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아리 아라리요 - 대한의 독립을 노래한 소리꾼 이화중선
김양오 지음, 김영혜 그림 / 빈빈책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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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땡!땡!땡!땡!

전차가 다닐 때마다 요란하게 종을 쳤다.

"아이고머니나! 나는 저 쇠당나귀만 보면 가슴이 벌렁거린다니까. 어찌 저리 무거운 쇳덩이가 저렇게 빨리 달릴까이?"

이중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니지 않으면 전차에 치이고 자동차에 다칠 수도 있었다.(-28-)

1925년 (을축년) 7월, 8월 두 달 동안 태풍 네 개가 조선 땅을 휩쓸고 갔다. 두 개다 경성과 경기도를 정토으로 휩쓸고 지나갔고 하나는 경상도를, 하나는 평안도까지 치고 가는 바람에 한반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한강도 넘치고 충청도의 금강, 전라도의 섬진강, 경상도의 낙동강, 가장 북쪽의 압록강까지 넘쳤으니 조선 땅은 그야말로 '노아의 홍수'를 겪은 것이다. (-67-)

원산에서 기차가 출발하자 헌병들이 검문을 시작했다.승차표뿐만 아니라 짐을 모두 열어서 보여줘야 했다. 만주로 가는 독립운동가들이 많기 때문에 북쪽으로 가는 기차는 검문을 철저히 했다.이화중선과 이화성은 긴장했다. 계획했던 대로 북에 금괴를 감쪽같이 숨겨왔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북이 왜 이리 무겁냐며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155-)

잡혀온 사람들은 벌써 경찰서를 떠나고 없었다. 기차에 태워 부산까지 간 다음 부산에서 배를 타고 나가사키로 갈 것이다. 경찰서를 빠져나온 세 사람은 경성역에 가려고 택시를 잡으려 두리번거렸다. 한데 택시는 구경하기 힘들고 조랑망이 끄는 마차 택시만 자주 지나다녔다. 셋은 할 수 없이 마차 택시를 잡아탔다. (-198-)

일제강점기 시절, 음반을 160 여장 취입하였던 명창 이화중선은 1899년에 태어나, 1944년에 사망하였다. 판소리로 우리르 울리고 웃겨 주었으며, 조선 당,일제 땅으로 이동하면서, 음반, 공연을 주로 하였고, 일제강점기 나가사키 인근에서 배가 뒤짚 혀 사망하게 된다. 판소리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를 주로 하였으며, 이화중선의 판소리 특기는 추월만정이다. 그녀의 모습과 함께 소리 명창 이화중선의 소리는 지금 기록으로 현존하고 있었다. 책에는 이화중선과 이중선이 소개되고 있었으며,일제강점기 시절, 암울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이 판소리로 벌었던 돈을 그대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써왔으며,자신의 목숨을 걸고, 금괴를 독립자금으로 쓰기 위해 애써왔다. 남자 판소리 명창은 임방울이었고, 여자 판소리 명창은 이화중선이었다. 대한의 독립에 힘써왔던 소리꾼 이화중선의 삶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깊고 깊은 아픔이 있었다. 그 하나하나, 독립직전,일본이 시키는대로 움직였던 우리의 슬픈 역사,그 역사 속에 이화중선 이 추구하였던 음악, 소리, 인생관,가치관을 이해함으로서, 이화중선 ,이근녀 ,강송대 , 송가희 로 이어지는 판소리 계보를 하나하나 음미하고, 정통 판소리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화중선이 살았던 그때 당시 경성역을 출발하였던 기차가 유럽까지 갈 수 있었음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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