를 만났다 - 인생 2막을 위한 자기계발
정예용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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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글쓰기로 진정한 나를 만났다』을 읽는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이면서,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학습지 교사 3년, 보험설계사를 17년,20년 동안 기억 속에 남긴 인생의 기억들, 그 기억들이 60년 인생에 녹여 있었다. 핵심과 삶의 가치관,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길 수 있는지 삶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다. 성실과 근면,정직을 인생의 법칙으로 생각했던 그들,1950년대~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에게 그 가치가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진정한 나를 만난다는 것은 정답 노트르 오답 노트로 바꾸는 것에 있었다. 평생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에 적용하였으니, 오답이 되고 만다. 삶을 견뎌내고, 자빠지고, 길을 걸어가면서, 현실의 삶에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제는 나를 찾기로 하였다.정답 노트가 오답노트가 되고,오답노트를 다시 정답노트로 바꿔 놓는다. 전자가 인생 1막이라면, 후자느 인생 2막이 된다. 어쩌면 내 삶에 있어서, 인생 2막이 더 중요한 삶이 될 수 있다.

글쓰기로 위로를 얻었고,치유를 얻었고,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작가는 자신에게 살아가는 힘, 나를 찾아가는 삶을 알아왔다. 내 삶에 따스한 온기가 주어졌을 때,그 온기가 타인에게 전해질 수 있고,그것이 내 삶을 위로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주어진 액자처럼 나에게 존재하였고, 나에게 이해가 되었으며,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책 한 권 읽으면서,내 삶에 작가의 삶에 희망과 꿈으로 채워 나간다. 삶의 배신과 상처로 얼룩졌던 그 채워지는 삶에 대해서 글쓰기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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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코를 찾아서 - 글쓰기 다섯 길을 걷다
간호윤 지음 / 경진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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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은 셋이다.

첫째,'진실에 힘이 없을 때, 진실은 절대 진실이 못 된다'는 힘의 논리다. 페퍼 사건 종결지는 질문지와 같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세르비아를 공격하려 설정한 의도에 다라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였다는 결론이다. 즉 권력자들 이해관계에 의해 사건이 벌어졌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둘째,'늘 권력자들에게 철저히 이용되는 피지배층 삶'이다. 세계대전을 발발케 한 사건 관계자들은 처형되거나 철저하게 고립됐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도 모르는 채 이슬같이 사라졌다.

셋째,이 셋째가 흥미롭다.'핍박을 받으나 진리를 추구하는 유태인'이다. 페퍼를 유태인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에 영화 동선이 흔들린다. 교묘하면서도 흥미롭다. 페퍼 상관이나 사건 이해관계자들조차 유태인이라 폄하하지만, 그는 냉정을 유지하며 흔드림 없이 진실을 좇는다. 유태인이 등장하거나 '유태인이 만든 영화 속 진실'을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진실'이 정녕'진실'인지를 . (-33-)

그것은 '나'에게 출발한다. '나, 나란 누구인가? 난 무엇으로 사는가? 한 번 사는 유한한 삶을 난 잘 사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묻게 한다. 성근별을 보고 꼬박 밤을 새웠지만 답은 성근별과 함께 가뭇없다. 이 땅에 생명붙이로 산 자라면 마땅히 생각할 문제들이기에,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아도 생각만 아궁이 재처럼 남는다. (-38-)

화씨 451도는,섭씨 233도이다. 책(종이)을 불태울 때 온도이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3년엔 쓴 과학소설로 <화씨 451도>도 있다.이 소설은 책이 금지된 미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책이 인간에게 주는 효용성을 '얼마나 쓸 데 없는지, 생각이 얼마나 가치 없는지' 로 폄화해 버리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다. (-48-)

'모든 사람에 반대하는 한 사람 글'에서 과거를 되짚고 현재의 이정표를 세우며, 미래를 예측한다. 글 쓰려는 마음이 있어서다. 글 쓰려는 마음이 생겼으며 고전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67-)

관찰을 하면'파리 대가리'나 모기 속눈썹'에서도 글감을 찾는다. 사물을 세세히 훑은 눈 빗질이 없이는 사물을 볼 수 없다. 관찰하기는,저 바다 건너 사람들이라고 다를 바 없고, 교육이나 소설도 동일하다. 우리가 잘 아는 스위스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첫 번째 교육원칙도 이 관찰에서 시작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관찰하기'를 워야 한다고 하였다. 감각을 동원한 관찰이기이니 그냥 눈으로 대충 보는 게 아니다. 글은 머리보다는 감각,머리보다는 마음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91-)

'발싸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들먹거리며 애 쓰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내적인 느낌'이 욕망이다. 이 내적인 느낌을 외적으로 번역해 놓은 게 바로 말과 글이다., (-99-)

'마을의 꼬마 녀석이 천자문을 배우는데 읽기를 싫어하여 꾸짖었답니다.녀석이 말하기를,'하늘을 보니 파랗기만 한데 '하늘 천'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이 때문에 읽기 싫어요!'라 하였습니다.이 아이의 총명함이 (한자를 만든) 창힐을 굶주려 죽일만 합니다. (-115-)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 작가라는 프루스트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을 20년 동안이나 썼다. 20년 동안 프루스트는 무슨생각을 했을까?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생각나니 생각을 안 하지 못해, 오늘, 몽당 연필 한자루 들고 생각을 더듬어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다. (-142-)

지인이 책을 보내왓다.'미주 한인 역사 120주년 기념'이란 부재가 붙었다. 그중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글을 읽다가 한참동안 눈길이 멈췄다. 가끔씩 이런 글을 보면 의아스럽다. 아래 글을 보면 이승만은 1904년 8월 9일, 조선에서 5년 7개월의 투옥생활을 끝냈다. (-162-)

책을 쓰기 위한 책, 책쓰기 길잡이가 되는 책 , 간호윤 각가의 『코끼리 코를 찾아서』은 『사이비』,『사이비 2』에 이어어 읽게 된 세번 째, 책이다. 책을 쓰고자한다면, 먼저 독서와 관찰,퇴고가 필요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 를 쓰기 위해서, 개미의 행동 하나하나 , 디테일한 곳까지, 하나하나, 깊이 관찰하였고, 그 관찰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책을 쓰게 된다.140번의 수정으로 탄생된 책 개미는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다. 과점의 차이, 관찰의 차이가 한권의 책이 될 수 있다. 책의 글감으로 관찰과 독서 이외에, 변화와 의미,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 그 시대를 꿰뚫을 수 있는 단하나의 일침, 생각이 말과 글이 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사물을 새롭게 보고,본 것을 달리 적용해 본다. 깊은 깨달음은 관찰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새롭게 보았기 때문에 스스로 발굴한다.성인군자의 삶은 어떠했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성인의 삶을 관찰함으로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하루라도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쓰레기를 함부러 버리지 않고, 무단횡단 하지 않으며, 빨간 불이 들어와도 건너지 않는 것, 성인의 삶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지만, 삶에서 지켜야 하는 일침 하나는 반드시 지켰다.

특별한 의심과 질문은 글감이 될 수 있다. 이승만이 근현대사 발자취 속에서,미국에서 살아온 삶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의심하였고, 그 의심이 글감이 될 수 있는 것은 관점의 차이,관찰이 차이에 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진리와 진실, 호기심에 있다. 20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은은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써왔던 마르셸 프루스트의 문학세계, 뭉학적 가치를 이해하고,분석하는 것이 책쓰기, 글감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두려워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지 않아서, 생기는 글이 모여서 단락을 채우고, 글의 군더더기를 편집자의 관점으로 지워나간다면,나만의 책이 되고, 나의 삶이 누구나에게 읽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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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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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사쿠라카이 회원들은 만주의 반역 행위를 지원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음모를 꾸몄다.이들의 목적은 국내의 급진적인 개혁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 개혁을 통해 만주 정복과 더불어 새로운 일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교 120명과 이들의 소속 부대가 개입1된 이 계획은 선동가 기타잇키의 추종자들이 가세하면서 한층 더 확대되었다.반역자들은 정부와 법원 관리들을 암살하고 황궁 앞에 모여서 천황에게 사죄하기 위해 할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57-)

'전례가 없던 큰 시련' 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정책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은 내각이 새로 들어서고 나흘밖에 앉되었을 때였다. 정책의 기본 목표는 세계 평화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당연히 일본 주도하에 만주와 중국을 통합함으로써 '대동아 신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신민들이 국가에 헌신하도록 하면서 마땅히 전 국민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계획 경제를 실시하고 국회를 개혁할 것이며 중국 사태도 만족스런 결과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135-)

바위가 많고 풍광이 유난히 아름다운 시코쿠 해안에서 동북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해군 파견대원들이 Z 작전의 다른 단계에 매달리고 있을 때, 미쓰쿠에 주민들은 매일 아침 활기 넘치는 젊은 해군 소위들이 어선을 타고 미쓰쿠에만으로 나갈때 가지고 가는 천으로 덮은 2`3미터 길이의 담배 모양 물체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했다. 오후 늦게 이 어선들은 다시 천으로 가린 이상한 물체와 더불어 들어왔는데 , 소위들은 저녁을 머기 위해 이와미야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273-)

오전 7시 53분, 후치다는 나구모에게 "도라, 도라, 도라!"라고 송신했다. '호라잉'를 뜻하는 이 단어는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는 의미의 암호였다. 그는 기습작전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 파란색 신호탄을 발사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전투기대 지휘관이 알겠다는 신호인 날개 흔들기를 하지 않자 후치다는 두 번째 파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347-)

1월 26일, 필리핀군과 미군의 연합부대가 정글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통신선과 보급선을 교묘하게 연결해 만든 새 방어선에 병력을 거의 빈틈 없이 배치했다. 새 방어선은 자갈길 바로 뒤, 두 개의 사화산 사이의 골짜기에 형성되었다. 방어선은 자갈길 바로 뒤, 두 개의 사화산 사이의 골짜기에 형성되었다. 방어선은 마닐라먼에서 남중국해까지를 중단 없이 연결했다. 방어선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웨인라이트 부대가 다시 서쪽을 담당하고 파커 부대가 동쪽을 맡았다. 각 부대의 병사들은 일인용 참호와 방공호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아부케이 라인에서 힘들게 철수하며 살아남은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필리핀 사단에 속한 헨리 리 중위는 자신의 위치에서 쉬면서 철수과정에 대한 시를 한 편 썼는데, 그느 바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427-)

이 섬의 영어 이름은 과달카날섬이었다. 이 외딴섬에 대함 미국의 관심은 태평양에서 지배적 역할을 차지하려는 육군과 해군이 벌인 격론의 결과였다.3월 합동참모본부에 의해 2개 사령부가 설립되었다.멜버른에서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필리핀, 남중국해, 시암만,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대부분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솔로몬 제도를 포함하는 남서태평앵 지역을 지휘했다, 태평양 지역-마셜제도 , 캐롤라인 제도 , 마리아나 제도를 포함한 태평양의 나머지 지역-은 진주망에서 시미츠 제도기 지휘했다. 독립된 두 개의 사령부를 둘러싸고 처음부터 도쿄와 같은 수준의 성과와 갈등이 발생했다. (-551-)

나카지마 뇌격기들은 저공비행을 했다. 21발의 어뢰가 기관실로 돌진해 폭발하면서 항공모함 전체가 흔들렸다. '호넷'은 흔들리다 결국 멈춰 섰다. '호넷'이 속수무책으로 바다 한가운데 떠 있을 때, 또 다른 아이치 급강하 폭격기들이 연기가 나는 '호넷'에 6발의 폭탄을 더 투하하고 선수에서 선미까지 가차 없이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일본군은 기수를 되돌렸다. 8도 기운'호넷'은 불길에 휩싸였다. (-640-)

합동참모본부는 완강하게 버텼다. 중부 태평양을 지나는 길은 비교적 짧고 알본을 남부 지역에서 좀더 쉽게 고립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뉴기니와 필리핀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지루한 지상 전투를 피할 수 있었다. 주요 전투는 일본군이 한정된 항공력과 지상군 병력으로 방어할 수 밖에 없느 환초와 작은 섬에서 벌어질 것이다. 반면 미국 해군은 항공모함이 제공하는 항공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쉽게 상륙을 지원할수 있었다. (-732-)

사흘에 걸친 포격으로 일본군의 방어체게가 분쇄되었다. 미국의 손실은 경미했다., 포격과 기총소사로 전방 진지는 파괴되었다. 병사들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일본군은 종종 지휘관을 잃은 채 퇴각했다. 통신을 하는 부대는 거의 없었다. 그날 밤 제22 포병연대의 곤도 가나오 대좌는 명령도 없이 후퇴한 제1대대의 지휘관을 질책했다.대대장은 거의 모든 병사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고, 야포는 파괴되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곤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그가 "왜 자네는 죽지 않았는가?"라며 몸시 화를 냈다. 그리고 살아남은 병사들에게 지금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싸우라고 명령했다. (-839-)

공산주의자들이 '작은 콧수염'이라 부르는 헐리는 임무르 완수했다고 생각하며 저우언라이와 함께 충칭으로 다시 날아갔다. 이렇게 악의가 없으면 숭고한 일에 누가 딴지를 걸 수있단 말인가? 모로토프가 옳았다. 역시 중국 공산당은 가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만약 소련이라면 (미국식) 자유주의와 자기네 권위주의가 화해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리 없었다. (-955-)

미군은 한달간 오키나와에 있었고, 17만 명까지 숫자가 늘어났다. 오키나와는 작은 미국으로 변했다. 도로가 넓어지면서 상륙한 수만 대의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병기부대와 대공포가 설치되고 육군과 해군 시설을 연결하는 전화망이 구축되자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

미국을 혐오하도록 배운 일본인들은 미군의 합리적인 전투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옷차림도 실용적이었고 끝없이 탄약과 식량을 공급받았으며 전쟁을 모험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심지어 적군의 문신까지 일본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076-)

기상관측용 비행기 3대가 새벽 1시 37분 밤하늘로 이륙했다. 이번 임무의 성공을 비는 사람들과 사진사들이 '에노라 게이' 주변으로 몰려들어 플래시 세례를 쏟아졌다. 언덕에 숨어 있는 일본 겔리라들이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문을 도쿄로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에놀라 게이'와 호위 비행기 2대는 활주로로 서서히 이동했다. 노스 필드의 관제탑에 있던 뉴욕타임스의 과학 전문 기자이자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 유일한 기자인 윌리엄 로런스는 패럴 장군 옆에서 '에노라 게이'가 으르릉대며 활주로를 달려가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봤다. '에놀라 게이'는 시속 290 킬로미터로 속도를 높였지만 , 추가된 무게 때문에 부담을 느껴 땅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1174-)

천황의 연설이라 할지라도 연설만으로 4년 넘게 이어진 전쟁이 만들어낸 감정을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규슈 후쿠오카에서 포로가 된 16명의 B-29 승무원들은 트럭으로 화장터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이송되었다.동료들 중 8명이 나흘 전 이곳에서 참수를 당했다. 미군들은 옷을 벗도록 가요당했고, 그런 다음 한 명씩 숲속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1286-)

1936년 2월 26일, 일본에서 일본군 황도파 쿠데타 사건이 발생했다. 가난한 일본 동북부 농촌 출신 장교들이 주축이 괸 쿠데타였으려,일본 내부에 곪아가고 있었던 정치인의 부패와 재벌의 횡포, 농촌이 황폐화되었고, 빈부격차가 발생하여, 정계와 군부,일본 사회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장교가 주축이 되어서, 시행된 일본 군내 황도파 파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서, 일본은 근대화이후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정치인이 주축이 된 일본 사회가 군인이 주축이 된 일본사회로 전환되었으며,일본 육군과 일본 해군이 사로 양분되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최적의 상황과 조건을 망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일본사회에 정치인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고, 군인,군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본은 전시 체제, 평화를 한목소리로 내세워서,만주국과 조선을 병합해야 한다는 논리가 먹혀들게 되었으며, 일본 패망의 출발은 그렇게 시작한다.

독일은 유럽사회에서, 영국과 프랑스르 압도하는 힘을 가진 나라였다. 일본은 중국, 러시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태평양 너머 미국을 상대로 하기에는 일본의 전력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전세가 불리하다고 생각한 해군은 육군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일본이 세계 평화를 목적으로 중국,만주를 통합하겠다는 야욕이 발현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으며,일본은 밀본 본토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역을 자신의 수중에 넣고 말았다.대표적인 곳이 필리핀과 사이판이었고,그곳을 전초기자로 삼아서,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시행하였고, 중일전쟁과 러일전재을 승리한 뒤 ,영화 도라도라도라에 나오는 것처럼, 진부만 폭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중립을 견지하였던 미국이 진주만 습격으로 인해 태펴양 전쟁의 한복판에 나서게 되었으며,필리핀과 사이판으 하나씩 초토화하였다.사이판이 일본에서 미국에게 점령되면서, 도툐 한복판으 불바다가 되는 것은 뻔하다.

이런 상황들은 처을 일본이 생각했던 전쟁은 아니었다. 6개월 이내에 전쟁을 끝내고 ,미국이 이 전쟁에 개입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일본은 동아시아 패권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일전쟁 승리,러일전쟁 승리로 인해 ,일본 스스로 자가당착과 오만에 빠졌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미국을 상대로 전재을 수행한다.

결과론적으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개의 리틀보이가 투하되었고, 일본은 패망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맥아더 장군은 천황에게 직접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는 것을 공식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쇼와시대는 기울어져가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봉에게 요구하였던 , 평화헌법이 지금까지 시행되었다.

일본의 패망의 역사는 독일의 패망의 역사와 다르게 자료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 쓰여진 책이다.일본 패마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여실히 드러났으며,일본 스스로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을 시행했느냐에 대한 질문과 답을 내놓아야할 때이다. 그것은 작금의 더부어민주당의 상황과 비슷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당대표가 앞으로 걸어갈 결과가 뼌한대도 불구하고, 민주당 스스로 불길로 들어가고 있는 이유를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일본이 그렇게 자신의 오만함과 자각당착적 사고로 인해 , 일본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처럼, 민주당도 그러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으며,당대표가 재판 결과로 구속이 되면,더불어 민주당은 무주공산인 상태로, 리더가 없는 정당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해 불신하였던 해군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처럼,이재명의 리더십에 대해 불신하는 소수의 민주당 당직자,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몰 수 있다. 전쟁은 결국 정치로 해결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고,그과정에서 ,인명피해, 물자피해,사회와 국가의 피해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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